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추석 명절 잘 보내셨나요. 저번에 제가 말씀드린 추석 뒤 아내 어깨 주물러주기 실천하셨는지요? 못하셨다면 설날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보십시오. 그냥 아내의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당신 명절에 고생 많았어" 이렇게 한마디만 살뜰하게 말해주면 됩니다.
해마다 추석이면 남쪽 언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바로 실향민들이 임진각에 있는 망배단에서 북쪽을 향해 차례를 지내는 장면입니다. 망배단이란 그리워하면서 절을 하는 곳이란 뜻입니다. 큰 화강석 비석에 망배단이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 향을 태우는 청동향로와 음식을 놓는 상돌이 있는 곳입니다. 전쟁 때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월남자라고 하지만 여기선 실향민이라고 합니다. 이런 실향민들이 고향이 보이는 임진각에 가서 북쪽 선산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겁니다.
저도 임진각에 가봤지만 날씨가 갠 날엔 개성 시내와 개성공단, 송악산이 빤히 바라보입니다. 어떤 실향민은 부모님 산소를 건너편 산에 빤히 바라보면서 60년 넘게 지내고 있습니다. 북에선 예전에 월남자나 남한 연고자 가족들을 거의 다 북쪽으로 추방해서 분계선에 와서 남쪽을 바라볼 수도 없지만 여긴 실향민들을 포함해 누구나 분계선 가까이에 가서 북녘땅을 볼 수 있습니다.
철조망으로 막혀 있어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실향민들이 소원을 담아 적은 쪽지들이 붙어있는 곳이 있습니다. 저도 가서 보았는데 정말 가슴 뭉클하고 구구절절한 사연들 때문에 눈물이 났습니다. 저야 고향을 떠난 지 10년 좀 됐고 죽기 전에는 다시 가겠지 하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60년 넘게 그리워만 하다가 이제는 그 희망도 접어야 하는 분들의 고통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지금 남쪽에선 이런 실향민들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세상을 뜨고 있습니다. 물론 남쪽이야 평균수명이라도 높아서 지금껏 생존해 계셨던 것이지만, 북에선 분단 1세대들이 이미 거의 다 돌아갔죠.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 10년 전과 몇 년 전이 또 다릅니다. 다시 말해 남에서 상봉에 참가하시는 분들은 이산가족 당사자들이 가는데 북에서 나오는 분들은 당사자가 아닌, 이산가족의 아들이나 조카 이런 사람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 남쪽엔 이북5도민연합회가 있습니다. 실향민들이 만든 단체인데요. 수십 년 전 실향민이 800만 명이 되던 때에는 엄청나게 힘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여론이 누굴 찍는가에 따라 대통령이 달라질 수 있어서 대선 후보들이 여기에 가서 구미에 맞는 공약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실향민 1세대가 세상을 많이 뜨면서 이제는 실향민 눈치를 보는 대선후보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이북5도민연합회에 가면 해방될 당시의 행정구역대로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도민회가 있고 여기에 미수복 강원도 도민회가 덧붙여 있습니다. 도민회 아래에 각 군민회도 있는데 해방 당시 행정구역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도민회, 군민회 행사도 한해가 다르게 참가자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장 숫자가 적은 곳은 함경북도 도민회인데요. 6.25때 황해도 평안도 이쪽 분들은 전선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면서 많이 월남했는데, 제일 먼 곳에 있는 함경북도에선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가 내려 왔습니다. 그래서 함경북도 도민회는 벌써 도민회장 누가 뽑을지도 고민이 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탈북이 본격화된 최근에는, 함경도가 국경에 가까이 있다 보니 탈북자 2만 4000명의 70% 정도가 함경도 출신입니다.
도민회와 별도로 여기엔 이북5도청이라고 정부 행정안전부 산하 기관이 있습니다. 도지사도 있는데 차관급입니다. 만약 남쪽이 북한을 점령한다 이러면 여기 이북5도청이 바로 올라가 북한을 통치한다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분단 상황이라 이북5도청이 할 일도 없습니다. 북한은 이북5도청의 존재를 놓고 호시탐탐 공화국을 먹어보려는 반동기구라고 비난하지만 이게 솔직히 뭐 남쪽만 그런 것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북에서 학교 다닐 때 저의 학급에는 서울시 무슨 구 인민위원회 위원장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전쟁 전에 서울대 다니다 의용군으로 올라왔는데, 전쟁이 터져 남쪽으로 밀고 가면 곧바로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나라에서 내준 임명장도 집에 있고요, 매년 한두 번씩 이런 남쪽 시군 인민위원장 임명장 받은 사람들 군당에 모아놓고 회의도 하고 돈도 좀 주고 그랬습니다. 그런 것이 바로 한국의 이북5도청과 같은 기구죠. 그런데 그게 옛날 일이고 지금은 남쪽에 연고를 둔 사람들이 없어 그 기구가 유지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제가 그때도 웃겼던 것이 글쎄 서울 인민위원회 위원장 임명장을 받아놓고, 정작 본인은 깊은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암만 서울대 다녔어도 뭐합니까. 남쪽 출신이라고 믿지 못하고 기껏 농사나 시키면서 그런데 전쟁이 나면 또 남쪽에 나가 중책을 맡으라니 참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웃긴 일도 이제는 북에선 다 지나간 일이고, 여기도 분단 1세들도 끝내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이제는 인생의 황혼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그나마 살아있을 때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계속 열어서 혈육들을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떠났으면 좋겠지만, 남북관계가 이리되면서 몇 년째 상봉행사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에 혈육을 두고 온 이산의 세대가 모두 세상을 뜨면 남북은 정말 서로 연고도 정도 없는 사람들이 남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만 보면 저는 눈물이 납니다. 이 분단의 아픔 언제까지 더 갈까요. 이 땅의 후손들은 수백, 수천 년이 지나도 다시는 이런 아픔 겪지 않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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