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효와 예가 사라져 가는 남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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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효와 예를 중시하는 민족이었습니다. 멀리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 때부터 말이죠. 제가 어릴 때 신상옥 감독이 만든 영화 홍길동이 정말 인기였죠. 저도 열 몇 번인가 봤습니다. 거기에 어린 홍길동이 스승에게 "신체발부는 수지부모요 불감훼상이 효지시야요" 하면서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죠. 그때는 그 뜻을 잘 몰랐는데 훗날 찾아보니 그 내용인즉,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부모로부터 받았으니 건강하게 사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효의 시작이 그러하면 마지막은 어떤지 아십니까. "입신양명 이현부모 효지 종야라" 즉 훌륭하게 살아서 부모의 이름까지 빛내 드리는 것이 효의 마지막이란 뜻입니다.

물론 요즘 세상은 효의 시작과 마지막을 따지면서 사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가 살던 북한에도 부모가 세상을 뜰 때까지 자식이 효도를 다해 보살피는 것이 당연한 미풍양속이었습니다. 굳이 예법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워낙 북한에선 집이 부족하다 보니 아들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독립해 따로 나가는 경우도 많지만, 이 경우도 부모가 운신하지 못하면 맏아들은 당연히 부모를 모셔야 했죠.

여기 남쪽도 불과 얼마 전까진 그랬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풍습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선 결혼해서 부모 모시고 살겠다는 아들은 정말 효자에 속합니다. 아들이 그러고 싶어도 며느리가 싫어합니다. 고부갈등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죠. 원래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좋지 않으니 며느리가 시부모 잔소리 들으며 살고 싶겠습니까. 여기 남쪽은 결혼하면 분가해서 독립하는 여건도 북한보다 훨씬 쉽습니다. 사든, 월세 내든 따로 살 집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웬만하면 따로 살려 합니다. 일단 따로 나가면, 눈에서 멀어지면 효도도 멀어지는 겁니다.

한국의 30, 40대는 이제는 자식 낳아도 이 자식이 늙은 나를 모실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늙어서 부부가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려면 내 재산이 있어야 합니다. 돈이 있어야 스스로 운신이 어려울 때 양로원이라도 들어갈 수 있죠. 거기 가면 자식 대신에 간병인들이 나를 먹여주고 씻겨주면서 수발을 들어줍니다. 그들이 내가 고와서 이렇게 돌봐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낸 돈을 월급으로 받으며 돌봐주는 겁니다. 자식에게 날 돌보라고 하면 미안하지만 내가 돈 줘서 간병인을 쓰면 미안하지도 않겠죠.

한국의 50, 60대는 30, 40대에 비해 불쌍한 세대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위로는 부모를 돌봐줘야 하고 아래로는 자식까지 거둬줘야 하죠. 자식을 키워주고 연 만 딸라 가까이 드는 대학 학비까지 다 내주고 아들이 있으면 결혼할 때 따로 나가 살라고 집 마련하는 돈까지 보태주어야 합니다. 여기 서울에서 셋집을 얻으려면 최소한 10만 딸라 이상이 듭니다. 그렇다고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든데다 애까지 낳아 키우는 젊은 자식들에게 부모를 돌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무리입니다. 부모에게 폐만 끼치지 않아도 다행이죠.

물론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자식도 아직은 많지만 제 말은 사회의 일반적 흐름이 부모 모시지 않는 추세로 간다는 말입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실제로 서방 국가들은 부모가 기껏 자식 대학 학비 정도만 해결해 주고 나머지 일생은 네가 알아서 살라는 주의입니다. 부모들 역시 자식들에게 효도를 요구하지 않고요. 한국이 지금 급격하게 그렇게 가는 중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드리면 여러분은 "야, 남조선은 정말 부모 자식 관계도 돈에 따라 결정되는 냉혹한 자본주의구나"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죠. 나라가 잘 살면 자식이 안 돌봐줘도 늙으면 은퇴 연금이 매달 꼬박꼬박 나오지, 연금이 없으면 국가에서 기초생활비라고 몇백 딸라씩 매달 주어서 굶어 죽을 염려가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북한이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북한에선 늙으면 퇴직금도 없고 국가에서 주는 혜택도 없고 해서 전적으로 자식에게 노년을 의탁해야 합니다. 예전에야 600에 60이라고 배급도 좀 주고 돈도 좀 주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효도하는 자식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쌀독에서 인심난다고 자식들이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부모가 쌀만 축낸다고 구박하면 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식 구박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도 많습니다. 자살하면 또 자살했다고 성분에 걸리니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해 벼랑에서 굴러 죽은 것처럼 하기도 하고, 스스로 식음을 전폐해 굶어죽기도 합니다.

먹고 살기 어려우면 거리에 꽃제비가 느는데 그 중엔 노인과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그래도 날쌔게 훔쳐라도 먹지 노인들은 그런 것도 못하고 정말 집 나오면 몇 달 가기 힘듭니다. 물론 북에도 양로원이라는 것이 있긴 하죠. 하지만 각 도에 한 개 뿐인데다 도시 노동자나 사무원 출신만 들어갈 수 있고, 그마저 자식이 있으면 아무리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갑니다. 요행 자격이 돼서 들어간다 해도 배급 없는데 양로원이라 별 수 있습니까. 그런데 들어가도 결국은 굶주리긴 매한가지입니다.

남쪽은 점점 잘살게 되니 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않고, 북쪽은 반대로 점점 못살게 되니 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않는 현실. 이것이 오늘날 남과 북에 펼쳐진 판이한 세상입니다. 수천 년 역사에서 우리 민족의 효도 풍속이 과연 언제 이렇게 급격히 변한 적이 있습니까. 노인들이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는 세상이야말로 남과 북에 사는 우리 모두가 다 같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 아닐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