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무덤 스스로 파는 탈북자 유인납치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달 16일 국회 정론관에서 중국 변방에 억류된 김광호씨 가족의 사진을 들어 보이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달 16일 국회 정론관에서 중국 변방에 억류된 김광호씨 가족의 사진을 들어 보이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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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 방송 듣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올 1월 북에 되돌아가 기자회견을 했던 김광호 가족이 재탈북했다가 연길에서 체포됐습니다. 그때 기자회견에 김광호와 그의 아내, 그리고 어린아이까지 3명, 여기에 더해 고경희란 여성까지 4명이 나왔습니다. 이들은 기자들 앞에서 "남조선은 사기 협잡꾼들이 판을 치는 썩어빠진 세상이고, 우리는 도무지 살 수가 없어 김정은 장군님 품으로 돌아왔다"고 목청을 높여 말했습니다.

이랬던 이들이 불과 반년도 안 돼 모두 다시 탈북했습니다. 고경희 씨는 북에 남겨둔 아이를 데리려 중국에 갔다가 보위부 함정에 빠져 끌려간 경우입니다. 애초에 북에 갈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기자회견을 보고 저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만약에 내가 가령 북한 국경 취재를 갔다가 보위부 해외공작조에 납치됐다, 그래서 보위부에서 네가 기자회견을 하면 살려주겠다 이러면 나는 과연 했을까. 안하면 온갖 고문을 다 당하고 조용히 죽여 버릴 것인데, 나는 지조를 지켜서 이름 모를 죽음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기자회견에서 남조선을 비난해도, 어차피 여기 사람들은 보위부에서 강요해서 한 것임을 다 알고 이해해 줄 것인데, 일단 내가 여기에 잡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러면 세상에서 떠들어 내가 살아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인간인 이상 이런 생각도 분명히 할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보면 저는 이렇게 몇 년째 대북방송도 하고, 북한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는 수많은 보도를 했기 때문에 용서 못할 반동중의 상반동인데, 그런 기자회견을 했다고 나를 살려둘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지조를 지키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보위부 고문 수법이 얼마나 악랄합니까. 일단 체포되면 지조를 지키기가 쉽지 않죠. 아무리 정신 육체적으로 잘 준비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체포돼 오랫동안 심리전과 고문 같은 것을 받게 되면 어느 순간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2008년 미국 대선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1967년 웰남 전쟁 때 공군 조종사로 폭격에 나섰다가 격추돼 웰남군에게 체포됐습니다.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모든 미군 포로와 마찬가지로 윁남군이 시키는 대로 미국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북한은 적에게 포로로 체포되는 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며, 체포되면 자폭하라고 교육합니다. 실제 1950년 전쟁 때 북으로 돌아간 인민군 포로들은 광산 탄광과 같은 제일 힘든 직장을 배정받고 정말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자식도 포로 출신이라는 성분에 걸려 아버지가 그렇게 살았듯이 최하층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 남쪽에 남으라고 엄청 권유했는데도, 기어코 장군님 품으로 돌아간다고 목숨 걸고 고집부리더니 믿었던 조국에서 뒤통수 제대로 맞았습니다. 아마 돌아간 거 후회안하는 사람 없을 겁니다.

예전에 일본군도 포로는 최고의 수치라면서 자결하라고 교육했죠.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매케인은 포로 송환으로 귀국해선 전쟁영웅으로 대중의 존경을 받고 온갖 훈장을 받았습니다. 30년 가까이 국회의원을 지냈고 대통령 후보까지 나섰습니다. 미국에선 그가 포로로 잡혀서 적의 고문에 굴복했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 상황을 다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진국과 북한의 차이입니다. 그 차이는 결국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귀중히 여기냐 이런 차이겠죠.

이런 사회이니 제가 보위부에 납치돼 기자회견을 해도 비난보단 동정을 하는 사람이 대다수겠죠. 하지만 저도 인격이 있는데 절대로 비굴해지고 싶진 않습니다. 제가 보위부에 협조할까, 아니면 지조를 지킬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저는 현재론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하겠습니다. 결국 그때 가봐야 알겠죠. 제일 중요하게는 바보처럼 보위부 함정에 빠지면 안 되겠죠.

아무튼 김광호나 고경희는 기자회견한 대가로 목숨은 건졌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반년도 안돼 다시 탈북했고, 불행히도 고경희는 도중에 체포돼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다 합니다. 김광호는 가족은 물론 처남, 처제까지 다 데리고 나오다가 연길에서 공안에 체포됐습니다. 기자회견까지 해놓고 북한 보위부가 체면이 말이 아니죠. 연길에 대표단을 보내 다시 북으로 데려가려 하는데, 중국이 보내주지 않습니다. 세계가 지켜보는데, 죽을게 뻔한 북에 보냈다간 얼마나 욕먹겠습니까. 이들은 결국은 한국에 올 것 같습니다.

저는 보위부가 저지르는 탈북자 유인 납치 공작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100명만 데려가도 그들의 입을 어떻게 통제합니까. 또 납치한 사람이 다시 도망치면 끌고 간 사람도 책임이 따를 겁니다. 그러니까 이번 김광호 사례를 보고 교훈을 얻고 탈북자들을 유인해 납치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그만두었으면 합니다. 제가 장담하는데, 남쪽에서 자유와 풍요를 체험한 사람은 북에 가선 절대 적응해서 살 수 없습니다. 다시 도망치든 아니면 북한에서 불평하다 수용소 가든 아무튼 문제가 생겨 납치한 보위부 사람도 처벌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아무 짓도 안하는 것이 제일 무난하다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 드리면서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