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남쪽에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신이 날 선전소재가 하나 생겼습니다. 수천 명의 대학생들이 며칠째 거리에 뛰쳐나와 학비를 절반으로 낮추라고 시위를 벌이는데, 여기선 이를 '반값 등록금' 시위라고 부릅니다. 북조선 언론은 신이 나서 자본주의 사회가 사람 못살 사회이고 오죽하면 대학생들이 거리로 밀려 나오겠냐면서 한국 사회를 욕하기에 바빠질 것입니다.
요새 대학생 한명의 1년간 학비가 사립대는 만 딸라 정도, 국립대는 5000딸라 이하입니다. 이 정도 수준에도 고등학교 졸업생의 83%나 대학에 갑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학비를 보태야 합니다. 어느 사회나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사실 북조선은 오히려 더 합니다.
남쪽엔 북조선이 무료교육제도인 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글쎄 무늬만 무료교육이고, 대학 다니는데 먹고 살아야 하고 이러저런 명목으로 바쳐야 하는 돈은 상상 외입니다. 제가 김대를 나왔는데 제가 대학에서 한 달 쓰는 돈이면 우리 집 식구가 두 달은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저도 방학 때마다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북에는 대학 졸업생이 북조선 인구의 15% 좀 넘을 뿐인데도 그렇게 힘들게 입학한 대학을 돈이 없어 포기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습니다. 만약 북조선도 한국처럼 80% 넘게 대학을 갈 수 있다면 아마 이중 절반은 돈이 없어 대학 못 다닐 겁니다.
그러나 여기 남쪽은 생활이 어려운 학생에겐 정부가 학비를 우선 빌려주고 졸업해 취업한 뒤 이를 갚는 좋은 제도가 있습니다. 돈을 빌려서라도 모두가 대학에 가려는 이유는 한국은 대다수 노동자조차 대학 졸업생이니 대학 졸업증이 없으면 좋은 직장 얻기도 힘들고 무시당하고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 와서 가장 문제 많다고 여기는 분야가 바로 교육입니다. 학력과잉이 너무 지나칩니다. 노동자 하려고 해도 대학을 나와야 하니 문제죠. 북에서 한국 욕할 때 많이 쓰는 사례 중 하나가 박사도 취직이 안돼서 청소부를 한다는 것이었죠. 일반적인 일은 아닙니다만 없는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의 박사를 북쪽 박사와 비슷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북에선 박사 학위를 국가에서 깐깐하게 심사하기 때문에 정말 받기 힘듭니다. 한국은 북쪽보다 박사 되기가 훨씬 쉽고 박사 숫자도 수십 만 명으로 북조선보단 몇 백배나 많습니다.
예전에 저도 박사를 목표로 유명한 대학원 다녀봤는데, 박사 되는 것은 전혀 어렵진 않겠지만 "이렇게 박사가 많은데 내가 대학원 5~6년 꼬박 다니고, 5만 딸라 넘는 학비 내고 굳이 박사를 받아야 할까, 성취감도 크지 않을텐데"하는 생각에 대학원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더 살아보니 사람들이 박사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이유가 다 있더라고요.
한국 사회라는 것이 그 분야의 실력보단 감투부터 따지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적어도 박사는 돼야 교수도 되고, 나아가 국회의원이나 장관도 되기 쉽습니다. 박사 되려면 대학 졸업하고 빠르면 6년 걸리는데 딱 보면 북한하고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북에선 빽 좋으면 6년 정도만 군복무 하고 입당한 뒤 대학에 갑니다. 졸업하면 간부의 중요 징표인 제대군인 당원 대학졸업생이 되는 거죠. 출신성분까지 좋으면 출세는 전혀 문제가 아니죠.
남쪽도 돈과 권력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출신성분이 좋은 아이가, 긴 북한의 군 복무 대신에 그만한 시간을 들여 좋기는 외국서 박사 학위를 받아오면 일생이 해결되죠. 저도 어쩌면 실력보단 껍데기를 중시하는 문화의 수혜자입니다. 탈북할 때 김대 졸업장 갖고 왔으니 인정받고 기자라도 하지, 안 그랬으면 뭘 하면서 먹고 살지 모르겠네요. 여기 젊은이들도 아무리 똑똑해도 대학 졸업장 없으면 안 되니 열심히 대학 가려 합니다.
하지만 집안이 가난하면 학비가 문제입니다. 요즘처럼 취직이 잘 안 되는 시기에는 국가에서 돈을 빌려도 언제 갚을지 기약도 없고 계속 빚지고 살아야죠. 요즘 학비 절반으로 깎아달라는 시위가 벌어지고 정치권도 선거표를 의식해 고민이 많겠지만 제가 보면 이것은 한국 사회에 어떤 것을 선택할지 세 가지 선택의 문제를 던진 것입니다. 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추려면 60억 딸라 정도 돈이 듭니다.
첫 번째 선택은 국민들이 대학생들을 위해 그만한 세금을 더 내면 됩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세금을 더 내긴 싫어하죠. 지금 시위하는 대학생들이 취직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둘째는 정부에서 빚을 내서 학비 지원하는 겁니다. 지금 세대는 당장 좋겠지만 늘어난 국가 빚은 후대가 갚아야 합니다. 할 짓이 못 되는 거죠.
셋째는 물론 대학에서 학비 절감 노력은 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론 지금의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죠. 돈 없는 사람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고등학교 졸업생의 80% 이상은 대학에 갈 겁니다.
첫째는 사회주의적 방식에 가깝고 셋째는 가장 자본주의적 방식입니다. 사회주의 방식이 나쁜 것이 아니고 저번 시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미 고등교육은 사회주의처럼 된지 오랩니다. 결국 선택의 문제이죠. 나중에 어떻게 결론 날지 모르겠지만 결국 등록금도 국가가 절반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높죠. 결국 반값 등록금 시위는 한국 사회의 위치를 더 사회주의적으로 이동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돈이 없어 대학 못 다니는 것은 북조선이 더 심각합니다. 거긴 나라에서 돈 빌려주는 제도도 없죠. 북쪽은 명색만 사회주의지 오히려 자본주의인 한국의 사회복지정책이 훨씬 더 훌륭하다 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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