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믿었던 조국에 배신당한 인민군 대위

1983년 10월 9일 버마 아웅산 테러 폭발로 인해 무너진 건물.
1983년 10월 9일 버마 아웅산 테러 폭발로 인해 무너진 건물.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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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믿었던 조국에 배신당하고, 결국 머나먼 열대의 감옥에서 외롭게 숨져간 인민군 대위 강민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할까 합니다.

강민철, 본명 강영철은 1957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군대에 갔다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특수부대원을 양성하는 군관대학에 선발됐습니다. 35키로 배낭을 지고 120리 넘게 강행군해야 했고, 무장을 갖추고 50리를 수영하는 등 살인적 교육을 최우수 성적으로 통과한 그는 졸업하면서 곧바로 대위가 됐습니다.

1983년 그가 27살 되던 때 그의 부대 상관이던 강창수 중장이 직접 그를 불러 임무를 주었습니다. 그는 김진수 소좌와 신기철 대위와 한 팀을 이루어 버마로 가서 현지를 방문하는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전 대통령이 버마 독립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묘를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묘에 폭탄 3개를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도착 전에 수행원들이 먼저 묘에 온 사실을 모르고 폭발 단추를 서둘러 누르는 바람에 전두환 대통령 살해엔 실패했습니다. 곧바로 버마 군과 경찰이 테러범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신기철 대위는 현장에서 총에 맞아 죽습니다. 그리고 조장인 김진수 소좌는 체포됩니다.

강민철 대위는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탈출하려 했습니다. 임무를 받을 때 계획대로 임무를 수행하고 어디까지 오면 조국으로 데려올 배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약속장소에 도착해보니 배는 없었고 뒤로는 버마 군인들이 포위망을 좁혀왔습니다. 그는 수류탄을 꺼냈습니다. 원래 수류탄은 핀을 뽑고 안전핀을 잡고 있으면 터지지 않는데, 그의 수류탄은 핀을 뽑자마자 바로 터져버렸습니다.

이 폭발로 강민철은 왼쪽 팔이 절단되는 등 온몸에 파편상을 입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병원에 후송돼 수술을 받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는 병상에서 배신감으로 몸을 떨었습니다. "아, 조국이 날 죽여 버리려고 핀만 뽑으면 터지는 이런 수류탄을 지급했구나." 결국 그는 감옥에서 모든 것을 고백했습니다. 함께 잡힌 조장 신기철은 입을 열지 않았고 2년 뒤 현지에서 처형됐습니다만 강민철은 다 고백한 것이 감안돼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북조선은 아웅산 테러를 전두환 정권의 날조극으로 몰아갔습니다. 하지만 이 테러로 부총리, 핵심 장관 3명을 포함해 한국을 이끌어나가는 고위급 인사 무려 17명이 사망했습니다. 무얼 얻을 것이 있다고 자기 정부 핵심 인물들 다 죽이면서 자작극을 벌이겠습니까. 더구나 강민철이라는 산증인도 있습니다. 그날 제가 일하고 있는 동아일보의 기자도 사망했는데 그의 초상화는 지금도 우리 신문사에 걸려있습니다.

북에 남은 강민철 대위의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요. 강 대위에게는 부모와 누이동생, 애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변절자의 가족이라고 모두 관리소로 끌려갔겠죠. 사실 진짜 배신자는 핀만 뽑으면 폭발되는 수류탄을 준 북조선 당국이 아닐까요.

강민철은 버마 '인세인'이란 감옥에서 2008년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죄수도 20년 안에 사망한다는 그 열악한 감옥에서 절단된 팔과 파편상을 입어 어느 한군데도 성한 곳이 없는 몸으로 무려 25년을 버틴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정신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를 받아준 조국도, 기억해주는 조국도 없었습니다.

북조선이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시켰던 김현희도 지금 한국에서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고 살고 있습니다. 북에선 아유미로 알려져 있는데, 그 역시 김일성대를 다니다가 공작원들을 양성하는 대학인 지금의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공작원으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역시 훈련받은 대로 체포 직전 독약 앰플을 깨물었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멀쩡한 젊은이들을 테러범으로 훈련시키고 그들이 체포되면 가족까지 다 죽이는 건 정말 부끄러운 짓입니다. 최근에도 북에서 한국 김관진 국방장관 암살조를 남쪽에 침투시켰다고 합니다. 한국은 북쪽에서 얼마든지 대규모 테러를 할 능력이 충분하지만 그런 비열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국가가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과 다를 게 없기 때문입니다.

이 방송 듣는 분들 중에는 해외에 나와 있는 분들도 많겠는데, 여러분들도 언제 강민철 대위처럼 버림받는 신세가 될지 모릅니다. 보십시오. 최근만 해도 박남기 재정부장, 류경 보위부 부부장처럼 한생을 바쳐 당에 충실했던 사람들도 순식간에 간첩 누명을 쓰고 처형됐습니다. 자기만 죽는 게 아니고 온 가문이 모두 멸족됩니다. 박남기의 가족도 얼굴도 모르는 7촌까지 34가족이 작년에 수용소로 끌려갔는데 불과 1년 반이 지난 지금 다 죽고 여자 2명만 살아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은지는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겁니다.

북한의 안팎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분들 판단 잘 해보시고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정해보십시오. 물론 가족을 팽개치고 오라는 말은 아닙니다. 바로 얼마 전에도 해외에 나와 있는 어떤 북조선 청년이 가족이 뻔히 피해를 입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여기 오겠다는 것을 제가 만류했습니다. 제가 세상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인생에서 가족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족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은 많습니다. 이 방송이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각도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분들 미래까지 생각하는 현명한 삶을 설계하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