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잘 곳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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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 사람들이 휴가를 가기 전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강원도 동해에 갈까, 서해 바다에 갈까, 아니면 제주도 갈까 이러루한 걸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고 싶은 곳부터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비결이 뭔지 아십니까. 그건 바로 한국에는 어디를 가든 잘 곳이 무한정 많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돈만 내면 돈 낸 것만큼 좋은 곳에서 잘 수 있습니다.

숙박시설의 종류도 참 다양합니다. 호텔도 있고 여관도 있을 뿐 아니라 북에선 이름도 알지 못했던 펜션 모텔 민박 콘도 게스트하우스 유스호스텔 등등 종류가 정말 다양합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와서 놀랐던 것도 전국 어딜 가나 숙박할 곳이 널려있다는 이 점이었습니다.

호텔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숙박지 중에 제일 비쌉니다. 가격이 100딸라 정도면 좀 급이 낮은 호텔, 300딸라 정도면 5성급 정도에서 하루 잘 수 있습니다. 북에서 제일 좋은 고려호텔이나 양각도 호텔 정도는 한국에 갖다 놓으면 중간급 정도입니다. 고려호텔 하루 밤 숙박비가 200딸라 정도인데, 물가를 감안하면 엄청 비싼 겁니다. 그 정도면 물가가 엄청 비싼 한국에서도 고려호텔보다 더 좋은 호텔에서 잘 수 있습니다.

그리고 콘도니 펜션이니 이런 것은 가정집과 똑같이 꾸려놓았습니다. 밥도 요리도 해먹을 수 있게 주방용품들도 일식으로 다 갖춰져 있어 놀려가서 제집처럼 밥 해먹고 자고 이렇게 할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민박은 개인집에서 방을 내서 자게 만든 곳이고, 여관과 모텔은 잠만 잘 수 있는 곳인데, 가격은 저렴해도 시설은 다 잘돼 있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자기 가고 싶은 곳을 검색하면 숙박업소들이 쫙 뜹니다. 실례로 제주도를 치면 제주도에 있는 수백 수천 개의 각종 숙소가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설명이 돼 나오는데, 이런 것을 쭉 읽어보고 자기가 마음 드는 곳에 예약하면 됩니다.

한국에 호텔은 600개 이상이고, 모텔은 무려 3만 5000개 이상이라고 합니다. 북한에 호텔이 10개는 될까요. 그에 비하면 한국은 호텔이 엄청 많은 편인데, 그래도 미국과 비교하면 100분의 1도 안됩니다. 미국은 땅이 엄청 넓으니 어디 갔다 하루 만에 오기 힘듭니다. 보통 주 하나가 북한보다 더 크고 웬만하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니 숙박시설이 많아야겠죠.

하지만 한국은 전국이 당일에 갔다 올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지금 기차를 타면 딱 2시간 18분 만에 갑니다. 서울에서 일찍 아침 먹고 떠나 부산에서 일보고 다시 서울에 와서 점심 먹을 수 있는 겁니다. 그것도 2년 뒤에는 서울-부산 거리가 1시간 45분으로 또 단축됩니다. 서해 끝인 목포도 2시간 남짓 가니 말 그대로 전국이 일일생활권입니다. 이러면 가서 자고 오기보단 가능하면 일 보고 집에 와서 자려 하는 사람이 많으니 숙박지가 미국만큼 발달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신 어디 놀려간다 이럴 경우엔 차 타고 가서 타지 숙소에서 며칠 동안 지내다 올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숙소가 전국에 널렸다는 점이 안 좋은 점도 있겠죠. 방송에서 말하긴 좀 적절치 않아 보이지만 사방에 모텔 이런 것들이 널려 있으니 불륜을 저지르기도 너무 쉬운 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 듣고 남조선이 참 문제다 이렇게 걱정하기 전에 솔직히 바람피울 장소조차 없는 북한이 더 큰 문제입니다.

제가 어릴 때 어디 가면 군마다 여관 하나씩 있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하긴 놀려 다니는 사람들이 없으니 그때는 출장자들을 위해서만 숙박시설이 있으면 됐죠. 좀 외진데 다니면 집집마다 문 두드리면서 "하루 밤 묵고 갈 수 없습니까"하고 사정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요샌 사회가 어수선하니 누굴 믿고 들여놓고 재우겠습니까.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기차가 며칠씩 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추운 역전에서 잘 수가 없어 대기숙박이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기숙박이라는 것이 개인집 방을 빌려준다는 의미에서 한국의 민박과 비슷한 개념인데, 사적 소유를 허용하지 않는 북에선 이런 것도 단속 대상입니다. 물론 대기숙박을 중심으로 매춘행위가 광범위하게 확대되니 단속하기 시작한 측면도 있겠지만 북한에서 어디 가서 자도 인민반에 숙박신고를 해야 하는데 대기숙박은 신고를 안하니 당국이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할 수 없어 단속하는 측면이 더 큽니다.

아니, 사람이라는 것이 자기 나라도 마음대로 못 다니니, 이런 나라가 세계에 북한 말고 또 없습니다. 인간의 천부적 인권 중에 가장 중요한 인권의 하나가 거주 이전의 자유, 이동의 자유인데 여러분들은 태어나서부터 이런 가장 중요한 인권이 내 것 아닌 줄 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계는요, 한국만 어디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외국에 간다 이러면 인터넷에서 미국이든, 영국이든 아무튼 전 세계 수만 개 호텔을 다 찾아볼 수 있고, 내가 묵고 싶은 곳에 묵을 수 있습니다. 여긴 숙소가 깨끗하고, 저긴 수영장이 멋있고, 또 저긴 아침밥이 맛있게 나오네 이런 식으로 비교하면서 고를 수 있는 세상입니다. 고른 다음에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그 나라 도착하면 택시에 어느 호텔 하고 소리만 치면 호텔에 데려다 줍니다.

북에서 요새 경제개혁 소리가 나오는데 다른 건 다 떠나서 우선 개인들의 사적 영업을 허용해줬으면 합니다. 그러면 가장 먼저 숙박업과 식당업이 발달할 겁니다. 그리고 그 단계를 거쳐야 사람들이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나라 경제도 삽니다. 북한 당국이 이런 초보적인 경제개념 정도는 알고 개혁을 한다 어쩐다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