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북한 관련해서 이곳저곳 강연을 많이 다니는 편인데, 지난주에는 멀리 홍콩과 싱가포르에 좀 색다른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런던, 뉴욕 등과 더불어 국제 금융의 중심지인데 이곳에서 저는 캐피탈, 리먼, 피델리티, 싱가포르 투자청 등을 포함해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증권사와 금융기관들을 돌며 북한 현 상황과 미래 전망, 향후 투자유망 분야에 대해 비공개 브리핑을 했습니다.
이들 금융기관들은 수천억 달러 이상을 주무르는 곳들인데 미국 캐피탈사 하나만 봐도 무려 1조 5,000억 달러를 운용합니다. 북한 국민총생산을 현재 400억 달러 정도로 추산하는데, 북한 사람들이 한 푼도 먹고 쓰지 않고 40년 꼬박 모아야 캐피탈 사의 운용자금 정도를 축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북한이 기회의 땅이란 확신만 준다면 엄청난 자금이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세계 시장경제 체제를 좌지우지하는 거대 금융기업들은 요즘 북한과 한국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시장개혁을 하고 급성장한다면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갑자기 붕괴된다면 한국 경제도 위태로워 이들이 투자했던 막대한 돈을 날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북한의 파탄난 경제도, 핵도 아닌 다름 아닌 북한의 정치적 불안정성입니다. 즉 김정은이 버틸 순 있겠냐, 버틴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암살이나 폭동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이런 것을 궁금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들에게 북한의 정치적 안정성이 높다고 대답할 순 없었습니다. 제가 판단하건대 현재 북한의 체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정치적으로 불안정합니다. 물론 폭동이 일어나긴 매우 어려운 체제이지만, 대신 김정은의 리더십은 향후 개혁 과정에서 역사상 최대의 저항에 부딪칠 것입니다. 나중에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지만 벌써 김정은 암살 시도도 있었습니다. 이는 북에서도 몇 사람만 아는 극비사안이니까 여러분들도 모르실겁니다.
지금 김정은은 불안해서 측근들도 믿지 못해 나라 절반 땅은 가지도 못하고 강원도 쪽에서만 뱅뱅 돌고 있습니다. 함경도 양강도 자강도 이런 곳은 아예 가지도 못하고 있죠. 지금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것도 여기선 김정은이 자신감이 붙어서라고 해석하지만 사실 국내를 믿기보단 차라리 미국과 한국을 더 믿는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 한국이 김정은 전용기를 격추할 일은 없겠지만 국내에서 차로 이동하면 어디서 매복이나 지뢰에 걸릴지 그게 더 겁이 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죠.
김정은이 암살되면 한국도 엄청난 재앙이 될 겁니다. 통제를 벗어난 2400만 명의 거대한 인구가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리 여러 경우를 계산해 봐도 머리가 아프기만 합니다. 캐피탈사의 부사장이 이렇게 묻더군요. 북한 체제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제일 높은 상태고 북한 붕괴가 여러 방식의 통일 방안 중 한국에 가장 재앙이 되는 경우라면, 가장 안 좋은 경우가 벌어질 확률이 가장 높지 않냐고요. 제가 예스라고 대답하면 그 사장의 머리 속엔 한국이 불안한 국가라는 생각이 자리 잡아 향후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수십 수백 억 달러의 돈이 날아갈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노라고 대답하긴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김정은의 암살을 말하면 북한이 펄쩍 뛸지 모르겠지만, 암살되지 않고 싱가포르의 리관유처럼 된다면 더욱 환영입니다.
제가 이번에 방문한 홍콩과 싱가포르는 1970년대 한국 대만과 더불어 아시아의 네 마리의 용으로 꼽혔던 나라입니다. 즉 그만큼 비약적으로 경제가 발전했던 세계의 모범국가입니다. 물론 그 이후 중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앞으로 북한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저는 홍콩에서 호텔 58층에 머무르며 높은 빌딩으로 가득한 홍콩 전체를 내려다보며, 싱가포르에선 호텔에서 국제 금융 빌딩이 가득한 마천루를 마주보며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홍콩은 영국이 밀어주어서 잘 나갔다지만, 나머지 세 마리 용에 꼽힌 한국, 대만, 싱가포르는 장기 집권 독재자 시절에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국 박정희 대통령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고, 대만은 장개석과 그 아들 장경국이 1988년까지 통치했고, 싱가포르도로 리관유가 장기 통치했고 지금도 그 아들이 총리로 있습니다.
1959년부터 1990년까지 싱가포르 총리를 지낸 리관유는 유럽 유학파인데 독재자라는 비난 속에서도 싱가포르에선 절대적 영웅입니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일본보다 더 잘사는 나라로,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힙니다. 같은 유럽 유학파인 김정은이 리관유를 따라 배워 북한을 잘 살고 청렴한 국가로만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그 길은 우상화가 이미 무너져 버린 북한에서 김정은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제가 몇 년 전부터 말씀드렸습니다. 다행스럽게 김정은은 제 생각보다 빨리 그 길로 나가려고 하는 것 같고 북한 내부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벌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훗날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했던 1978년처럼 2014년과 2015년을 북한의 역사적 분기점으로 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자신할 수 없는 것은 김정은의 정치적 안정이 개혁을 가로막는 아버지의 유산을 푹푹 뿌리 뽑으면서도 건재할 수 있을지 여부입니다. 또 그의 건강도 썩 좋지 않다고 하죠.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저는 김정은이 무사히 북한이란 거대한 배의 방향을 되돌려 줬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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