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늘 바쁘게 살긴 하지만 이번 주는 특히 정신이 없이 보냈던 것 같습니다. 우선 제가 이번 주엔 국제부에서 정치부로 옮겼습니다. 기자는 부서를 옮기면 회사를 옮기는 것과 같은 큰 변화를 겪는다고 합니다. 그 말도 맞는 것이 사회부 나가서 경찰서를 대상으로 취재하다가 정치부에 가면 정치인들을 취재해야 하고, 경제부를 가면 회사들을 취재해야 합니다. 담당 영역이 달라지면 다 새로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생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정치부에서 외교안보팀에 소속됐습니다. 제 주업무는 통일부 취재인데, 외교안보팀의 소속원인 까닭에 외교부에도 나가야 하고, 국방부에도 나갈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국정원도 제가 담당합니다.
제가 이런 일을 담당하는 것을 보면 한국 사회가 참 괜찮은 사회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북한으로 치면 한국에서 의거입북한 사람이 노동신문사 기자가 돼서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조평통 담당 기자가 되고, 국가안전보위부 본부의 잘못된 일도 캐내서 쓰는 셈입니다. 이게 과연 북한에서 가능한 일일까요. 재일동포 출신도 믿지 못해 당 일꾼도 안 시키고, 보위부나 보안서에도 입대 시키지 않는 북한이 한국 출신을 어떻게 믿고 대남기관과 보위부 핵심 본부 취재를 맡기겠습니까. 북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남쪽에 온 제가 하는 것입니다.
통일부 담당이라 이번 주부터 출근도 정부종합청사 통일부 기자실로 하게 됐습니다. 거기 가서 오랜만에 북한 사이트들을 둘러보는데, 기분 나쁜 영상이 하나 올라있더군요. 북한이 한국의 청와대와 정부 기관을 폭파시킨다면서 올려놓은 영상인데, 그 중에는 제가 일하는 정부종합청사를 폭파하는 것을 가상해 만든 합성화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데 하필 폭탄이 터지는 위치가 제가 일하는 기자실 그 층이더라고요. 그만큼 제가 북한의 위협을 받는 곳에서 일한다는 뜻이겠죠. 통일부 출입기자를 하게 되면 일은 참 많아집니다. 제가 이번 주에 국제부에서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투표를 하는 바람에 그걸 막느라 새벽까지 정신없었는데, 정치부로 옮겨오자마자 이번엔 김정은이 국무위원장 됐다고 하는 바람에 기사를 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또 1박 2일로 김포에 가서 해병대 취재까지 했습니다. 해병대에 간 이유는 탈북대학생 20명이 최초로 해병대 체험을 하려 갔기 때문입니다. 해병대라면 북한으로 치면 해상육전대라고 할 수 있는 특수부대입니다. 탈북 대학생들이 이곳 군대 생활이 궁금하다고 하니 해병대에서 자기들의 부대에 불러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입니다. 저도 따라가서 해병대 군복을 입고 취재를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계곡을 밧줄 하나에 의지해서 건너가는 훈련, 높은 곳에서 밧줄을 타고 뛰어내리는 훈련, 보트를 타고 이동하는 훈련, 갯벌을 기어가는 훈련 등을 받습니다.
저는 취재기자라 같이 하지 않았지만 그 고난도의 훈련을 땡볕 속에서 열심히 수행하는 탈북 청년들을 보면서 저런 정신으로 이 땅에서 잘 살길 기원했습니다. 유독 날쌔고, 동작도 정확한 청년이 있어 어떻게 잘하냐고 물어봤더니 이 청년이 북한군에서 3년 정도 복무하고 온 경험이 있더라고요. 그 청년에게 북한군과 한국군의 차이가 뭔지 물어봤다니 너무 간단하게 대답해 제가 같이 웃었습니다. "한국군은 이렇게 힘든 훈련을 해도 밥이라도 꽝꽝 먹여주는데, 북한군은 밥도 안주고 훈련시킨다"는 것입니다. 정말 간단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대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사람이 살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일입니다.
뭘 시키던지 배불리 먹여주는 것은 정말 기본에 기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바로 북한이 그걸 못하고 있는 것이죠. 명색이 국가인데 배급도 안주고, 오로지 신경 쓴다는 것은 어떻게 인민들을 뜯어가나 그런 생각뿐입니다. 먹여도 안주고, 뜯어만 가겠다니 그게 날강도지 다른 것이 날강도입니까. 김정은이 욕심이 많아 온갖 최고 직함을 다 뒤집어썼다고 칩시다. 뭐 이번에 보니 최고재판소, 최고검찰소에서 최고란 이름을 다 뜯어내고, 내각도 헌법에서 최고주권의 집행기관이란 표현에서 최고를 빼고 국가주권의 집행기관이라고 서술했습니다. 최고란 수식어까지 자기가 다 가지겠다는 심보입니다. 좋습니다. 북한이 제 것이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칩시다. 문제는 사람이 양심이 있다면 명예만 가지겠다고 하지 말고 최고에 걸맞는 일을 해야죠. 실제로 하는 일은 전 세계적으로 최악의 짓만 돌아가면서 합니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점점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최고인민회의 때 김정은이 조는 장면이 5초 동안이나 나왔습니다. 현영철은 졸았다고 불경스럽다면서 총살시키고, 자기는 회의 시간에 졸고 있으니 이게 염치를 알면 이러겠습니까. 요즘 북한에서 금연하라면서 사람들 들볶는데, 김정은은 현지지도 나가서 줄담배를 피웁니다. 김정일도 옛날에 자기는 담배 끊고 남들보고 끊으라고 했는데, 김정은은 그런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역대 최고로 염치도 모르고 체면도 모르는 인간에게 제가 인민들 배불리 먹여주라고 말하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이제 저는 통일부 와서 저런 김정은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야 하는데, 앞으로 저런 모습 계속 보다 보면 제풀에 화가 나서 제명에 못살 것 같기도 합니다. 통일부 와 있는 것이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이지, 이제 며칠 밖에 되지 않아 잘 감이 서지 않는데, 아무쪼록 여러분들의 심정에서 좋은 기사를 더 많이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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