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와 도둑에 대한 북한식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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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에 한 탈북자 강연을 들었습니다. 탈북자들이 헤쳐 온 사연을 들어보면 언제나 눈물이 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들어봐도 고난의 행군 시절의 참혹함, 가슴 아픈 이별,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일들 이런것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저도 다 겪어본 일이지만, 한국에 와서 이제 10년 넘게 살아서 그런지 그런 이야기 들을 때마다 분노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저런 나라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새삼 몸서리쳐집니다. 북에선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이게 세상사는 법인가 하고 살고 있겠지만, 밖에 나와서 북한을 들여다보면 내가 저 땅에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에 인생이 참 억울해집니다. 저처럼 젊어서 일찍 한국에 왔으면 다행이지만, 그 땅에서 청춘을 다 바치고 탈북한 사람들일수록 더 억울하겠죠.

그 탈북자의 강연 때도 그걸 듣는 많은 사람들이 한숨도 쉬고 눈물도 흘리고 그러더군요. 그는 고난의 행군 때 먹을 것이 없어 여기저기서 훔쳐 먹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탈북했다가 잡혀서 북한 보위부에 끌려간 뒤 감옥에서 다 죽게 되니까 거기서 송장 치르기 싫다고 내보냈는데, 기적적으로 살아서 왔습니다.

사람들이 강연이 끝난 뒤 그에게 북한의 월급이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북한 월급으로 쌀 1킬로도 못 산다는 것을 이해 못합니다. 왜냐면 여기선 일한 만큼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모든 것을 사서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사회 평균적으로 볼 때 한 가족의 한 달 소득으로 쌀만 사면 1톤 반쯤 삽니다. 1년 일해서 쌀만 사면 20톤 가까이 사는 것입니다. 그만큼 여기는 쌀값이 눅습니다.

이런 사회이니 북한처럼 배급도 안줘, 월급이라도 줘봤자 쌀 1킬로도 못산다고 말하면 도대체 북한은 어떻게 사는지 이해를 못 합니다. 그래서 직장에는 형식적으로 다니고, 다 장사를 해서 먹고 사는 길은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을 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또 그럼 배급도 월급도 안주는 직장에는 왜 또 다니는지 의문을 갖습니다. 직장에 안 나가면 꼬빠크(노동단련대) 보내고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말해줘도 이해를 잘 못하죠.

그런데 그 강연에 앉아서 듣다가 제가 갑자기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직장에 강제로 끌어내면 그건 그 자체가 바로 강제노동수용소구나' 이런 생각이 새삼 드는 겁니다. 생각해보니 북한은 바로 나라 전체가 강제노동수용소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하긴 강제노동수용소는 먹을 것이라도 주었지만, 북한은 먹을 것도 주지 않으니까 똑같다고 말하긴 어렵죠. 그리고 이 자리에서 제가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럼 북한에선 어떤 직업이 제일 좋은 직업인가요?" 하고 물었는데 그 탈북자가 "직장에서 빼낼 것이 많은 직업이 제일 좋습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생각해보니 그게 정답이었습니다. 외화벌이가 선호되는 것도 달러를 만지니 거기서 좀 빼돌릴 수 있어서 모두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 나 하는 것 아닙니까.

개성공단도 마찬가지로 배급을 좀 받는 것도 있겠지만, 자재도 빼돌리고, 간식도 빼돌리고 해서 장마당에 팔 수 있어서 인기 좋은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북한에선 도둑질해 먹을 수 있는 직장이 최고로 좋은 것이죠. 그런데 도둑질 해 먹을 수 있는 직장도 손꼽을 정도니까 모두 들어가지 못해서 뇌물까지 쓰는 겁니다.

물론 좋은 직업 따지면 당 간부, 보위부 간부 이런 권력층이 제일 좋지요. 그런데 이 직업은 사실 따지고 보면 강도짓 해먹는 직업입니다. 국가에서 특별히 월급 많이 주는 것도 아닌데 인민들 등 쳐먹고 협박하고 뇌물 받아서 다 잘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북한에선 아무것도 훔치지도 뺏어 먹을 수 없는 직업이 제일 가난하고, 그보다 좀 나은 직업이 도둑질 할 수 있는 직업이고, 그보다 또 더 나은 직업이 강도짓 해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인 것입니다.

전 세계 둘러봐도 대놓고 뺏는 강도가 몰래 훔치는 도둑보다 더 나쁘다는 것은 어느 나라나 똑같은 진리인데, 북한만은 강도가 도둑보다 더 인기가 좋으니 참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제가 한 번 더 가만 생각해보니 북한이기 때문에 도둑질은 나쁜 짓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처음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어떻게 됐든 도둑질이 나쁜 짓이라고 생각해왔고, 북한에서도 도둑질은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도둑질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에선 기준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준이란 누구의 것을 도둑질하냐 이걸 놓고 따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굶어 죽으면서까지 도둑질하지 않고 정직을 지켰다면 여러분이 지킨 그 재산은 누구의 것이겠습니까. 나라의 것이겠죠. 그런데 북한에선 김정은이 왕이니 나라의 재산은 곧 김정은의 재산입니다. 여기 남쪽처럼 엄격한 절차대로 국가의 재부가 분배되는 것이 아니고 북한에선 김정은이 자기 마음대로 국가 재부를 사용합니다. 여러분이 훔친 재산은 곧 김정은의 재산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김정은의 재산을 좀 도둑질해 먹었으면 그건 잘못된 일이 아니라 원래 여러분들이 받아야 할 것을 스스로 챙겨먹은 겁니다.

그런데 강도는 다릅니다. 강도가 아무리 힘이 있기로서니 김정은의 재산을 강도짓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인민들 등쳐 강도짓합니다. 그러니 권력기관 강도는 나쁜 짓이고, 도둑질도 인민들 털어먹으면 그건 나쁜 짓이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겁니다.

북한이 한국에 온 탈북자들을 도둑놈, 쓰레기라고 하는데, 정말 강도다운 소리입니다. 여기 온 사람들 대다수는 정말 강도당할 것조차 없으니까 목숨을 담보 잡히고 강도와 도둑놈 세상에서 도망쳐 온 알고 보면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