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통일을 위해 우리가 준비할 것들, 즉 법이나 제도 이런 것들을 미리 다듬겠다는 뜻입니다. 통일준비위원회에 원로들 수십 명을 모아놓긴 했는데, 과거 수십 년 동안 통일이란 구호가 남북 정치인들이 주민들을 기만하기 위해 사용돼 온 역사도 있으니 통일준비위원회가 쓸만한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인 1972년에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을 때 대다수 사람들은 정말 남북이 화해해서 통일로 가는 가 했지만 현실은 반대였습니다. 바로 직후에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만들어 독재로 갈 준비를 했고, 김일성은 아들에게 정권을 물려줄 준비를 했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북한의 국력이 좀 있었으니 남쪽도 적화통일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1990년대 초반까지 동구권이 붕괴되고 중국마저 한국과 수교하면서부터 점점 사라지게 됐습니다. 이제는 북한의 국력으론 적화통일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런 자신감으로 인해 1989년 남쪽은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시하면서 북한이 고려연방제 방안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요구를 수용해 연합제 하에서 연합정부의 남과 북 의원 숫자를 똑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남쪽의 인구가 5,000만으로 북한의 두 배인데, 의원 숫자를 똑같이 하면 남쪽이 훨씬 손해죠. 그럼에도 여기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북한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수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그것에 대해 북한 인민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걸 알면 주민들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었는데 왜 우리는 연방제 통일을 하지 않지"라고 의문을 품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북한은 10여 년전부터 통일 논의 자체를 중단시켰습니다. 연방제 통일이든 통일전쟁이든 뭐든 남쪽과 통일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자체가 3대 세습 왕조 유지에 전혀 도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뭔 말이냐면, 연합제든 연방제든 통일로 가게 되면 북한이 망한다는 것을 김정일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여기서 연방제니 연합제니 북한에 제안해야 먹히겠습니까.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자기 죽을 길을 파겠습니까. 그들은 통일이란 것에 관심도 없고 오로지 북한만이라고 꼭 움켜쥐고 자기 3대 세습정권을 유지하고 싶은 겁니다. 그럼에도 남쪽은 연합제 방안이 현실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북한에 계속 제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 앞에서 북한을 망하게 해서, 또는 망한 뒤 기다렸다 북한을 흡수 통일하겠다 이렇게 말할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랬다가는 북한이 펄펄 뛸 거니까 남북관계도 다 망치겠죠.
올해도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말한 뒤 국가 연구소들이 통일 가상 시나리오를 연이어 발표하는데, 제 보기엔 "공주가 나랑 결혼해 준다면~"하고 시작하는 소설이나 똑같습니다. 그게 소설인 거는 쓴 사람들도 다 알겠지만, 그렇다고 사실은 이렇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고 속만 탑니다. 저는 북한이 망하면 어떻게 대응할까, 어떻게 수습할까 이런 준비를 할 수 있을 때만이 제대로 된 통일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펄펄 뛰면 몰래 준비하면 되지요.
박근혜 대통령의 여러 정책 중에 지금 대북정책 지지율이 가장 높은데,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지지율이 쭉쭉 오른단 말입니다. 그게 뭘 의미하냐 하면 북한하고 상대하기도 싫으니 그냥 이렇게 등 돌리고 살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북한 사람들이야 가난하니까 통일이라도 해서 잘 살자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남쪽 사람들이야 굳이 경제가 다 파탄 난 북한을 흡수 통일해서 북한 주민들 먹여 살리느라 자기들 호주머니에서 돈을 더 낼 생각이 없거든요.
통일준비위원회에서 연합제 통일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사정은 잘 알고 있지만, 너무 그것에 매달려 있으면 또 돈만 날리며 공허한 말장난이나 하는 것밖에 안됩니다. 또 그러면 저는 거들떠도 안볼 겁니다. 그런 건 수십 년간 실컷 봐서 신물이 납니다. 진짜 일을 하는 위원회라면 겉으로 보이는 것 보다 겉에선 안 보이는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남쪽의 박근혜 대통령은 뭔가 국민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데 비해 김정은은 요즘 너무합니다. 최근엔 맨날 군부대 가서 군사놀이 지휘하는데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지도자가 백성을 먹여 살릴 생각보다 군대에 이렇게 집착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요즘 북한이 며칠 간격으로 그냥 미사일을 쏘고 방사포를 쏩니다. 미사일이란 것이 20년, 아무리 길어야 30년이면 내부 마모로 사용기한이 끝납니다. 북한이 지금 쏘는 미사일도 조금 지나면 폐기해야 할 것들일 겁니다. 그럴 바엔 훈련이라도 쏴버리는 것이 좋죠. 한국도 북한 못지않게 매일 같이 사격훈련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국가 지도자가 가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죠. 김정일 때는 별장에서 주지육림의 휴식을 취하다 바람도 좀 쏘일 겸 인민들에게 일한다는 것도 보일 겸해서 주변 군부대 방문해 기관총 쌍안경 나눠주는 쇼를 했는데, 김정은은 젊어서 그런지 장령들 자동보총 사격대회 하지 않나 다 늙은 해군군관들 10키로 수영시키질 않나 뭔가 가서 대장 노릇하길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지도자가 나라를 어떻게 부흥시킬까 이런 것에 머리를 써야지 끝없이 동해와 서해를 번갈아 가면서 미사일 재고떨이 하는 거나 쳐다보며 멍청하게 웃고만 있으니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김정은에게서 가식으로나마 인민생활개선위원회나 부정부패처벌위원회나 아무튼 이런 주민들이 좋다는 위원회 만들고 지지율 높일 생각을 하는 철든 정치인다운 모습 보는 날이 오긴 올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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