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추기경의 방북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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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자 평양교구장 서리인 염수정 추기경이 지난달 21일 개성공단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 추기경으로선 첫 방북이라고 합니다. 추기경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을 다스리라고 교황이 임명하는 고위직인데, 전 세계적으로 218명, 그리고 한국엔 2명의 추기경이 있습니다.

염수정 추기경의 이번 방북을 계기로 예전에 봤던 북한 유일의 천주교성당인 장충성당이 생각났습니다. 평양에 있을 때 가봤습니다. 1988년에 지은 성당인데 지금은 한국에서 지원한 물자로 아주 괜찮게 내부 인테리어가 돼 있습니다.

최근 남쪽에도 방북한 사람들이 북한 장충 성당을 찍은 사진을 갖고 오기도 합니다. 그때 사진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오 그래도 지킬 것은 지키느라 애는 썼네"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초상휘장이 없는 옷차림입니다. 물론 한국 교인들이 들어가 찍어 온 사진만 나오니까, 남쪽 손님들이 왔다고 일부러 옷차림은 통제를 하겠죠. 그래도 초상휘장을 떼고 자리에 참가했다는 사실이 어딥니까. 그래서 상상해봤습니다. 아침에 "남쪽 손님들이 오니 초상휘장은 달지 마시오" 했겠죠. 또는 옷 안쪽에 달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는 다시 꺼내 달겠죠.

하지만 이걸 보면서 하나님 외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종교 교리에 맞춘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합니다. 결국 뭡니까. 초상화를 달고 들어가면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이 성당 안에선 우상임을 인정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 논리를 적용하니까 이건 북한에선 사실 정치범이 돼야 하는 그런 논리가 되네요. 그럼 적어도 성당 다니는 사람들은 김 부자가 우상으로 취급당한다는 그 정도는 알 것 아닌 가 생각해봅니다.

또 북한 성당 사진들을 보면 여성들은 모두 미사보라고 하는 흰 수건을 쓰고 있습니다. 수녀의 옷차림은 없긴 하지만, 어쨌든, 손님이 왔다고 모두 미사보를 단체로 두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준비해서 차려입은 것이 어딥니까.

성당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북한 당국에서 믿을만하다고 선발해서 보낸 남성들과 여성들이겠지만, 저는 그렇다고 해도 좋습니다. 이렇게 연극이라도 자꾸 동원돼 미사에 참가해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노라면 뭔가 느끼는 것이 있겠죠. 노동당에서 훈련시킨 사람은 뭐 사람이 아닙니까. 그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측정할 수 있는 장비는 어디든 없습니다.

제가 항상 말하지만 아무리 북한에서 산다고 해도 두뇌까지 노동당에 맡기고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저도 김일성대에서 세뇌교육 받았지만 결국 남쪽에 와 있지 않습니까. 물론 미사를 마친 뒤 아마 한명도 빠짐없이 모여 앉겠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신부가 장충성당 당 비서일지도 모릅니다. 신부가 아니라면 그 자리에 참석한 누구든 하겠죠.

1989년에 김일성대 역사학부에 종교학과가 생겨났을 때 종교학과 노동당원 교수님들이 일이 생기면 저기 나가서 신부와 목사를 겸하긴 했습니다. 신부 복장 아래에 노동당원증을 차고 설교를 했죠. 아마 지금은 아닐 거라 봅니다. 이제는 전문 훈련받은 전용 가짜 신부나 목사는 있을 것이라 봅니다.

설교를 마친 뒤 모여 앉아 당비서가 "자, 오늘 들은 설교의 반동성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고 하면서 1시간 참가한 미사의 독을 빼기 위해 한나절을 정치학습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여성들은 당에서 인정받은 사람들이라 당 간부 부인들이겠는데, 적어도 남편에게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밤에 이불 속에서 "여보, 오늘 내가 이런 설교 들었는데,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아요"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또는 "성당 다닐수록 우리나라가 성경을 교묘하게 짜깁기해서 만든 국가 같습디다. 성경이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니 우리가 베끼면 베꼈지, 성경이 우리 노동당 시스템 베끼진 않았겠죠"라는 정도의 이야기만 해도 어딥니까.

남편이 "쉿, 너 그런 이야기 절대 어디 가서 하지 말라"고 핀잔을 줄지언정 그래도 안 듣기보단 나을 것이라 봅니다.

예전 1989년에 저는 임수경이 판문점을 통해 돌아갈 때 함께 돌아간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 분단선 위에 서서 하던 기도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종교가 아편이라 했는데 저런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아편이라면 너무 좋잖은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들어보니 그게 성 프란체스코의 '평화의 기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임수경 돌아갈 때 그 기도를 들었던 북한 주민들이 워낙 많습니다. 제가 다시 한번 읽어보겠으니 옛 기억을 되살리시면서 한번 들어보십시오.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엔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엔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엔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엔​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엔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엔 희망을
어둠엔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엔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게 됨을 깨닫게 하소서​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들어도 참 좋은 말이죠. 아무리 철저히 당적으로 준비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런 좋은 말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종교는 공감을 일으키는 능력이 매우 강합니다. 그러니까 수천 년을 전해 내려오고, 천주교나 기독교처럼 10억이 넘는 신자들을 갖고 있는 것이죠. 기독교를 사이비 논리로 짜깁기해서 만든 김일성주의 따위로 감히 대적이나 할 수 있는 사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가짜 교회, 성당이라 할지라도 북한에 큰 도시들까지 다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