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남조선 인민유격대원으로 둔갑한 김신조 부대원들

0:00 / 0:00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980년대에 제가 당시 한국 대통령이던 전두환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비난하는 그림책을 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림책 내용 중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68년에 청와대 경호를 담당한 30대대장으로 있으면서 남조선인민유격대의 청와대 습격을 악질적으로 막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인민유격대원들이 보총을 들고 돌격하는 그림에 이어 흉측하게 그려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총알이 날아드는 전장에서 권총을 빼들고 부하들을 지휘하며 고함을 지르는 그림 등이 그려져 있었고요.

그런데 저는 그걸 보면서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1968년이면 6.25전쟁이 끝나고도 15년이나 지난 뒤인데 그때까지 남조선에서 인민유격대가 활동했다는 것과 그들이 수도 서울의 청와대까지 밀고 내려왔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모든 일에 의문을 잘 가지는 아이었습니다. 그런 의문을 갖는 습관 때문에 모두가 잘 먹고 잘산다고 선전하는 북조선 제도의 모순을 남보다 빨리 체득하고 결국 남쪽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여기 와서도 의문을 캐는 기자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어렸을 때 궁금하던 점들을 여기 남쪽에 와서 관심 있게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진실을 몰랐던 역사의 사건들을 북에서 여전히 잘못된 선전만 받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됐습니다.

1968년에 청와대를 공격한 것은 남조선 인민유격대가 아니라 북에서 내려 보낸 특수부대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1968년 1월 북조선은 전원 군관으로 구성된 최정예 특수부대 31명을 파견했습니다. 원래 김창봉 시절의 특수부대는 혹독한 훈련을 받기로 유명했습니다. 아직까지도 당시 특수부대인 '잠바부대'의 전설이 북에 남아있죠. 이 부대가 청와대 인근까지 왔다가 들켜서 결국 총격전 끝에 31명 중 29명이 죽습니다. 그리고 이때 특수부대 소탕작전에 참가했던 부대 중 하나가 바로 전두환 중령이 지휘했던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였고요.

저는 그걸 보고 북조선이 내부 선전용 그림책을 제 맘대로 막 그리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어떤 것은 전혀 엉터리만 꾸며내 것은 아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당시 전두환 중령이 30대대를 지휘했다는 사실은 북에선 남조선 자료를 접하는 극히 몇 명밖에 모를 텐데 그걸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까지 반영했으니 말입니다. 당시 살아남은 2명 중 한명은 여기서 생포됐고, 1명은 끝내 도주해 북에 돌아갔습니다. 생포된 김신조 소위는 지금 한국에서 목사가 돼 있습니다. 북에 돌아간 1명은 지금 인민무력부 부부장인 박재경 대장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북에선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대남공작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저도 남조선에 침투했다 일단 발각되면 어린이든, 늙은이든 모두 죽여야 한다, 나무꾼을 살려주었다가 화를 입었다는 등의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아마 그 이야기가 1968년 실패한 청와대 습격 이후에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특수부대가 실패한 이유가 산에서 발견된 나무꾼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는데, 그 나무꾼이 신고함으로써 발각됐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 이야기가 북에 퍼졌는지는 저도 궁금합니다. 몇 달 뒤부터 본격적으로 침투한 북조선 특수부대는 주민들을 보는 즉시 죽였는데, 9살 아이까지 입을 찢어 죽일 정도로 잔인했습니다.

북조선 특수부대가 침투했다 몰살당한 가장 최근의 대표적 사건으로 1996년 9월 강릉잠수함 침투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대남공작원들을 싣고 왔던 잠수함이 폭풍 속에 해안으로 너무 접근했다가 바위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게 됐고, 결국 승조원 26명이 모두 해안에 상륙해 육지로 북에 올라가려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걸 그 당시 들었습니다. 소문에 밝은 제 친구 한명이 잠수함 승조원 26명이 남조선에 침투했다 들켜서 몽땅 자총했다고 슬그머니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큰 간부라 쉬쉬 얻어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몽땅 자총한 것은 아니고, 탈출 과정에 여러 개 조로 분산됐는데 가장 많게 12명이 소속된 팀에서 11명 팀원들을 함장이 다 쏴 죽였습니다. 그리고 함장은 비겁하게 자긴 자총하지 않고 북으로 도망치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매복에 걸려 죽었습니다.

작년 가을에 보니 중앙TV에서 50분 분량의 '누리에 빛나는 선군태양'이라는 기록영화를 방영했는데, 여기에서 이 잠수함 승조원들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하더군요. 물론 어떤 사건으로 어떻게 죽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수북이 쌓인 탄피를 배경화면으로 수류탄 3개를 보여주면서 "전투근무 수행 중 폭풍에 떼밀려 남쪽으로 흘러가 적의 포위에 들었을 때 누구도 명령한 사람은 없었건만 전사들이 틀어쥔 자폭의 수류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1분30초가량 군복차림의 남성 25명의 사진과 훈장을 소개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대충 1996년대 잠수함 사건 승무원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26명 중 상위 1명이 한국군에 생포됐고 그 사람은 지금 한국 해군에 근무하고 결혼도 했습니다.

이야기 하다보니 어느새 제게 차례진 방송시간이 다 흘렀군요. 하지만 이 정도 말해도 여러분들은 북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진실을 많이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시간엔 여러분들 대다수가 잘못 알고 있는 랑군 폭파사건과 칼기 폭파사건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