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 남쪽은 여름 휴가철에 접어들었습니다. 여기는 여름과 겨울에 각각 한주일 이상씩 휴가를 씁니다. 여름휴가는 대체로 자녀들 학교 방학이 시작되는 7월20일 경부터 시작해 8월말 사이에 가장 많이 갑니다. 휴가는 보통 온 가족과 함께 산과 바다, 계곡으로 가는데 이때는 전국 어딜 가나 인파로 넘쳐납니다. 요새는 비가 많이 와 휴가 망친 사람들 많습니다.
북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여름에 더우니깐 바다 가는 것을 이해하겠는데 산과 계곡엔 왜 가냐 의아해 하실 수도 있습니다. 여기 남쪽은 인구 밀도가 워낙 높다보니 인구의 81.5%, 그러니깐 5000만 명 중에 무려 4000만 명 이상이 도시에서 삽니다. 도시 사람들에겐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 보낼 수 있는 차가운 계곡물과 산속의 오염되지 않은 공기가 그리울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과 함께 낮에는 계곡물에서 놀고, 저녁에 불고기 구워먹으면 참 좋지요.
북쪽은 지방에 가면 공기도 좋고 비록 마을 주변 산들은 민둥산이지만 계곡물만큼은 정말 오염도 안 되고 깨끗합니다. 남쪽에선 차를 타고 멀리 가야 깨끗한 계곡물을 만나지만 북에선 주위에서 이런 곳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배만 부르면 북쪽도 여름에 만족도 높은 피서를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여름에 휴가를 가는데, 바다를 좋아해서 산과 계곡은 잘 가지 않습니다. 바다도 사람들이 너무 많은 이름난 해수욕장은 싫어합니다. 바다에선 날바다를 헤치며 헤엄을 쳐야 제 맛인데 여기 해수욕장들은 익사사고를 막기 위해 해변에서 조금만 나가도 호각을 불면서 못나가게 합니다. 그러다보니 좁은 구역에 사람들이 몰려서 헤엄은 거의 못치고 물장구나 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이 싫어서 저는 서해 섬에 갑니다. 서해에는 섬들이 참 많습니다. 백사장이 있는 조용한 섬에 배를 타고 나가 며칠 보내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섬에 가서 어디서 먹고 자는지 궁금하시죠. 여기는 피서 문화가 발달돼 있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어딜 가도 먹고 잠잘 수 있는 숙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섬에도 평양 고려호텔보다 더 좋은 숙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좋은 숙소는 비싸고, 돈을 아끼려면 저렴한 숙소에서 자면 됩니다. 어느 숙소든지 TV와 냉장고 정도는 모든 방에 기본으로 있습니다.
단점은 서해바다는 밀물과 썰물 차가 심해서 물이 깨끗하지 못합니다. 동해가 가장 깨끗한데 문제는 동해엔 울릉도를 제외하면 갈만한 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울릉도는 너무 멀고 사람도 많이 가고, 또 거의 외국에 가는 것만큼 돈도 많이 듭니다. 그렇다고 동해안 해수욕장에 가려하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싫습니다.
남해는 동해보단 깨끗하지 못하지만 서해보단 깨끗합니다. 전라남도 쪽 남해는 서해 영향을 받아 물이 흐린데, 경상남도 쪽 남해는 같은 남해라도 동해 영향을 받아 물이 깨끗합니다. 또 남해 쪽에는 인구도 많지 않아 조용도 하고 다도해가 있어 섬도 많지만 문제는 가려면 너무 멀다는 애로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차로 대여섯 시간 가야 하는데, 피서철에는 워낙 고속도로가 많이 막혀서 그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결국 자주 선택하는 것이 서해 섬인데, 거긴 그래도 날바다에 있는 섬이라 물이 그리 더럽진 않습니다.
언젠가 제가 속초에서 울산까지 동해안을 쭉 일주한 적이 있습니다. 가보니 강원도 남쪽 정도만 비교적 깨끗한 자연적 풍경을 간직하고 있지 다른 곳은 환경이 많이 훼손돼 있었습니다. 해변가를 따라 도로를 놓고 방파제를 쌓아놓아서 온통 시멘트 구조물이고, 한 굽이씩 돌아갈 때마다 각종 숙소건물들이 바닷가 옆에 쭉 늘어서 있습니다. 남쪽이 워낙 인구밀도가 높아서 바닷가도 마을들이 숨 막힐 정도로 빽빽합니다. 동해를 일주하면서 앞으로 북쪽 바닷가는 이렇게 난개발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수영을 했던 곳은 부산이었습니다. 그런데 물에 들어갔다가 수온이 너무 따뜻해서 깜짝 놀랐는데 그때 북조선 최고의 목욕탕인 창광원이 제일 먼저 생각나더군요. 1990년대엔 석탄이 부족해서 창광원 온탕물이 뜨뜻미지근한 정도였는데, 부산 앞바다에 들어가는 순간 "물 온도가 창광원 온탕과 다를 바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이 따듯하니 부산에선 몇 시간이건 바다에서 나오지 않고도 수영할 수 있습니다.
북쪽 동해는 북극에서 오호츠크해를 거쳐 내려오는 찬물 흐름의 영향을 받다보니 수온이 너무 차서 30분 이상 들어가 있기 힘듭니다. 보통 15분에 한번씩은 모래에 나와 몸을 녹여야 하죠. 북쪽에서 수영하다 부산에 와보니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동해바닷물이 다 부산처럼 따뜻한 것은 아닙니다. 강원도에선 부산처럼 여기고 들어갔다가 물이 차서 화들짝 놀랐습니다. 강원도 쪽은 바닷물 수온이 북쪽하고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한국의 이곳저곳을 다녀보면 북쪽도 이렇게 곳곳을 다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남쪽보단 북쪽에서 거의 3배 가까운 시간을 살았지만, 정작 남쪽은 어지간한 지역을 다 가 봤는데 북쪽은 가보지 못한 곳들이 너무 많습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꼭 차를 몰고 북조선 방방곡곡을 다녀볼 생각입니다. 제가 고성에서부터 선봉까지 북쪽 동해안을 쭉 일주하는 날이 어서 오길 바라며, 또 저뿐만 아니라 남과 북의 누구나가 그렇게 자유롭게 올라가고 내려올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라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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