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번 시간에 북한의 인프라, 그중에서 도로를 중심으로 좀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북한에 문제되는 것이 어디 도로 하나뿐이겠습니까.
전 세계가 시장경제의 시스템에서 돌아가는데 북한만 여전히 경제에 사회주의라는 깃발을 들고 있어선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에선 지금까지 시장경제를 썩어빠진 자본주의 체제라며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 현실은 사실상의 시장경제입니다. 여러 문제 중에 오늘은 은행 문제 하나만 좀 들어보겠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결국 돈입니다. 돈을 중심으로 경제가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본주의에서 돈은 사람 몸에서 피와 같고 돈이 잘 돌아가야 경제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지금 돈이 돌아갈 체계가 없습니다. 돈은 은행을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이 세상에서 북한만큼 은행이 낙후된 곳이 없습니다.
여기 남쪽만 실례를 들게요. 여기는 은행만 수십 개나 됩니다. 각 은행은 전국에 각자의 지점들을 빼곡히 갖고 있습니다. 길을 걸어가면 사방에 각종 은행들이 건물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은행에 갈 일은 거의 없습니다.
스마트폰이라고 휴대전화로 대다수 은행거래를 합니다. 어디에 돈을 보내야 한다면 수십 초면 보낼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에서 상대의 계좌번호와 액수를 적은 뒤 신분을 인증하는 간단한 절차를 거치면 눈 깜빡할 사이에 돈이 상대 계좌에 들어갑니다.
외국에도 이렇게 보낼 수 있는데, 심지어 북한에도 10분이면 돈을 보낼 수 있습니다. 돈을 중국에 보내면 중국에서 컴퓨터로 액수를 확인하고, 바로 그만한 액수를 북한에 보내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너무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기 때문에 그냥 북한도 쉽게 보낸다는 것 정도만 말씀드립니다.
북한은 이런 국가 금융 체계망이 거의 없습니다. 조선중앙은행 하나만이 전국에 지점을 갖고 있는데, 전산망이 구축되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돈을 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휴대전화로 돈이 오가는 것은 상상만 할 뿐이고, 설사 은행을 통해 겨우 나진에서 신의주로 돈을 보내는데 성공했다고 해도 은행에서 돈을 찾는 것도 어렵습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용이란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특히 신용이 제일 중요한 것은 은행입니다. 은행이 실수하면 남의 돈이 날아가기 때문에 당신의 돈은 내가 가장 안전하게 보관해주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내주고, 나아가 불려도 준다 이런 믿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애써 번 돈을 남에게 맡긴 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런데 북한 은행은 지난 기간 신용은커녕 강도짓만 해왔습니다. 화폐발행도 사실 조선중앙은행 이름으로 되는 것인데, 1990년대부터 몇 번 화폐개혁으로 사람들이 번 돈을 휴지로 만들었습니다. 세상에서 100만 원 저금시켰는데, 화폐 개혁했으니 500원만 내준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곳은 북한이 유일합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이전엔 은행에 강제로 저금시키고 돈을 내주지 않아 또 휴지로 만들었습니다. 노임이나 분배에서 강제로 떼서 은행에 저금시켰는데, 돈을 찾으려 은행에 가면 돈이 없소 이러면서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90년에 한 키로에 7원이던 쌀값이 1995년엔 200원으로 올랐습니다. 그러니까 1990년에 내가 200원을 저금했다면 통장에 돈 넣을 때는 쌀 30키로 정도 살 수 있었지만, 돈을 안주고 5년을 끄니까 그 돈이 쌀 한 키로 값으로 떨어진 겁니다. 그냥 휴지가 된 겁니다. 이 휴지라도 좀 달라고 하니 돈이 없다고 안줍니다.
이런 은행을 어떻게 믿고 내 돈을 맡깁니까. 인민반장들이 인민반 돌면서 돈을 저금시키라고 호소 반 협박 반 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어떻게 돈을 저금시킵니까. 그냥 너무 와서 못살게 구니 뺏긴 셈치고 저금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화폐 개혁으로 북한돈 자체도 믿지 못합니다. 이제는 장마당에서 빗자루 파는 할머니도 인민폐로 돈을 받습니다. 중국 돈은 그래도 갖고 있어도 안전하지만, 북한돈은 언제 화폐개혁 해 기존 돈을 휴지로 만들지, 환율이 널뛰기 해 언제 쓰레기가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큰 거래를 하려면 배낭으로 돈을 메고 다녀야 하는 것도 아주 번거로운 점입니다.
경제의 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돈이 이렇게 은행을 중심으로 돌지 않고 개인 주머니에 다 들어가 버리니 국가는 노임을 주려고 해도 돈이 없고, 결국 계속 새로 찍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통화팽창 때문에 기존 돈은 점점 휴지가 되는 겁니다.
북한이 경제를 개혁하려면 이 은행 시스템을 복구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이 경제활동을 하고 살려면 원시사회에서 살지 않는 한 은행이 필수입니다. 흔히 외부에선 북한의 경제는 공식 경제와 장마당 경제가 있다고 말하는데, 장마당 경제도 돈이 돌아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 은행이 마비된 상황이니 장마당 경제는 나름의 은행 시스템을 만들어냈습니다.
북한 전국에 있는 대관집이 바로 그겁니다. 대관집 덕분에 사람들은 국가 은행을 거치지 않고서도 돈을 원하는 곳에 송금할 수 있습니다. 대관집은 엄밀히 보면 한국 사회의 지역별 지점에 해당합니다. 은행이 해야 할 일을 각 지역의 돈이 있는 집이 대신하는 겁니다. 북한 은행은 바로 이런 체계를 공부해 빨리 도입해야 합니다. 돈이 돌면 경제도 삽니다.
또 하나는 저금과 관련해선 처벌도 없애야 합니다. 돈 많이 맡기면 보위부에서 당장 그 돈 출처가 어디냐 캐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무서워서 어떻게 맡깁니까. 북한에 합법적으로 돈 번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할 말은 많지만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나서 다음 시간에 계속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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