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에 처음 와서 국정원 안가에서 조사받을 때는 한달 넘게 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심심하니 창문 밖 거리와 아파트를 관찰해보는 것이 일과처럼 되더군요. 서울의 아파트를 처음 본 소감은 뭐랄까, 저는 별로 멋있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만 봐서는 중국 아파트와 별 차이 있어 보이지 않았고 평양의 창광거리나 광복거리 보다도 썩 나아보이진 않았습니다.
저 말고도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가 사방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서울을 보고 생각보다 멋있진 않구나 하고 생각하는 탈북자가 있을 진 모르겠네요. 빽빽한 것은 서울이 평양보다 인구밀도가 10배 넘게 높으니 어쩔 수 없이 이해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홍콩 가보니 거긴 40~50층짜리 아파트가 더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데 서울은 양반이더군요. 홍콩이 숨 막힐 정도라면 서울은 고작 숨 찰 정도라고 비유하면 적당할 것 같네요.
서울 인구가 1955년에는 150만 명 정도였는데, 1988년에 100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다보니 불과 30년 만에 850만 명이나 서울에 몰려든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니 문제점들이 많이 나오죠. 집이 없어서 한때 달동네도 많았고요. 북에서 남조선 불쌍한 인민들이 달동네에서 비참하게 산다고 선전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그 달동네 구경 갔습니다. 서울에서 달동네는 점점 다 사라지고 이제는 다섯 개 마을 정도가 존재합니다. 서울의 달동네 인구는 서울 인구의 한 0.05% 정도, 그러니깐 2000명 중에 한명 정도가 달동네 사는 셈입니다. 극소수인 것이죠. 제가 서울 북쪽에 있는 백사마을이란 달동네를 가보고는 같이 간 사람에게 여기가 달동네 맞냐고 물었습니다. 지붕이 뻥 뚫려서 하늘에 달이 보인다고 해서 달동네란 이름이 붙은 줄 아는데 백사마을은 몽땅 기와집이더군요.
거기 가보니 예전에 평양에서 제가 아는 사람이 있어 자주 가던 동네가 떠오르더군요. 오래전 일이라 동 이름은 가물가물한데, 김형직사대 뒤쪽에 있는 아무튼 그 마을하고 제가 가본 달동네 풍경하고 비슷하더군요. 물론 집 안에 들어가면 비할 바가 못 되죠. 여긴 달동네도 다 5장6기는 기본이니까 말입니다.
최근에 이곳 달동네를 허물고 최신식 아파트를 건설하려 하니 이곳 주민들이 반대해서 못했습니다. 새 아파트에서 안 살겠으니 집과 골목길, 계단, 마당 이런 추억이 어린 동네를 가만 놔두라는 겁니다. 서울시에서도 따져보고 그래, 과거 전통적인 풍경을 보존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 동네 4분의 1은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아파트 옆에 케케묵은 낡은 집들이 허물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겁니다. 아마 서울에서 달동네가 다 사라지면 이 동네는 앞으로 희소가치가 더욱 높아져서 관광객들도 찾아올 것이고 영화촬영지로도 인기가 높을 겁니다.
하지만 북에선 이렇게 아파트와 기와집으로 딱 극명하게 대비되는 동네 사진을 가져다 이렇게 활용할테죠. "남조선 봐라. 돈 있는 자들은 새 아파트에서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 아래 낡은 집에서 이렇게 산다. 보기만 해도 부익부빈익빈이 느껴지지 않냐." 그러면 관광이니 역사성이니 하는 개념을 모르는 북조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하 정말 그렇구나'하고 생각하는 거죠.
백사마을은 달동네라 할 수도 없습니다. 서울에서 진짜 달동네 같은 곳은 역설적으로 서울에서 제일 잘사는 동네라는 강남에 있습니다. 구룡마을이라는 곳인데 한 2000명 정도가 삽니다. 제가 신문사 입사 초기 사회부에 있을 때 이 마을에 화재사고가 발생해서 취재 달려간 적 있었는데, 정말 한심하더라고요. 물론 여기도 달이 보이는 곳은 없지만, 서울에 이런 곳이 있나 입이 딱 벌어지더군요. 가끔 판자집도 보이고, 온실 같은데서 사는 사람도 있더군요.
2년 전인가 북한의 중앙TV에서 썩고 병든 남조선이라고 나오는 프로보니 여기 구룡마을 장면도 나오던 것 같던데요. 물론 이런 마을이 없는 나라가 참 살기 좋은 나라겠죠. 하지만 서울에 인구가 1000만 명이 넘다 보니 별 현상이 다 있는 겁니다.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서 한국 사회가 아직 천국은 아니다, 고쳐나갈 부분이 많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실 북쪽이 남쪽 욕하는 것을 보면 진짜 웃깁니다. 정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정도가 아니고, 똥통에 빠진 개가 겨 묻은 개를 비웃는다고 해야 비유가 적절할 것 같습니다. 평양은 거주이전을 엄격하게 통제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20년 간 시내 인구가 두 배 정도 늘었죠. 문제는 집은 새로 지어지지 않는데 인구가 늘어나니 한 집에 두세 세대 사는 것도 모자라 아파트 아래 창고도 없어서 그거 세를 주고 또 세를 얻겠다고 경쟁하는 실정입니다. 요즘엔 무슨 10만 세대 건설한다면서 집들 막 허물어버려서 사정이 더 심각합니다.
평양에서 요즘 인구 조절하겠다고 초강수를 많이 두고 있죠. 평양 면적 절반 황해도에 내주는가 하면, 예전엔 지방 남자와 결혼한 평양 여자만 지방에 내려 보냈는데, 이제는 지방 여자와 결혼한 평양 남자까지 다 지방에 쫓아버리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신혼살림 차릴 창고가 점점 더 귀해지니 어찌된 영문입니까. 이런 실정에선 남조선 달동네 타령 해봤자 먹히지도 않을 테니 이젠 달동네 타령은 졸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남북의 주거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달동네 이야기로 주제가 샜네요. 주거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시간상 관계로 여기까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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