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새 내일 모레면 광복절인데 해방 후 71년 동안이나 남과 북은 여전히 갈라져 싸우고 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더구나 남과 북은 체제가 전혀 다르고 완전히 교류가 차단돼 있어 우리의 71년 분단은 유럽 같으면 150년쯤 분단돼 있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민족의 얼을 지켜 통일을 원하고 있습니다. 광복 전엔 우리 민족의 소원은 조국해방이었고, 광복이 돼서는 조국통일이 소원이 됐습니다. 조국이 통일되면 그땐 우리 민족의 소원이 뭐가 될까요.
언젠가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해방 후 제가 서울에 살았다면 지리산 빨치산이 되지 않았을까. 그때는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사회주의 사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습니다. 저도 그런 사회가 가능할 거라 믿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해보니 이론과는 전혀 달랐죠. 저는 근본 패착이 인간의 이기심을 개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기심은 쉽게 바꿔지지 않았죠. 오히려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인민들을 데리고 가겠다던 김일성이야 말로 이기주의의 극치였죠. 자기가 평생 다 해먹고, 아들한테 물려주고, 이젠 손자까지 북한을 가로 타고 앉아서 왕 노릇을 하면서 호의호식을 하니 말입니다. 만약 제가 광복 후에 서울에서 살았고 빨치산이 됐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결국 김일성 좋은 노릇만 했겠죠. 불가능한 헛된 이상을 추구하다가 산에서 허망하게 죽는 신세가 됐을 거란 말입니다. 그렇게 보면 저는 나중에 태어난 것이 다행스러운 것 같습니다.
그럼 제가 해방 전에 태어났다면 어떤 길을 택했을까요. 해방 전에 일제의 통치 하에 살았던 우리 인민에겐 크게 세 가지 길이 놓여있었습니다. 저항하든가 적극 협조해 친일파가 되거나 아님 조용히 숨죽여 살던가. 이는 외세에 짓밟혀 식민지가 된 인민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선택의 모순입니다. 제 성격으로 보면 일제에게 순응하지도 반항하지도 않고 조용히 촌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진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김일성대까지 나와 간부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체제의 부조리를 깨닫고 순응의 삶 대신 목숨 걸고 탈북을 선택한 저의 성향으로 보아 친일파가 됐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결국 저는 반항하는 길을 택해 만주로 가서 빨치산이 될 확률이 컸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해방 전이나 해방 후나 저는 빨치산이 될 팔자였을 가능성이 컸네요. 지리산 빨치산에 대해 평가한다면 그 사람들 자체는 훌륭한 이상을 간직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의 눈엔 이상엔 충실했지만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이용물만 된 불쌍한 죽음들이라고 봅니다.
그럼 해방 전에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 바친 투사들도 그렇게 평가해야 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의 죽음이 조국광복에 기여한 역할은 미미했습니다. 어찌됐든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미국과 소련이 힘을 합쳐 일제를 쳤기 때문에 광복된 것이지 산에서 빨치산을 했다고 광복될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투사들은 이용당한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에 저는 그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죽음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런 분들은 후대들이 기억하고 높이 평가해줘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광복절이 70번이나 되돌아올 동안 이념으로 갈라진 남과 북에선 많은 열사들이 잊혀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에선 공산주의 계열이라며 항일연군 활동을 인정하지 않고, 북에선 빨치산 출신들, 그중에서도 김일성이 있었던 동북항일연군 2군 계열의 빨치산만 평가를 합니다. 그러는 바람에 나라의 해방을 위해 목숨 바친 많은 투사들은 잊혀졌습니다.
1938년 겨울쯤부터 일제는 동북에서 활동하던 항일연군을 없애버리기 위해 대토벌을 감행합니다. 1940년대 초반까지 참빗을 훑듯이 산을 뒤져 토벌을 하는 바람에 3만 명이나 되던 항일연군이 다 죽거나 포로가 돼 3000명 정도만 살아남습니다. 다시 말해서 10명 중 9명이 죽고 한 명만 산 것입니다. 그 살아남은 한명에 김일성도 포함이 됐습니다. 일제와 싸우다 죽거나 투항한 9명 중에는 김일성보다 훨씬 쟁쟁한 사람도 정말 많았습니다. 얼마나 아까운 사람들이 많이 죽었겠습니까. 그렇지만 결국 역사는 살아남은 그 한 명에 의해 다시 이어졌습니다. 김일성이 그때 죽었으면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졌겠죠.
김일성이 살아남은 이유는 남들보다 빨리 소련으로 피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2군 지휘권을 가진 위증민이 소련으로 가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김일성은 판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수십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도망갔습니다. 물론 저는 그게 비겁해 보이긴 하지만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빨치산 지휘관의 주요 덕목은 칠 때와 빠질 때를 영리하게 아는 것입니다. 빨치산이 무턱대고 우세한 적과 싸우다 죽는 것은 현명하진 않습니다.
어찌됐든 그 도망간 수십 명은 나중에 북에 돌아와 항일투사로 대접받으면서 천수를 누렸고, 자손대대로 북한을 틀어쥐고 다 해먹고 있습니다. 10년 정도 산에서 싸운 보상을 몇 십배로 받았습니다. 순국한 선열들은 목숨 바쳐 찾으려던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북한은 일제 치하보다 더 악랄한 독재국가가 되고 급기야 백만 명이 넘게 굶어죽은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하늘에서 통곡하겠습니까.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그들의 꿈을 이뤄주는 것일 겁니다. 저는 비록 해방 전후에 태어나지 못해 빨치산이 되진 못했지만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은 바로 하루빨리 북한 독재체제를 끝장내고 통일을 이뤄 민족이 부흥하는 국가를 만드는데 이바지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그 길에 함께 적극 동참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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