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달 28일 북쪽에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한국에 왔다 돌아간 박정숙이라는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방영됐습니다. 사실 저는 좀 놀랐습니다. 원래 중앙방송이 평일에는 오후 5시에 시작해서 저녁 11시경까지 대략 6시간 정도밖에 안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6시간 사이에 무려 1시간 13분이나 탈북자의 기자회견을 하게 했으니 저는 상당히 놀랐습니다.
북에 전기가 오지 않아서 많은 분들이 보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바떼리로 TV를 보는 사람들도 많으니 본 사람도 적지 않겠죠. 이런 방송이 나오면야 아마 사람들 다 열심히 볼 겁니다. 한국 같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봤냐를 따지는 것을 시청률이라고 하는데, 요새는 인기드라마가 시청률이 20% 나왔다고 해도 대박이라고 합니다. 시청률 20%는 TV를 보는 사람의 20%가 그 드라마를 봤다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탈북자 인터뷰라 하면 아마 시청률이 100% 나오지 않을까요. 물론 북에는 전국 채널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딴 거 볼 수가 없어서 웬만하면 시청률이 100% 나오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늘 바쁘다보니 1시간 넘게 어떤 티비를 계속 앉아볼 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박정숙 기자회견은 저도 처음부터 다 보진 못했지만 적어도 절반 이상 보았습니다. 아마 한국에 가봤자 비참한 인생이 기다리니 가지 말라, 가봤자 별 볼일이 없다 이런 사상을 주입시키고, 우리 김정은 대장의 은덕정치, 광폭정치는 저런 사람도 품어준다 이런 것을 보여주려 했나 봅니다.
그 기자회견에서 나오는 내용, 맞는 말도 있고 틀린 말도 있습니다. 사실 제일 무서운 거짓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실 같은 내용에 하고 싶은 거짓말들 슬쩍슬쩍 끼워 넣는 것이죠. 그래도 진실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말뿐만 아니라 얼굴과 말투를 보고 듣고도 진실인지 거짓인지 가릴 수 있거든요. 이번 경우도 박정숙 할머니와 함께 살던 청진 사람들이 벌써 "아이구, 수남 시장 다니던 얼굴 까무잡잡한 노친네가 7년 만에 부자집 마나님처럼 신수 훤해서 왔다"고 이러고 다닌답니다.
이젠 한국에 온 탈북자가 2만 4,000명이 넘는데, 웬만한 고장에 다 탈북자 가족들이 있잖습니까. 사람들이 그거 보면 알죠. 탈북자 많은 고장에 가면 "우리 집안에는 왜 얼빤한 사람들만 모여서 탈북한 사람도 없냐"고 푸념하는 판입니다. 여기에 온 탈북자들이 열심히 돈을 벌어서 북에 보내주니 탈북자 있는 집은 잘 사는 겁니다. 예전에는 재포가 떴지만 이제는 귀국자 친척들이 다 나이 들어 하나둘 돌아가니 귀국자들도 사실 예전만큼 돈을 받지 못합니다. 반면 탈북자는 거기에 부모형제들이 사니까 정말 억척스럽게 돈 벌어 보내주죠. 얼마나 북에 보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쪽에 온 탈북자 2만 4,000명이 북에 해마다 보내주는 돈이 대략 5,000만 딸라 쯤 된다고 합니다. 개성공단 돌려서 북에서 버는 돈만큼 되는 거죠.
그런데 한국이 탈북자들이 행복하게 사는 나라인가 하면 그건 또 모두에게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이번에 기자회견을 한 박정숙 할머니처럼 나이가 들어서 온 사람은 제일 힘든 겁니다. 왜 그러냐 하니까 나이가 들어서 일할 데가 없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회사에 취직해 돈을 벌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어디 가서 일하겠습니까. 여기도 50대 중반 정도 되면 북에서 말하면 연로보장을 받아 일을 그만 둡니다. 여기서 젊어서부터 산 사람들은, 일을 한 사람들은 벌어놓은 돈이라도 있어서 그거 쓰면서 살지만 북에서 오면 벌어놓은 돈도 없죠.
돈이 없으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러면 죽으란 말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여기서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겐 국가에서 최저생계비 지원을 해줍니다. 나이 들어 온 탈북자에겐 집은 한 30~40평방미터 되는 임대주택을 제공하는데 솔직히 이 정도 집은 북에서라면 도시 중심부에서도 괜찮은 집이겠지만 여기 서울에선 제일 좋지 못한 집에 속합니다. 그리고 생계비로 한 달에 수백 딸라씩 주는데, 풍족하진 못해도 배를 곯지는 않습니다. 이런 국가적 지원은 탈북자라서 주는 것은 아니고, 탈북자가 가난하기 때문에 주는 것입니다. 탈북자와 비슷한 지원을 받고 사는 사람이 한국에 한 200만 명은 됩니다. 생계비 받고 사는 탈북자는 그 200만 명 중에 만 명 좀 안되고요.
국가가 세금으로 받은 돈으로 빈민계층을 먹여 살리는 것인데 이런 사회복지망은 한국보단 유럽 등 발전된 외국에 더 잘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탈북자는 그냥 한국에 왔을 뿐인데 국가에서 돈을 지원하니 여기 사람들 중에서도 "탈북자가 나라를 위해 뭘 한 게 있어 집주고 돈 주냐" 불평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죠. 사실 정말 먹고 살기 힘들어 온 탈북자는 굶어죽지 않게 국가가 보장해주는 한국에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북에서도 먹고 살만한데 더 잘 살겠다 이런 생각을 품고 온 경우면 불만이 생기는 일도 많습니다. 왜 왔냐 이런 후회도 하고요. 어느 사회나 솔직히 일 안하고선 돈이 그저 생기는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그리고 박정숙 할머니처럼 아들까지 보위부에서 산골로 추방했다 이러면 더구나 갈등되는 거죠. "내가 여기 와서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아들까지 죽게 생겼네"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러니 돌아가는 거죠. 그래도 받아줄지 말지 모르는데 목숨 내걸고 간 것을 보면 모성애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북에서 선전꺼리로나마 아들딸 다시 평양에 복귀해 살게 하니, 박정숙 할머니가 여생이나마 거기서 편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시간이 또 다됐네요. 못한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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