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사라져가는 단일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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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민족을 수식하는 대표적인 표현을 꼽으라면 어떤 것들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오천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단일민족" 또는 "백의민족"이라는 표현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지금도 북에선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요.

그런데 제가 남에 와보니 이제는 이런 표현이 맞다고 하기 힘들게 됐습니다. 한국 전체 인구 5000만 명 중에 외국인이 120만 명이나 되고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외국인도 수십만 명에 이릅니다. 서울 길거리에 나가면 외국인들이 엄청 많습니다. 특히 제가 서울의 중심부인 종로구 광화문에서 일하고 있는데 여기는 관광지라 그런지 외국인들이 특히 더 많이 눈에 띕니다.

또한 저와 친분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참 너무나 큰 변화입니다. 북한의 제 고향은 도 소재지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을 1년에 한번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지금 회상해보면 고향에서 외국인을 봤던 기억 중에 남아있는 것이 유엔식량기구 감시단이 차를 타고 왔던 일, 키가 엄청 큰 러시아 여자 3명이 무릎까지 오는 치마를 입고 거리를 다녀서 놀랍게 봤던 일 등 몇 번이 안 됩니다. 북에는 농촌에 살다보니 외국인을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사람도 매우 많을 겁니다.

물론 제가 대학공부하면서 평양에 있을 때는 외국인을 많이 보긴 했습니다. 그래도 북에선 외국인하고 감히 이야기를 하지 못하죠. 승인 없이 말을 걸고 하고 했다간 보위부에서 조사가 들어오니 말입니다. 그런 제가 서울에 오니 외국인과 어울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됐습니다. 평양에선 외국인만 지나간다 하면 신기해서 멀리서부터 쳐다보다 지나간 다음에도 한참을 돌아보고 했는데 지금은 외국인이 지나간다고 해서 돌아보는 일이 없습니다.

남쪽이 이런 세상이 되다보니 한국의 민족의식도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남쪽에서도 사람들의 의식 속에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과 긍지가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외국인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들을 우리 사회에 수용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작년 10월에 동아일보가 여론조사를 해보니 한국인 10명 가운데 7명은 우리나라가 단일민족 사회가 아니라 다문화사회라고 대답했습니다. 2007년부턴 교과서에서도 단일민족이라는 표현이 사라졌습니다.

올해에도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한국군에서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군대에 입대하거나 진급할 때 군인선서라는 것을 합니다. 이 군인선서는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4월에 '국가와 민족'이라는 표현에서 '민족'을 '국민'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라고 바뀐 겁니다. 왜 바뀌었나 하니 2년쯤 뒤에는 한 민족이라고 할 수는 없는 다문화가정 출신 자녀 4000여명이 군에 입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는 다문화가정 출신이란 말이 생소할 겁니다. 다문화가정이란 한국인과 외국인이 결혼해 사는 가정을 말합니다. 한국에는 다문화가정이 18만 가구나 됩니다.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국적은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혈통은 혼혈인입니다. 북에선 이런 아이들을 '아이노크'라고 부르죠.

지금 한국 농촌에 가면 결혼 못한 노총각들이 많습니다. 요새 젊은 여성들은 농사짓는 남성하고 결혼하려 하지 않습니다. 농민은 돈도 많지 않고, 일도 힘들고, 농촌에서 살기도 싫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면 이런 남성들이 아내를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 가면 한국에 시집가려는 젊은 여성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웰남, 타이, 캄보쟈, 필리핀, 중국 이런 나라들에 가서 10살 넘게 어린 신부들을 데려와 삽니다. 이런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피부색도 대개 까무잡잡한 것이 일반적인 한국인과는 척 보면 다릅니다. 그래서 학교에 가면 아이들로부터 놀림 받고 따돌림 당하기 일쑤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한국 사회에선 오래전부터 이런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노력을 국가 정책적으로 꾸준히 벌여왔습니다. 이제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보는 시선들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상당히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나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운동을 많이 벌이고 아이들도 그런데 습관이 되면 나중에 통일이 돼서 북한 아이와 남한 아이가 한 교실에서 공부해도 갈등이 많이 생기지 않게 되죠.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다문화사회가 바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입니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더불어 살고 있고 학교에서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세계 10대 교역국이 되고 많은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조건에서 과거처럼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내세우면 결코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외국인과는 더불어 잘 살아가고 있으면서 정작 같은 동족끼리는 적으로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매우 안타깝지만, 머잖아 남북도 평화롭게 한데 어울려 잘 사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