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돌아보니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 북녘에 방송을 한 지 이달로 벌써 3년이 돼옵니다. 참 세월이 유수 같습니다. 이미 북한도 김정은 시대가 시작되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죠. 제가 현재 소속이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인데 하는 일이 세상 소식을 독자들에게 전하는 겁니다. 그런데 3년간을 돌아보면 제가 여러분께 남쪽 이야기만 했지 정작 제 업무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런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주 쿠바 관련 기사를 쓰다가 이런 외국 소식은 북에도 이야기해주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주에 쿠바가 주민들의 해외여행을 자유화했습니다. 이제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거죠. 지금 미국에는 쿠바 특별법이 있어서 쿠바 사람들이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 영주권을 의무적으로 발행해 줍니다. 남쪽에서 탈북자들을 의무적으로 받아들이는 거나 똑같죠. 이제는 쿠바 사람이 합법적으로 미국에 가서 여기서 살겠다고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쿠바는 정치범관리소 이런 것이 없어서 식구가 미국에 갔다고 해서 가족을 처벌하지도 않습니다. 식구 중에 대표선수 한명이 미국에 가서 돈을 벌어 쿠바에 송금하면 쿠바 정부는 그런 돈을 쓰라고 외화상점까지 만들었습니다. 벌써 10년 전에 그랬죠. 북한처럼 재일교포들이 북에 송금하면 국가가 다 떼먹고 약간의 조선돈만 전달하는 그런 치사한 짓도 하지 않습니다.
예전 1980년대 말 소련을 포함한 동유럽이 다 붕괴돼 자본주의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리고 중국이 한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었을 때, 북한에선 이제 친구는 쿠바 하나만 남았다고 그랬죠. 그런데 이제는 쿠바도 북한과 친구가 아닙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국가가 됐습니다. 쿠바 가서 그래도 사회주의라고 북한과 비교하는 말을 하면 기분 나쁘다고 인상을 씁니다. 여러분들 노동신문 이런데서 쿠바 소식이 잘 나오지 않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주민들의 해외여행을 자유화했으니 다른 것은 어떻겠습니까. 벌써 1990년대에 개인농을 허용했고, 자기 기업을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피델 카스트로는 참 용기가 있는 사람이고, 나름 인민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소련이 붕괴됐을 때 해마다 소련에서 60억 달러씩 지원받고 있던 쿠바도 엄청 타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에 들어갔던 것처럼 쿠바 사람들도 배를 곯기 시작했습니다. 혁명 이후에 이탈리아보다 잘 살던 쿠바가 사회주의 한다고 춤춘지 30년 만에 거지국가가 된 거니 아무튼 그놈의 사회주의가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니 카스트로는 대담하게 개혁을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1994년에 미국에 건너갈 사람은 다 가라고 항구까지 개방했습니다. 4만 명이 건너갔습니다. 카스트로가 항구를 개방한 것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혁명이 끝나고도 미국 갈 사람 다 보내주었고 1970년대도 보내주었고, 1980년에도 5개월 동안 항구를 열었습니다. 북한 같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용단을 낸 거죠. 오히려 쿠바 난민들이 밀려오자 미국이 쿠바와 협상해서 한해에 2만 명만 받겠다고 사정할 지경이었습니다. 쿠바는 배를 타면 약 145키로 그러니까 한 350리만 항해하면 미국 플로리다에 저절로 도착하게 되니 아주 유리하죠.
반면 북한은 청진쯤에서 배를 타면 일본으로 해류 타고 오게 되는데 거리가 쿠바와 미국 사이의 거리의 무려 5배인 750키로에 이릅니다. 쿠바에선 하루 이틀이면 미국 가는데 북에선 쪽배를 타고 일주일 넘게 바다와 싸워야 일본에 도착하니 훨씬 더 위험합니다. 물론 이렇게 일본 간 탈북자들이 적잖습니다. 아무튼 쿠바 인구가 지금 1,100만 명이 조금 넘는데 혁명 이후에 바다 건너 미국에 건너간 사람이 130만 명이나 된답니다. 쿠바 인구의 10%가 넘게 미국에 간 겁니다. 북한으로 치면 한 250만 명 정도가 한국으로 건너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같으면 난리가 나고 닥치는 대로 쏴죽이고 하겠지만, 쿠바를 보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최대의 적대국인 미국에 가도 사회가 끄떡없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건너간 사람들이 본국에 송금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쿠바 경제도 살립니다. 미국의 쿠바 사람들이 한해에 본국에 송금하는 돈이 수십 억 달러가 됩니다. 쿠바 국민소득이 현재 5,600달러 정도니 북한보다 한 10배는 많습니다. 그래도 쿠바와 미국의 생활 격차가 다시 10배 정도 차이 나니 미국에서 돈을 보내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국에 온 탈북자가 2만 4000명이 좀 넘습니다. 요즘 탈북자들도 어떤 방법으로든 집에 돈을 보냅니다. 한해 약 5,000만 달러가 이렇게 들어가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액수는 북한 정부가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이는 돈과 맞먹는 거액입니다. 이렇게 들어간 돈으로 탈북자 가족만 잘 삽니까. 그 돈으로 장마당에서 뭘 사면 또 장사꾼들이 살죠, 장사꾼에게 물건 넘기는 사람도 돈을 벌게 되죠. 이런 방식으로 주변도 함께 잘 살게 되는 겁니다. 이런 것이 바로 시장경제 원리입니다.
만약 김정은이 지금 피델처럼 남쪽 국경을 열고 갈 사람은 다 가라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북한 사람 대다수가 남쪽에 올 것이니 그건 제 보기에도 미친 짓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아마 한국 정부가 쌀을 달란 대로 다 줄 테니 제발 사람들 내려 보내지 말라고 사정할 것 같네요. 지금 북한 정부가 개혁을 한다고 하는데 그거 쿠바가 1993년에 도입했던 겁니다. 저는 문을 열지 못해도 제발 개혁은 계속 밀고 나갔으면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한 20년 뒤에 남쪽에 여권을 내고 방문할 날이 올지 모릅니다. 상상만 해도 뭉클하군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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