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국제부에서 정치부 북한 담당 기자로 옮겨가다보니 요즘 하는 일이 많이 달려졌습니다. 예전엔 출근하면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씨엔엔, 비비씨 이런 외국 유명 언론들을 읽어보는 것이 첫 일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침에 정부청사 출근해서 기자실에 앉아 외신 대신에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이런 것들을 읽어봅니다. 물론 신문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노동신문과 통신사 홈페이지를 통해 읽습니다.
신문 읽으며 제가 북한 대다수 사람들보다 노동신문을 훨씬 더 빨리 보는구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북한의 신문이 어디 신문입니까. 구문이죠. 평양 정도만 당일 아침에 배송이 이뤄지고 지방은 기차로 모두 싣고 가다보니 며칠 전 신문을 받습니다. 그것도 간부나 돼야 신문을 받아보지 일반 사람은 신문 구경도 못합니다.
말 나온 김에 한국의 신문 배송 체계를 잠깐 말씀드리면, 여긴 새벽 5시 이전에 전국에서 신문을 보는 사람들 집 앞에 다 갖다 놓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갸우뚱 하실 수 있는데, 가능합니다. 저희 동아일보만 보면 하루 저녁에 신문을 4번 찍습니다. 일단 5시 경에 그날 뉴스를 종합해서 신문을 만듭니다. 이건 초벌로 만든 신문이라 보시면 되는데, 배달이 되지 않습니다. 그걸 읽어보고 회의를 한 뒤 보충할 기사는 보충하고, 부족한 부분은 다시 추가로 취재해 채워놓습니다.
그리고 7시부터 9시 사이에 정식 신문을 만들어 9시 반쯤에 인쇄에 들어갑니다. 이때 찍는 신문은 지방 배달 신문입니다. 신문 인쇄를 한 시간에 몇 십 만부씩 찍는데, 차가 대기했다가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이런 곳에 내려갑니다. 경상도처럼 서울에서 먼 곳은 현지에 인쇄소가 따로 있습니다. 지역에 가면 시군 별로 또 신문지국들이 다 있습니다. 이 신문지국에 12시쯤 신문을 뿌려 놓으면 기다리고 있던 배달원들이 자기 담당 구역으로 신문을 가져다 배달하기 때문에 새벽 5시 이전엔 배달이 완료됩니다. 밤 9시 반에 신문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11시까지 또 그때까지 나온 소식들을 보충하고 해서 최종적으로 완성합니다. 11시 인쇄된 신문이 최종 마감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러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밤 11시 이후에 또 사건이 터질 수 있지 않습니까. 가령 여기는 밤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은 낮이기 때문에 큰 사건이 갑자기 터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런 것은 새벽 1시 반까지 당직 기자들이 대기하다가 기사를 급히 써서 채워 넣습니다. 그러니까 새벽 1시 반까지 신문을 만드는데, 이때 찍은 신문은 지방엔 못 보내고 서울 일부 지역만 배달이 됩니다. 제가 국제부에서 이런 야근 당직을 12년 했습니다. 하다 보면 별 일이 다 있죠.
가령 갑자기 프랑스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이런 속보가 뜨면 돌아가는 인쇄기를 세우고 기자가 급히 외신을 보며 기사를 씁니다. 하지만 외신도 모든 상황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처음엔 테러 발생, 두 번째는 몇 명 사망, 세 번째는 누구 소행인 듯 이런 식으로 순서대로 기사를 올립니다. 수시로 뜨는 속보를 챙겨 보면서 기사를 써야 하는데 이때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윤전기를 10분 만 세우면 수천 달러의 비용이 날아갑니다. 그러니까 이때는 20분 만에 기사 쓰는 기자와 30분 만에 기사를 쓰는 기자의 능력의 차이가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위에선 수시로 빨리 보내라고 독촉하지, 상황 파악은 안 되지 이러면 식은땀이 줄줄 납니다. 다행히 저는 오랫동안 국제부에 있어서 이미 머릿속에 다양한 경험과 기사틀이 있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면 어떻게 써야 할지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풍부한 경험을 축적해 놓았지만 이젠 쓸 일이 별로 없게 됐습니다. 시간대가 같은 남과 북을 다루다 보니, 밤 11시 넘어서 무슨 일이 터지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통일부 기자실에 나와 보니 여기선 북한 텔레비도 마음대로 볼 수 있습니다. 요즘엔 김일성 사망일 맞아 추억의 영화 조선의 별이 상영되더군요. 요전에 퇴근하려다 4부 잊지 못할 겨울인가 하고 5부 불타는 봄인지 하는 그거 나오는데, 아, 글쎄 30년이 넘었는데 대사들이 다 떠오르더라니깐요. 내 총이다 내 총 하면서 이제 죽는 장면이구나 하니까 바로 그 장면이 나오고 말이죠. 4, 5부에 김일성에게 감화돼 독약 먹고 죽는 은매라는 여자가 나오죠. 그 배우가 정말 예뻤는데 지금 봐도 예쁩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영화에 나오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북한에선 영화에 나왔다가 없어지면 어디 갔는지 뻔하죠. 김정일이 데려 갔던지 아님 김정일 집안 누가 저 여자 마음에 든다 이러고 첩 정도로 데리고 살겠죠.
12일자 북한 노동신문엔 8·15 광복절을 맞아 남북 공동 연석회의를 열자고 제안하는 공개편지가 실렸습니다. 지방 간부들은 지금쯤 그 신문 받아보았을지 모릅니다. 그거 보면서도 좀 놀랐습니다. 대통령, 총리 국정원장, 장관들, 그리고 정당 단체 개인들의 이름과 직책이 줄줄이 나열됐는데, 사람 이름이 141명인가 나오고 단체 87개 명칭이 나열됐습니다. 일단 잘 파악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그거야 남쪽 신문 잘 보고 기록해두면 되는 거니까 어렵지 않은데, 제가 놀란 것은 그렇게 단체들 나열하면 북한 인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남조선은 별의 별 단체가 다 있구나. 정말 자유로운 나라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성명 발표하는 것을 보면 북한이 좀 급하긴 급한가 봅니다. 개인적으론 앞으로도 이런 성명은 계속 내면 좋겠습니다. 유감스럽게 이번 성명 140명 중엔 제 이름은 없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저도 북한 성명서에 이름 정돈 올라가는 사람이 돼야 되겠다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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