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0층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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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주에 여름휴가를 내서 전라도 완도라는 곳에서 보냈습니다. 시원한 백사장도 있고, 산도 있는 곳에서 모처럼 머리를 식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휴가라고 해도 시원한 집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요즘 날씨가 무척 덥죠. 밖에 나가 있어도 저절로 땀이 줄줄 흐릅니다. 올해가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더운 날에 공사장에서 땀을 뻘뻘 흘릴 사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바로 여명거리 건설장인데요, 가만 서있기도 힘든 날에 무거운 벽돌을 등짐으로 나르고, 시멘트 몰탈을 이기고 할 사람들은 얼마나 고되겠습니까. 한국은 작업장이나 집이나 에어컨이 있어 시원하게 보내지만, 북한 근로자들은 하루 종일 고생하고 돌아가 에어컨은커녕 시원한 물로 목욕조차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방송을 들으면 목욕은 됐고, 배나 불렀으면 좋겠다하는 사람들도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예전에 북에 있을 때 여름에 노력동원 많이 나갔는데 제일 힘들었던 기억은 공화국 창건 군중시위를 연습한다고 한 여름에 3달 내내 고생했던 일 같습니다.

아침마다 일어나 김일성대에서 김일성광장까지 한 시간 반 거리를 무거운 깃발대 묶음을 메고 다녔습니다. 땡볕으로 달아오른 화강석 바닥에 하루 종일 서서 깃발을 들었다 놨다 하는 연습을 석 달하니 몸무게가 40㎏ 초반이 되더군요. 그런데 그때는 젊어서 그런지 버텼습니다. 그 삶이 지옥과 같다는 점은 바깥세상을 모르니 전혀 알 수가 없었고요. 그런데 이젠 북에 돌아가 과거처럼 산다면 단 하루도 견딜 것 같지 못합니다.

제가 위성사진을 통해 여명거리 건설장을 내려다보았더니 사방에 건설자들이 자는 임시 숙소들이 들어차 있더군요. 김일성대의 유일한 운동장에도 박스같은 숙소들이 꽉 차 있어, 요즘 김대 학생들은 볼을 찰 곳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여명거리 건설하면서 제가 지냈던 기숙사도 다 허물어 버렸더군요. 6년의 추억이 간직돼 있던 기숙사 자리에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던데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5시 반에 기상해서 빗자루로 빡빡 쓸었던 기숙사 마당은 머잖아 누군가의 아파트 마당이 돼서 아이들이 뛰어놀겠죠. 그들은 전혀 알 수 없겠죠. 그 마당에서 몇십년 전에 20대 청년들이 매일 아침 김일성 찬양 노래를 부르며 행진해 다녔다는 것을요. 나의 젊음이 흘러갔던 기숙사 방은 이제 기억으로만 남게 됐습니다.

이번에 여명거리 건설 소식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70층짜리 아파트를 건설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얼마 전 노동신문을 보니 55층과 50층짜리 아파트는 100일 만에 건설하고 70층 아파트도 63층까지 올라갔다고 자랑하더군요. 100일 만에 50층 넘게 올렸다고 자랑하는 것을 보면서 저게 과연 자랑꺼리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창건 기념일 맞추느라 저리 서두르는 걸까요. 그런데 100일 만에 건설한 아파트는 제대로 지어지는 것일까요. 부실공사 때문에 나중에 자그마한 지진이 오면 와르르 무너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평양에 집이 부족하니 열심히 짓는 것을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살림집이 많으면 그만큼 집 없는 사람은 줄겠죠. 다만 저는 안전하게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정은이 지시한 날짜를 맞추느라 무리하게 부실공사를 하다가 나중에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일은 절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70층 정도의 아파트는 한번 무너지면 수천 명이 죽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 속담에 이빨도 안 난 아이가 콩밥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평양에 왜 70층짜리 아파트가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서울은 평양보다 절반 밖에 안 되는 땅에 1000만 명이 몰려 사니까 정말 땅이 귀하고, 그러니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서울도 50층 넘는 아파트는 거의 안 짓습니다. 50층은 살기가 너무 불편합니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도 진짜 오래고, 여러모로 사람은 높은 곳에서 사는 게 불편합니다. 그런데 평양은 땅이 많아 20~30층짜리만 지어도 충분한데, 그럼에도 굳이 70층짜리를 짓는 것은 김정은의 허영심을 만족시켜주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70층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난방도 안 오고, 전기나 물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요. 고난의 행군시기 그런 시절을 보냈던 평양 사람들은 그 말에 진저리를 떨 것입니다. 저는 고층 아파트에서 김치는 어떻게 담궈 먹는지도 궁금합니다. 남쪽은 김치 냉장고란 것이 있지만 평양은 그런 거 구입하기 쉽지 않지요. 그리고 여긴 다른 반찬이 많아 김치를 거의 먹지 않지만 북한은 김치가 한 해 겨울을 나는 식량과 마찬가지라 많이 담궈야 합니다. 4인 가족이면 거의 1톤을 담글 텐데 그걸 70층이나 올려다 베란다에 독을 잔뜩 놓고 벼 껍질로 보온을 하려면 기가 막힐 겁니다. 김정은이가 그런 대책은 세웠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들어보니 전기는 잘 온다고 들었습니다. 전기가 오면 지금 당장이야 물도 잘 보장이 되겠고, 엘리베이터도 다닐 것이며, 전기 난방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거냐는 질문에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죠. 지금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로 유엔의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보아 앞으로 경제 상황이 좋아질 확률보단 나빠질 확률이 높습니다.

70층 아파트에 살다가 며칠만 전기가 끊기면 정말 재앙입니다. 이건 걸어 내려갈 수도 없고 말입니다. 저라면 절대 30층 이상에선 안삽니다. 김정은의 허영에 맞추느라 한 여름 땡볕 속에서 건설하는 사람도 힘들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모험이고... 서울에서 시원한 여름을 보내는 저는 여러분들이 너무 안쓰럽습니다. 정말 북한에도 좋은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