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직도 온 나라가 농촌에 매달려 농사를 짓고 있을 때군요. 2일이 단오였는데 그날 단오인줄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매년 단오가 언제인지 언제 지났는지 모르고 지냅니다. 북에선 단오가 모내기하다 중간에 낀 명절이라 엄청 기다려지고, 떡도 치고, 그네도 타고, 모여서 즐겁게 체육대회도 하는 즐거운 명절인데 여기 한국은 단오를 쇠지 않습니다. 제가 북에서 거머리에 피를 빨아 먹히면서 모를 심던 때가 어제와 같은데, 이젠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봄에는 모내기하고 강냉이 심고, 가을에 또 20일 나가 수확을 하고, 이런 생활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했으니 한 10년은 한 셈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은 항상 농촌동원을 다니다보니 전 국민의 농민화가 이뤄져 농사짓는 법이야 훤하죠. 제가 모내기에 나가면 모를 꽂는 속도가 현지 농장원들보다 빨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했다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밥을 더 많이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심히 했나 모릅니다. 다 젊어서 남에게 뒤지기 싫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한국에 와서는 도시에 살다 보니 논밭을 보기가 힘듭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제가 살던 동네에 논이 있었는데, 그땐 봄이면 모내기를 하기 전 논판 수로에서 냉이도 캐고, 가을이면 논두렁을 거니는 맛이 있었습니다. 그때 봄에 모내기하고, 가을에 수확하는 것을 보면서 든 생각은 북한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도 휘발유가 없어 기계화를 못해서 그렇지 예전에 휘발유 좀 있을 때 앞쪽 벌방에선 모내는 기계로 모를 꽂고 수확기로 탈곡을 했습니다. 여기 기계가 좀 더 발전되긴 했지만 북한도 지금 기계화한다고 하면 새 기계를 만들 수는 있겠죠.
모판에서 파란 벼가 자라는 모습, 벼가 익은 논판 모습은 남과 북의 경제적 격차와는 전혀 별개로, 논판 자체만 보면 남북이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여기 수확량도 정보당 5톤이니 북한보다 많은 것도 아니고요. 비료만 있으면 북한이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습니다. 농촌은 그렇게 남북이 다르지 않은데, 인구가 5,000만 명이 넘는 여긴 배고픈 걱정이 없고, 2,400만 명에 불과한 북한은 아직도 먹고 살기 힘드니 요지경입니다.
여긴 쌀을 제외한 나머지 곡물을 수입해서 그런 가 봅니다. 또 쌀이 아니더라도 고기도 먹고, 밀가루도 먹으니 한 사람당 1년 쌀 소비량이 80키로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쌀이 남아도는 것일 겁니다. 북한도 경제만 발전시키면 곡물을 수입해서 고기도 먹고, 과자도 먹고 하면 지금 있는 논에서 생산하는 쌀이 남아돌 것이라 봅니다.
그런데 논에 가서 옛 추억을 느끼던 일도 지금은 못합니다. 제가 가던 논은 지금 신규 도시를 건설한다고 논을 다 밀어버리고 공사판이 됐습니다. 도시에선 저처럼 반쯤 농촌사람은 많은 향수를 잃어버려야 합니다. 그중에서 흙냄새가 제일 그립습니다. 물론 주변에 산이 있어 가끔 올라가지만 산 냄새와 논밭 냄새는 엄연하게 다릅니다. 농촌 사람이 논밭에서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은 따로 있죠. 올챙이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밤에 개구리들이 개골개골 합창하는 시끄러운 소리에 고요함을 느끼고, 벼가 바람에 드러누웠다 일어났다 춤을 추는 누런 논밭 위에서 잠자리들이 쌍 붙으며 원무를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편안함과 안정을 느낍니다.
도시에선 커피 한잔 들고 공원을 산책할 수도 있고, 밤에 식당에서 고기를 구우며 부어라 마셔라하다가 노래방에서 목청 터지게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영화관에서 팝콘 먹으며 새 영화를 볼 수도 있지만 엄연하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겁니다. 서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렇지만 농촌에 대한 향수는 그냥 떠올릴 때만 그리운 것이고, 정작 지금 농촌에서 힘들게 하루 과제를 수행하느라 녹초가 되는 사람들이야 당장 하루하루가 고달프기만 합니다.
지금 한국에 온 탈북자가 2만 6,000여 명에 이릅니다. 이들 중 대다수는 농촌에서 평생 살았고, 또 농촌이 고향이 아니더라도 저처럼 매년 두 달씩 농사일을 하다보니 농사엔 훤한 사람들일 겁니다. 그런데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선 농촌엔 죽어라 가지 않습니다. 솔직히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기도 힘들고, 일자리 잡아도 대다수는 월급 많이 받는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그럴 바에는 농촌에 정착해서 평생 몸과 손에 익은 농사일을 하는 것이 나은 선택일지 모르겠지만 정작 농촌에 간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여기 농촌엔 땅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정부가 농촌에 정착하는 탈북자들을 위해 초기 기계랑 사는 돈을 몇 천 만원씩 보조해 주는데도 사람들이 안 갑니다. 아마 북한에서 농사일에 질려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령 저도 북에서 그렇게 잘 먹던 국수를 잘 먹지 않습니다. 북에선 국수가 싫다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는데 한국에 와서 이것저것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되니 국수를 먹게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농촌에 대한 향수도 그냥 향수는 향수일 뿐 정작 생업으로 삼으라면 또 생각이 다르겠죠. 만약 농촌에서 산다면 또 도시가 그리울지 모릅니다. 인생은 이렇게 평생을 꿈꾸고, 돌아보며 사는 것인가 봅니다. 오늘은 정치적인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 다 빼고, 그냥 떠오르는 옛 추억을 두서없이 이야기해봤습니다. 북한도 농촌동원 다니던 때가 추억으로 남을 날이 오겠죠. 저는 반드시 올 것이라 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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