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탈북한 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금 북한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만 2만6,000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사람만 탈북한 것이 아니라 개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사례가 있습니다. 사람은 중국으로 넘어와 멀리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넘어오지만, 개는 어떻게 탈북해 한국에 왔을까요.
거기엔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몇 년 전 북한에서 한 가족이 배를 타고 한국에 온 일이 있습니다. 야심한 밤 이 가족은 해안경비대의 눈에 띌까봐 조용히, 조용히 이동해서 쪽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막 떠나려는 순간 주변에서 낑낑 하는 개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돌아보니 글쎄 집에서 기르던 개가 가족들을 쫓아온 것입니다. 집에서 이 개를 불렀던 이름이 '멍구'라고 합니다.
이 순간 가족들은 당황했죠. 죽을지 살지 모르는 사지판에 언제 개까지 배에 싣고 탈북할 여유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멍구, 집에 돌아가"하고 쫓았는데, 개가 갈 생각이 없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멍구를 두고 떠나면 해변에서 바다를 향해 멍멍 짖어서 소란스러울 것 같고, 배에 싣고 가면 바다에서 짖을 것 같고...참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들여 키운 개를 버리고 간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 결국 배에 태우고 바다에 나왔답니다. 헌데 이 멍구도 목숨 걸어야 하는 분위기를 아는지 기특하게도 바다에서 한번도 짖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돼서 멍구는 한국에 오게 됐고, 가족과 함께 하나원까지 입소하게 됐습니다. 하나원이 어딘지 아시죠.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정보기관의 조사를 마친 뒤 사회에 나가기 전 3달 동안 정착교육을 받는 시설입니다. 이 멍구는 하나원에서 키우긴 하지만, 사람처럼 오가는 것을 통제하지 않아서 주변 마을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그랬습니다. 제가 하나원을 나온 사람들에게서 처음으로 멍구 이야기를 듣고 하나원에 직접 가서 멍구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하나원에서 멍구를 봤다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지금 어디선가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탈북 1호 개인 멍구는 과연 한국 사회에 무사히 잘 정착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것도 궁금합니다. 사람은 말투도 달라 애를 먹고, 일부 남쪽엔 북에서 왔다고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어 힘들고, 먹는 것도 달라서 고생인데, 멍구는 어떨까요.
실제 한국에선 개도 먹는 것이 다릅니다. 북에선 사람이 먹다 남긴 뜨물을 먹지만 여기는 개에게 두부콩만한 전용사료를 먹입니다. 북에서 개들이 뜨물만 먹고 사는 것을 보다 여기 개들이 우직우직 사료를 씹어 먹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멍구는 이런 음식이 입에 맞을까요.
탈북자들은 한국에 와서 처음에 제일 많이 받는 치료 중 하나가 치과치료입니다. 북에서 아무거나 마구 먹다보니 이빨이 상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멍구도 한국에 와서 이빨이 좋지 못해서 치과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멍구가 하나원 인근 동네에 나가면 동네 개들과 쉽게 어울릴 수는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사람은 사투리를 쓰는데, 혹시 남쪽 개들도 너 짖는 게 이상하다 이러면서 같이 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멍구는 한국에 와서 팔자를 고쳤습니다. 흔히 북에서 한국을 비방할 때 "개 같은 세상"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개 팔자가 얼마나 좋은지 아시면 그런 비난은 안할 겁니다. 여기 개들은 북한처럼 뜨물 먹고 대충 살다가 크면 의무적으로 개장수에게 팔려 올가미에 매달려야 하는 그런 신세가 아닙니다.
물론 여기도 도살용으로 키워져서 개고기로 판매되는 개들이 있긴 있습니다만, 일반적인 개들은 집에서 사람과 함께 사는 한 식솔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북에서 키우는 그런 큰 개는 아니고 대개 애완견들입니다. 남자가 집에 밤중에 취해서 들어가면 아내가 눈을 흘리지만, 이런 애완견들은 주인이 취하든 욕하든 상관없이 그냥 좋다고 와서 꼬리 흔들어주고 핥아줍니다. 솔직히 집에 가면 개만큼 나를 반겨주는 식구가 어디 있습니까.
심지어 개를 개라고 함부로 부르기도 겁이 납니다. 애완견을 키우는 집들은 흔히 '우리 아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예전에 어디 갔다가 너무 멋진 개를 보고 "이야, 개가 참 잘 생겼네" 이랬는데, 그 주인이 "뭐? 개요?"하면서 나를 쏘아보더군요. 지금 살아보니 길에서 멋진 강아지를 보면 "이야, 애가 참 잘 생겼네요" 이래야 무난합니다. 이런 것은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개들 팔자가 이렇습니다.
예전에 제가 타이에 취재 갔는데, 어느 식당 주인이 저를 보고 한국에서 왔냐고 묻더니 자기는 한국 사람들이 개를 잡아먹어 진짜 싫어한다고 하는 겁니다. 아마 그런 영향 때문인지, 저도 남쪽에 와서 10년 전에 개고기를 먹어보곤 지금까진 먹지 않았습니다. 먹을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왠지 저도 개고기를 먹기 싫어집니다. 물론 개고기가 아니더라도 여기는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 각종 고기가 지천이니 꼭 개고기를 먹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세상이니 멍구가 아마 대북방송에 나와 북한의 개들에게 자기가 본 한국을 전한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북에선 개 팔자란 말만 들었는데, 여기 남쪽에 오니 아하, 이런 것이 진정한 개 팔자로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요."
벌써 시간이 다 됐네요. 북에서 선물로 온 풍산개 이야기도 하려 했는데, 이건 다음에 해야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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