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선교사 '언더우드' 집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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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한국과 4대에 걸쳐 깊은 인연을 맺었던 한 미국인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여러분들도 어릴 적부터 교과서 등을 통해 누구나 수없이 배우고 들었던 이름, 바로 언더우드 선교사 집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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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목사가 한국에 왔을 당시 26세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에선 ‘언더우드’란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게끔 교육을 합니다. “미제가 조선침략의 앞잡이로 내세운 선교사들은 간첩 노릇을 했는데, 이중 가장 악질은 언더우드라는 놈이다. 이놈은 한 조선 어린이가 썩은 사과 하나를 주었다고 사냥개를 풀어 물어뜯게 하고 청강수로 이마에 도둑이라고 새겨놓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뭐 이런 내용입니다. 또 섬뜩하게 생긴 미국인이 소년을 나무에 묶어놓고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청강수로 이마에 도둑이라고 새겨 넣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북한 곳곳에 걸려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보니 언더우드 가문에 대한 평가는 북에서 배웠던 것과 정반대였습니다. 언더우드 집안은 4대 모두 서울에 묻혀 있습니다. 비문에는 “언더우드 일가의 정신과 공적은 우리 겨레의 사랑과 함께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마치 “위대한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북한 구호를 연상케 하는 구절인데, 사실 언더우드 일가의 비문이 더 먼저입니다.

사실 북에선 종교는 제국주의자들이 퍼뜨리는 아편이라고 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전 세계 인구의 13.66%만 무종교고 나머지는 다 종교를 믿습니다. 전 세계 10명 중 9명 정도가 어떤 종교든 믿는다는 것입니다. 북조선은 장군님만 하늘처럼 믿으라고 하죠. 누구 믿으라고 하는 것은 결국 다 종교입니다. 북조선은 주체교라고 해야 하나 아님 장군교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기들은 종교가 아니라고 우기니 입만 아파 더 길게 말하진 않겠습니다.

선교사들 중엔 좋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봐도 감동적입니다. 원래 그는 인도로 가게 됐는데, 위험한 조선에 선교사로 가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한국으로 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언더우드가 약혼녀에게 나와 코리아로 갈 수 있냐고 물으니 약혼녀가 “거긴 뭘 먹고 사나요, 병원은 있나요” 등 각종 질문을 했는데 언더우드는 모두 “모릅니다”고 대답했답니다. “그럼 아는 게 무엇인가요”하고 묻자 그는 “내가 딱 한 가지 아는 것은 그곳에는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1000만 명 이상의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는데 결국 파혼당하고 1885년 26살에 혼자 조선에 왔습니다.

언더우드가 우리나라에 세운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가 지금 동아일보 맞은편에 있습니다.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대학도 세우고 한영사전도 펴내는 등 그는 우리나라에서 무려 31년간 종교 교육 문예 자선 등의 다방면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발진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후손들은 무려 4대에 걸쳐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6.25를 거치는 이 민족의 수난과 질곡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게 됩니다. 이들은 이름도 모두 한국 이름으로 개명했습니다.

북에서 소년에게 청강수로 도적이라고 새겨 넣었다고 선전하는 언더우드 2세, 원한경 박사는 백두산 천지의 깊이를 최초로 재고,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설계도를 그리는 등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정이 참 깊었습니다. 3.1운동 때는 일제가 우리 민족을 대학살했던 제암리사건 등을 세계에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원한경 박사의 부인은 해방 후 공산당 청년들의 총에 맞아 피살되기도 했습니다. 이외 언더우드 3세 4세도 다 한국에서 살다가 한국 땅에 묻혔습니다. 이들은 북에서 선전하는 승냥이 미제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북조선이 이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안도에 기독교 열풍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일제 땐 평양에 기독교 믿는 사람이 정말 많았습니다. 물론 해방 후 다 탄압받아 사라졌고, 지금은 평양이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린 기독교 도시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남쪽은 지금 세 명 중 한명이 기독교나 천주교를 믿고 있고 이제는 전 세계에 선교사들을 보냅니다. 이중엔 언더우드 선교사처럼 훌륭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난해에도 돈 많이 버는 의사를 포기하고 아프리카 수단 오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해주다 세상을 뜬 이태석 신부가 전 세계를 감동시켰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이를 보고 감동한 영국의 한 상원의원이 올 3월 영국을 방문한 최태복 의장에게 영화 DVD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희생적인 사람은 남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개인주의가 팽배한 남쪽보단 북에 남을 위해 목숨 바치는 사람들이 예전에 더 많았을 겁니다. 자기 살점도 서슴없이 떼주는 의사들도 많았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북에서 모두가 오랫동안 너무 야박하게 살다보니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빨리 사라지고 있고, 설사 있어도 바보취급 당하는 것입니다.

지금 북쪽은 여러분들의 표현대로 승냥이와 여우만 살아남는 양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이 돼버렸습니다. 이럴 때 희생과 양보의 미덕을 가르치는 종교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북조선 당국은 남을 위해 헌신했던 언더우드 같은 사람을 승냥이라고 거짓으로 가르치며 증오의 사상을 키워주지 말고, 사랑과 평화, 자기희생의 정신을 간부들에부터 먼저 가르쳐주길 바라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