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능시험과 북한의 대학입시

18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전날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이 가채점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전날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이 가채점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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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달 17일은 남쪽에서 수능시험을 보는 날입니다. 수능시험은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의 줄임말인데 쉽게 말하면 '그냥 대학입학 시험이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수능시험은 전국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봅니다. 북에서는 대학 추천을 받은 뒤에 그 대학에 가서 입학시험을 보지만 여기는 전국에서 똑같은 문제로 시험을 쳐서 점수를 낸 뒤 그 점수에 기초해 원하는 대학에 갑니다.

그렇게 보면 북한보다는 훨씬 공정하죠. 출신성분이나 아버지 배경을 따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뇌물도 없기 때문에 깊은 산골 학생들도 점수만 높으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남쪽은 북한보다 학제가 대략 2년 더 길어서 19살쯤에 고등학교 마치고 대학에 가는데, 대학에 진학 비율이 80%가 넘습니다. 게다가 우리 민족이 옛날부터 자녀 교육열은 얼마나 높았습니까? 수능시험은 과거 시험과 같은 것이고, 수능시험 결과에 따라 대학이 결정되기 때문에 부정이 끼어들면 나라가 난리가 납니다. 한국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수능시험이 공평하게 진행돼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전 국민의 관심사이니만큼 수능제도에 조금만 문제가 있으면 고치라 말라 학부형들의 항의가 빗발쳐 최근 20년 동안 한 열 번 수능제도 고쳤습니다. 그래서 이젠 여기 부모들도 수능제도를 아주 품 놓고 공부하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저도 당연히 잘 모릅니다.

일단 국어, 역사, 영어, 수학 과학 이런 시험을 보는데, 자기가 문과 계열 가냐, 이과 계열 가냐, 예체능 분야 가냐에 따라 시험과목은 달라집니다. 6개 과목 시험 치는 학생도 있고, 예체능 같은 분야는 2~3개만 시험 쳐도 됩니다. 여기에 학교의 학생 평가서도 반영이 되고 또 정시니 수시니 하면서 시험 방식도 까다롭습니다. 아무튼 이 복잡한 과정을 저도 잘 모르는데 여러분들에게 소상하게 설명해야 이해도 잘 되지 않으실 겁니다. 하나만 명백한 것은 전국적으로 시험을 동시에 봐서 공평하게 뽑는다 그 점입니다.

수능날은 북한에서 자식이 대학입학시험 치는 날이나 마찬가지니 부모들이 대학에 붙으라고 떡도 먹이고 엿도 먹이고 그럽니다. 이건 북한과 똑같습니다. 시험장 주변에선 차 경적도 못 내게 하고, 출근시간, 비행기, 열차시간까지 다 조정될 정도입니다.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겁니다. 시험을 마치면 점수가 발표됩니다. 가령 400점 만점에 내가 350점 받았다, 이러면 이 점수를 갖고 어디로 갈 수 있을지 원하는 대학 홈페이지들마다 들어가 확인합니다.

남쪽은 제일 좋은 대학이 서울대입니다. 북한으로 치면 김일성대죠. 그런데 김대도 선호하는 학부와 선호하지 않는 학부가 있잖습니까. 가령 김대 원자력학부다 이러면 이 학부는 외국어대나 평양의대보다 선호도가 떨어집니다. 여기도 똑같습니다. 서울대 법대, 의대 이런 곳은 전국에서 상위 1% 안에 드는 학생들이 지원하지만, 같은 서울대라고 해도 지방 의대보다 더 지원자가 없는 학부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평균으로 보면 서울대 붙는 수능 점수보단 연세대나 고려대 붙는 수능 점수가 더 높습니다.

남쪽이 좋은 점은 또 수능 점수가 낮게 나와서 원하는 대학에 못 갔다 이러면 1년 더 공부해서 다시 시험을 칠 수 있습니다. 그걸 재수라고 하고, 2년 더 공부하면 삼수, 이런 식으로 나가서 사수, 오수 보는 학생도 있습니다. 북한은 딱 한번 대학입학 시험 쳐서 떨어지면 군대에 나가 10년 있어야 하지만 여긴 그렇지 않으니 좋은 겁니다. 여기도 의무병역제이긴 한데, 보통은 대학을 다니다 군대에 21개월 갔다 옵니다. 북한에 비하면 2년이니 너무 짧죠.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인생이 곧바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얻으려면 또 시험을 봐야 합니다. 북한은 대학진학비율이 15~20%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학을 나오면 간부부에서 직업을 결정해주는데, 여기는 대학 나와도 원하는 직장을 찾기 위해 회사 입사 시험을 칩니다. 물론 좋은 대학 나오면 좋은 직장 갈 확률은 높긴 하죠. 또 남쪽에서 선호하는 검사나 공무원에 되려면 또 사법고시나 공무원 행정고시를 봐서 통과돼야 합니다. 이 역시 하늘의 별따기 입니다. 대다수가 대학을 다 나오다보니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바로 좋은 직장에 보낼 수가 없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저는 남쪽에 와보니 교육 제도는 마음에 안 듭니다. 가령 모든 시험이 찍기이고 주관식 필기가 없습니다. 왜냐면 찍기를 해야 정답 오답을 컴퓨터가 정확히 구별해내지 주관식으로 쓰게 되면 채점자에 따라 점수가 들락날락하기 때문입니다. 공정으로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게 시험이 이뤄지다보니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찍기 전문가로 교육됩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교육은 정답 오답 찾아내는 것만 10년 넘게 죽으라 공부하게 만드니 창의성을 키울 수 없습니다. 또 점수로 대학이 결정되니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이어서 학원에 가서 찍는 훈련을 받게 되는데,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더 활성화돼 있습니다. 이건 잘못된 것이죠.

그럼에도 남쪽의 이런 대학입학 제도는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이 공정하다고 봅니다. 출신성분 안 따져도 그게 어딥니까.

그런데 교육이란 것은 제도의 문제도 있지만 본인의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제가 남쪽에 와보니 북한에서도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하면, 나중에 통일돼서도 한국 학생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 유능한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 기억하시고, 이 방송을 듣고 계실 부모님들은 제도 탓만 하지 마시고 자녀를 통일조국의 훌륭한 인재로 키운다 생각하고 노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들은 반드시 김정은이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