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한국에서 선호하는 직업은

0:00 / 0:00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한국에 와서 의사, 판검사, 변호사 이런 직업이 매우 인기가 좋은 것을 보고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에서 의사하면 물론 의학대학 6년 나와야 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리 좋은 직업이라고 보지는 않지 않습니까. 북에서야 당 간부, 보위부, 보안서 이런 권력기관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선호되고, 그리고 외화벌이 기관에 들어가 딸라라도 좀 만지는 것이 또한 선호되지 않습니까. 북에서 의사는 신분으로 따지면 봉건사회에서 양반 다음의 중인 계급 비슷한 신분입니다.

그런데 밖에 나와 보니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이나 다른 자본주의 나라들도 의사가 아주 선호되는 직업인데, 그 이유야 어디 딴 데 있겠습니까. 돈 잘 버니까 그러는 거죠. 대신 의사 되려면 쉽진 않습니다. 학교 때 당연히 학교에서 최상위권에 들어가야 할 뿐 아니라 남들이 다 대학 4년 다닐 때 6년 다녀야 합니다. 이건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대학 또 나와서 병원에 들어가서 수련의 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나면 일반적으로 40살 정도 돼야 자기 병원 차릴 정도가 됩니다.

수련의 때는 그냥 아주 좋은 회사 회사원이나 비슷하게 월급을 받지만 병원 차리면 그때는 돈을 많이 법니다. 보통 수십 만 딸라를 1년에 번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이 사회는 경쟁사회이기 때문에 아주 뛰어나고 유명한 의사로 소문나면 몇 천만 딸라도 벌수 있지만 인기가 없으면 병원 차렸다 환자들이 오지 않아 망해서 빚더미에 올라앉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자기 운명을 자기 자신이 개척한다는 주체사상의 정신이 잘 반영돼 있는 분야이기도 하지만 사실 망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워낙 의사라는 분야가 전문성과 경험이 필요하다 보니 자기 병원 망해도 다른 병원에 가서 월급 받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북에서도 제대로 된 사회가 되려면 간부처럼 호통 치는 사람보단 이렇게 고급 기술을 가진 사람이 많아야 되고 대접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검사가 인기가 좋은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이야 어디 안 썩은 데가 없으니 어디 가서 검열이라도 하겠다고 그러면 뇌물이 줄줄이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다만 북에는 판사, 변호사가 몇 명 안 되기도 하고 검사에 비해 하는 역할도 거의 없어 인기는 없죠. 대신 북에는 법학부가 김일성대만 있기 때문에 판검사 숫자가 많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선 판사나 검사, 변호사가 되려면 법조인 시험인 사법고시라는 것을 통과해야 합니다. 한국도 1960년대엔 매년 100명 정도만 사법시험을 통과할 때도 있었다는데, 이때는 판검사 합격하면 곧바로 해당 지역에서 영감님 소리 들으면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한국에 온 10년 전만 해도 변호사가 보통 10만 딸라 정도는 벌었습니다. 판사 검사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연봉은 5만 딸라에서 10만 딸라 사이에서 받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바늘구멍 같은 시험을 통과한데 비해선 많이 번다고 할 수 없는데 대신 어디 가나 대접받고, 또 판사 하다가 은퇴해서 변호사 사무실이라도 하나 차리면 해마다 수십, 수백 만 딸라는 어렵지 않게 벌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법관의 문턱이 많이 낮아져서 사법고시 합격자가 매년 1,000명이 넘는데다, 몇 년 전부터는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겨나면서 한해에 수천 명의 법조인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래서 요즘은 변호사 인기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사법시험과 함께 여기는 행정고시라는 것도 있는데, 공무원이 되려면 이 고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여기는 공무원이 장관급, 차관급에 이어 1급부터 9급까지 있는데, 1급은 중앙부처 국장급입니다.

행정고시도 가장 높은 단계를 통과하면 5급부터 시작하고, 보다 낮은 단계는 7급부터 시작합니다. 한국에서 공무원은 돈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닙니다. 말단 공무원은 한 달 1,500딸라 정도에서 시작해서 보통 4,000~5,000딸라 받을 때 퇴직합니다. 한국의 가정 당 평균 소득이 3,500딸라 정도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혀 높지 않은 월급이고 살아가기도 빠듯하지만 대신 공무원은 해고될 걱정도 없고 또 은퇴하면 연로보장비가 매달 2,000딸라 넘게 나옵니다. 요새처럼 경제가 불확실한 시대에는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해서 공무원이 인기 좋습니다.

여기는 중고등 교원도 모두 공무원으로 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북한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이 결혼상대로 어떤 직업을 선호하는지 조사하면 여교원이 1,2위 안엔 듭니다. 교원은 많이 벌지 못하지만 은퇴할 때까지 꾸준히 안정적으로 소득이 있고 은퇴해서도 노후생활비가 적잖게 나옵니다.

똑같은 공무원이지만 외교관이 되려면 외무고시라는 것을 통과해야 합니다. 북한처럼 가난한 나라에선 외교관이 된다는 것은 엄청 집안 좋은 자식이 아니고선 꿈도 꾸기 힘듭니다. 외교관이 돼야 일반인은 꿈도 꾸지 못하는 외국구경도 하고 딸라도 만지기 때문에 정말 대단한 직업이죠.

하지만 한국에선 돈만 있으면 누구나 외국 구경 다닐 수 있고 딸라도 필요하면 은 행에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 외교관이어서 누릴 수 있는 특권도 많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 외교관은 성분 같은 것을 안 따지고 공부 잘해서 시험을 쳐서 통과하면 됩니다. 외교관이 한국에서 괜찮은 직업에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처럼 일반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직업은 아닙니다.

이래저래 보면 한국에서 결국 좋은 직업은 공부 잘하고 시험 잘 본 사람들에게 돌아가네요. 여긴 출신성분도 안보니 결국 시험으로 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일반적인 회사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