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 남쪽에는 풍년이 들었습니다. 올해는 이렇다 할 큰 태풍도 찾아오지 않았고 날씨도 좋았던 영향이 컸던가 봅니다.
북에선 풍년이 오면 예전에는 정말 꽹과리를 치면서 잔치를 벌이지 않았습니까. 농장원들의 마음도 하늘로 붕 떴죠. 그런데 한국에서는요, 풍년이 들면 농민들이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쉽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시겠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풍년이 들면 쌀이 시장에 많이 나오니 쌀값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올해 쌀값은 한 키로에 수매가격으로 한국 돈으로 1650원, 딸라로 환산하면 1.4딸라 정도 됩니다. 작년에는 이보다 0.2딸라, 재작년에는 0.3딸라 정도 더 비쌌는데 말입니다. 농자재나 농기계 가격은 해마다 올라가는데 쌀 가격은 풍년이라고 떨어지니 농민들은 풍년이 즐겁지가 않습니다.
정부도 난리가 났습니다. 쌀을 농민들에게서 사서 쌓아둘 창고가 없기 때문입니다. 창고가 없으면 농민들에게서 사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부가 쌀을 사주지 않으면 농민들이 들고 일어설 판입니다. 정부에 쌀을 못 팔면 농민들이 땀흘려 농사지은 댓가를 못 받아 파산할 수도 있기 때문에 농민들을 살려주기 위해 정부에서 쌀을 사주는 것입니다. 여긴 자본주의 제도인데도 농민들이 파산하지 않고 살길도 다 국가에서 마련해주니 저도 처음에 왔을 때는 놀랐습니다.
올해 남한에선 쌀이 한 500만 톤 정도 생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구가 5000만 명인데 500만 톤이면 사실 상당히 모자라야죠. 얼핏 계산해도 한 사람당 100키로 밖에 차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한사람 당 연간 쌀 소비량이 작년에 74키로에 불과했습니다. 1990년엔 한 사람이 120키로는 먹었는데 불과 20년 만에 74키로로 줄어든 것입니다. 한국인의 식사가 빵과 밀가루 국수 위주로 서구화되다보니 여기 사람들이 쌀을 먹지 않습니다. 한 사람당 100키로도 못 먹으니 올해는 생산된 쌀에서 50만 톤 정도는 정부에서 사서 창고에 쌓아둬야 합니다.
문제는 이미 정부 창고에 쌀이 가득 쌓여있다는 점입니다. 올해 수매분까지 다 창고에 넣으면 남쪽 창고에 먹지 못하고 쌓아두는 쌀이 무려 250만 톤이나 됩니다. 거기엔 5년 전에 생산된 쌀도 있습니다.
이렇게 쌓아두면 쌀값만 문제인 것이 아니라 썩지 않게 보관하는 비용이 엄청 듭니다. 1만 톤당 250만 딸라 정도 드니 250만 톤이면 관리비용만 1년에 무려 6억2500만 딸라나 듭니다.
참 안타깝다 못해서 기가 막혀 말이 나가지 않는 현실입니다. 북에선 쌀이 없어서 굶어 죽어 가는데 남쪽에선 쌀이 썩어나가고 그거 보관하느라 1년에 6억 딸라 넘게 쓰니 말입니다. 쌀을 보관하는 비용만 북에 식량으로 지원해도 굶는 사람은 없겠는데 말입니다.
남쪽에선 요즘 농민들이 쌀을 보내는 대북지원을 재개하라고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쌀을 북에 몇 십만 톤 올려 보내면 국내 재고량이 줄어들어 식량가격도 좋아지고 보관비도 안 들고, 또 배고픈 사람도 구제할 수 있으니 1석3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남북관계에서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남한정부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고, 요즘 천안함 사건 때문에 남북 사이에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북에 지원을 할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갑자기 따귀를 맞았는데, 때린 사람은 아무 사죄도 없는데 맞은 사람이 먼저 내가 뭘 줄테니 친하게 지내자 하고 손을 내밀 수 있겠습니까.
북쪽의 큰물 피해가 심각하다고 남쪽 정부에서 1000만 달러 상당의 구호물자를 보내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북에선 받겠다는 대답이 없습니다. 가해자인 북에서도 그렇게 자존심 지키겠다고 하는데 남쪽은 뭐 자존심이 없습니까. 지금의 남북관계를 보면 저도 참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풍년이 든 남쪽과는 달리 북에선 올해 농사를 크게 망쳤다는 소식이 계속 전해집니다. 8월 초에는 함경남도, 평안남북도, 자강도가 큰 수해를 입었는데, 8월 중순에는 또 압록강 물이 넘쳐나서 신의주가 침수되는 등 평북 곡창지대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엊그제는 태풍 '곤파스'가 황해도 곡창지대를 강타했습니다. 북에서 이런 피해를 입었으니 남쪽의 지원이 없으면 내년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겠는지 모르겠습니다.
남북에서 한쪽에선 쌀이 썩고 다른 쪽에선 굶어 죽고, 이런 참사는 하늘의 탓이 아닙니다. 북에서 곧 당대표자회가 열릴텐데, 그런 것 다 집어치우고 내일이라도 당장 땅을 농민들에게 나눠준다고 선포하면 강성대국은 당장 실현할 텐데 말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성군으로 기록된 세종대왕은 "임금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백성의 밥을 임금의 하늘에 비교한 것은 통치자라면 무엇보다 자기 백성이 굶어죽지 않게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조선 역사에선 왕들은 모두 부패무능한 사람들로 가르치지만 사실 그런 왕들도 백성에겐 먹을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은 확실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북에선 사람들이 굶어죽어도 자존심이 상한다고, 또는 백성이 먹는 것을 직접 가서 확인하겠다고 한다고 해서 주겠다는 것도 안받습니다. 이렇게 백성의 배고픔을 무시하고 정치를 하면, 두고 보십시오, 오래 못갑니다. 그러면 이런 방송도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런 날을 기다리면서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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