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 여자축구팀이 이달 중국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김정은이 공항까지 나가 맞이하면서 성대한 환영식을 열었고, 뒤이어 성대한 상잔치도 펼쳐졌습니다.
주장 라은심과 홍명희, 김은주, 리명삼에겐 인민체육인 칭호, 나머지 주전 선수들은 전부 공훈체육인 칭호를 받았습니다. 또 여자 축구팀 감독인 김광민에겐 김정일상을, 주효심, 리은심, 리향심은 김정일청년영예상을 각각 받았습니다. 아마 청년영예상은 후보인데 교체로 뛴 선수들 같습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좀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 축구가 1등 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잘 싸웠고, 또 일본, 중국 이런 나라들과 할 때 저는 북한팀을 응원했습니다.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도 정신력 하나로 여자 축구가 이만큼 올라온 것이고, 우승을 했으면 당연히 상을 받아야겠죠.
그런데 상을 주는 것을 보면서 김정은이 원칙까지 자기 기분대로 흔드는 것을 보고 북한을 어디로 끌고 갈지 암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 원래 인민체육인은 국제대회 1등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등을 해야 받을 자격이 됩니다. 그리고 공훈체육인은 국제대회 메달 또는 아시아대회에서 1등을 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고작 4개 나라가 참가한 동아시안컵입니다. 국제대회도 아니고, 아시아대회도 아니고 그냥 지역 대회였습니다.
그런데 4개 나라가 한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4명에게 인민체육인을 주다니. 이건 김정은이 크게 포상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제 기분대로 상을 주면 다른 체육인들은 뭐가 됩니까.
얼마 전에 보니 2014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57㎏급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고, 2012년 런던올림픽 레슬링 남자 자유형 55㎏급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양경일 선수는 고작 국기훈장 1급을 받았더군요. 인민체육인도 아니고, 공훈체육인도 아니고, 또 김정일상이나 김정일청년영예상보다 더 급이 떨어지는 메달을 받은 겁니다. 원래 기준대로 하면 양 선수는 인민체육인을 받아야 할 겁니다. 그런데 여자 축구 지역 예선에서 뛴 선수 한 명보다 더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나마 가장 제대로 규정대로 상을 받은 선수는 러시아에서 열린 2015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다이빙 여자 10m 경기에서 북한 선수로는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한 김국향 선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국향 선수는 '인민체육인' 칭호를 수여받았고, 그를 지도한 신정림 감독도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상을 성적에 맞게 주는 것은 체육인들에 대한 약속입니다. 한번 이런 약속이 깨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가령 이번에 여자 축구 감독에게 김정일상을 주었는데, 동아시안컵 정도면 북한이 1등 할 수 있는 대회가 아닙니까. 북한 랭킹이 한국이나 중국보다는 높고, 일본보다는 떨어지지만, 일본은 세계축구선수권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대거 빠지면서 전력이 떨어졌습니다.
이런 나름 쉬운 대회에서 1등을 하고 평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을 받을 수 있다면 앞으로 너도나도 모두 여자축구팀 감독을 하려 할 겁니다. 그럼 결과는 빽이 좋고, 힘이 있는 사람이 감독이 되겠죠. 그럼 여자축구의 질이 떨어지는 겁니다. 아니, 남자 축구팀 감독은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종목 감독들은 놀고 있습니까.
저는 이것을 보면서 김정일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1980년대 김정일이 음악무용서사시 공연을 준비하면서 6개월 간 훈련한 어린 학생들에게 공로메달을 주었습니다. 자기의 치적을 위해서 무리를 한 것이죠. 그때 전국의 노병들이 들끓었습니다. 아니, 우리는 전쟁 때 적군 10명을 죽여야 받을 수 있었던 급의 메달을 아이들이 공연 한번 참가했다고 주다니 말이 되냐고 분통을 터뜨렸죠. 이번에도 체육계에서 분통을 터뜨릴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 철부지 지도자가 그냥 기분대로 훈장을 퍼주면 체육계가 어떻게 되냐"고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선수들이 김정은이 관심이 있는 종목만 찾아서 하려고 할 것이고, 남자 축구처럼 국제대회에서 아무래도 안 되는 종목은 기피하겠죠. 감독도 김정은의 눈에 들 종목만 맡으려고 할 것이고, 1등을 할 수 있는 여자축구 같은 종목은 서로 피가 터지게 자리싸움을 하겠죠. 그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북한 체육계에 돌아갑니다. 물론 선수들이나 감독이 불만이 있다고 해서 김정은 체제가 당장 흔들리기야 하겠습니까만은 체육이 한순간 반짝 성과를 내다가 점점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명예직을 놓고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말고 선수들에게 상금이나 두둑하게 주면 어떨까요. 여기 남쪽은 그건 정말 잘 돼 있습니다. 국제대회 1등은 평생 매달 연금 1000달러, 아시아대회 1등은 400달러 하는 식이죠. 그러면 선수들이 어느 종목 가리지 않고 동기부여가 확실하기 때문에 알아서 잘 합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체육 강국이 된 것이 바로 그런 공정한 체계가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축구나 야구 골프 등 프로계에 진출한 선수들은 노력한 것만큼 돈이 차례집니다. 한국의 야구 선수가 미국에 가서 7년간 1억4000만 달러를 받는 경우도 있고, 매년 수백 만 달러씩 받는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니 독기를 품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체육 체계를 확실하게 동기 부여 중심으로 바꾸어야지, 김정은이 기분 좋아 상을 줘야 인정받는 체계로 만들면 되겠습니까.
북한이 국제대회에 나와 1등을 많이 하길 바라기 때문에 이런 조언도 하는 겁니다. 제발 김정은이 저렇게 지 맘대로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정 기분이 좋으면 그냥 사진이나 한 장 찍어주면 어떨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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