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벌써 10월도 다 흘러갔습니다. 10월 마지막 밤에는 남쪽 사람들은 '잊혀진 계절'이란 노래 가사를 떠올립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어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음, 썩 잘 부르지 못해 미안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인데 이 노래가 북에도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엔 이미 들어본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노래는 마치 가을의 바람에 떨어지는 단풍 낙엽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쓸쓸하게 적십니다. 벌써 한해가 흘러갔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지 하는 추억에 빠지게 만들죠.
요샌 가을이 왜 이리 짧은지 모르겠습니다. 겨울과 여름은 엄청 길어졌는데 봄과 가을은 순식간에 왔다가 의식하기도 전에 가버립니다. 그래서 남쪽에선 사계절의 이름을 계절의 진짜 길이에 맞추어 다시 지어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여름은 길어졌기 때문에 '여어름', 겨울도 길기 때문에 '겨어울'이라고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신 가을은 짧아져서 '갈' 하고 불러야 한답니다. 즉 봄, 여어름, 갈, 겨어울이란 말이죠. 그냥 웃자고 만든 소리입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점점 봄, 가을옷은 거의 입을 일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이게 다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가 돼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지구 온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점점 한반도도 더워집니다. 앞으로 저기 북쪽 지방에서 귤나무 재배가 잘 될 것 같습니다. 아마 그건 제 생전에 보겠죠. 온도가 달라지면서 제가 어릴 때 그렇게 많았던 명태가 다 사라지고, 정어리도 구경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대신 오징어는 이제는 서해에서 더 많이 잡힙니다. 제가 자랄 때는 서해에서 오징어잡이란 말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날씨도 변덕스러워서 수시로 폭우가 잦고 삼한사온이라는 우리 전통의 기후 변화 공식도 다 달라지게 될 겁니다.
8월 말에 나선에 들이닥친 폭우가 몇 시간 만에 300미리를 퍼부었다고 하죠.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과 같은 폭우죠. 저는 그런 폭우를 김일성 사망한 날인 1994년 7월 8일에 겪었습니다. 그날 영화관에 갔는데 들어갈 때까지 내리지 않던 비가 나올 때보니 하늘이 구멍이 뚫린 듯 하고요, 바케쯔로 물을 퍼붓는 듯 했고, 번개는 무섭게 내리쳤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비는 지금까지 못 봤습니다.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 허리까지 차는 물을 헤치고 15분 거리의 기숙사로 와야 했습니다. 내려와서 이거 하늘이 왜 노했냐며 우리끼리 이야기 나누었는데 다음날 김일성이 그 비 오는 시간에 사망했다고 발표되더군요.
아마 나선 사람들이 겪은 호우는 그때와 비슷한 것일 겁니다. 몇 시간 만에 홍수가 발생해 숱한 집이 떠내려가고 400명이 넘게 죽었다니 말입니다. 라선은 이런 장마에 대비가 안됐으니 피해가 컸겠죠. 제가 국제부 기자로 10년 있으면서 별 뉴스를 다 보는데 언제인가 사우디아라비아에 100미리도 안 되는 비가 왔는데 100명 가까이 빠져 죽었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사막이라 배수체계란 것이 없다보니 적은 비에도 낮은 곳에 빗물이 몰리면서 사람들이 빠져 죽은 겁니다.
앞으로 북한도 장마 대비를 열심히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라선은 김정은이가 가서 집을 몽땅 새로 지으라고 지시해서 정말 멋있는 집이 불과 40일 만에 몽땅 건설됐더군요. 수백 채를 그처럼 빨리 짓기도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앞으로 나선의 중요성은 점점 커질 것 같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앞으로 나선이 지금의 원산 같은 날씨가 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씨비리(시베리아) 지방이 앞으론 한국과 같은 온대 날씨로 변한답니다. 지금은 추워서 거의 버려진 그 광활한 영토가 따뜻해지기만 해보십시오. 미래 지구의 먹거리는 그곳에서 막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씨비리와 중국의 동북을 낀 라선은 얼마나 핵심 요충지가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황금의 삼각지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씨비리를 볼 때마다 선조 탓을 하곤 합니다. 씨비리가 원래 러시아 땅이 아닙니다. 거긴 오랫동안 황무지로 깃발 먼저 꽂는 나라가 가질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18세기인가 러시아 왕이 불과 몇 명의 탐험대를 동쪽으로 보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나가면서 깃발을 군데군데 꼽고 간 곳이 다 러시아 땅이 됐습니다. 탐험대는 나중에 미국에 팔아먹긴 했지만 알라스카까지 가서 깃발을 꽂아놓고, 하와이까지 갔는데 거긴 너무 멀어 그냥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조선은 뭐 했습니까. 당시 너무 세금이 많아 농민들이 일부 연해주로 넘어가 농사를 지었는데 조선왕은 그걸 막겠다고 포고령을 내리고 국경 넘어가는 사람들 처벌했습니다. 개척정신이라곤 하나도 없고 자기가 가진 조그마한 것을 지키겠다고 쇄국정책을 폈던 것입니다. 그때 연해주에 건너가 농사짓는 사람들 장려했더라면 우리나라 땅은 얼마나 넓어졌겠습니까.
그 어리석은 왕조와 지금의 북한이 그대로 겹쳐집니다. 과거의 왕조보다 더 악랄하게 나간 사람을 처벌하죠. 남쪽이 잘 사는 이유는 1960년대부터 멀리 중동, 남미 이런 곳에 사람들이 나가서 돈을 벌어왔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미래의 반면교사입니다. 앞으로도 문을 여는 민족은 번영하고, 문을 닫는 민족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문을 가장 꽁꽁 닫아 맨 북한.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그 또한 역사에 남는 반면교사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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