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번에 신용카드 이야기해드렸죠. 남쪽에서도 신용이란 그 사람이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인지 그런 의미에서 씁니다. 그러나 금융기관이나 신용카드에서 말하는 신용이란 그 사람이 돈을 갚을 능력을 의미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 이 신용이란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는 신용이 불량한 사람이 생깁니다. 신용불량자는 은행이나 카드사에서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대개 처음엔 은행에서 빌렸지만 갚지 못하게 되니 결국 이자가 비싼 고리대금업자에게 빌려 은행 돈을 메우게 되고 그럼 또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빚쟁이가 되는 겁니다.
저도 겪어봐서 잘 압니다. 여기에서 태어났으면 그래도 처음에 신용이란 것이 있어서 돈을 빌리기라도 하겠지만,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그 신용이란 것조차 없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탈북자 모두가 북에서 오면 이 사회에 아무런 신용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디서 돈을 빌릴 데도 없습니다. 당장 목숨 걸고 살릴 사람이 있어 돈이 필요했는데 제게 돈이 없으니 정말 너무 미칠 지경인 겁니다. 나중에 벌어서 갚고 싶지만 그걸 누가 인정해 줍니까. 신장이라도 떼서 팔고 싶은 심정인데, 그때 가까스로 신용카드란 것을 만들어 500딸라를 빌렸습니다. 물론 카드회사가 저를 생각해서 빌려준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오히려 신용카드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돈을 많이 빌려 쓰게 해야 신용카드 회사는 이자를 받아 살 수 있으니 그때는 막 어서 만들라고 살뜰하게 권고할 때였죠. 그러니까 저처럼 신용이 없는 사람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겨우 500딸라를 빌리긴 했지만 말입니다. 지금은 제가 부지런히 신용을 쌓아가서 은행에서 몇만 딸라 빌릴 수 있지만 그때는 그 500딸라가 얼마나 소중했던지 모릅니다.
제가 그런 걸 잘 아니까 제가 신용도 없고 가장 어려울 때 돈을 빌려준 사람이 매우 고마운 겁니다. 제게는 그런 분이 한 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힘든 등짐 지는 일부터 한국 생활을 시작했는데 몇 군데 옮겨 다닌 끝에 얻은 어느 주간지 기자 자리가 집에서 1시간 40분이나 걸리는 먼 곳이었습니다. 일 끝나면 집에 12시 넘어 들어오고, 아침엔 또 7시 전에 집을 나서야 하고.. 너무 힘들어서 집을 옮겨야 하는데, 돈이 어디 한 푼 있습니까. 그런데 국정원에서 일하는 어느 분이,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 제 사정을 알고 선뜻 800만 원 그러니까 그때 환율로 9,000딸라 정도 되는 돈을 빌려주시는 겁니다. 그분도 직장이 국정원이라지만 결국은 월급쟁이일 텐데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반년 뒤에 다 드리긴 했지만, 그때는 제가 갚을지 말지도 모를땐 데 그냥 저 하나 믿고 빌려주신 겁니다. 10년 동안 여기 살면서 많은 사람들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연락마저 끊어진 그 분을 정말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긴 얼핏 아주 냉혹한 사회 같지만, 그래도 지금 가만히 지켜보면 이 사회의 곳곳마다 그런 따뜻한 마음과 배려를 지닌 분들이 있어서 이 사회엔 온기가 돕니다. 어려운 분들을 위해 천사 같은 손길을 내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지난해에도 제가 중국에서 갈 곳이 없는 탈북 꽃제비 4명의 사연을 올렸더니 단 몇 시간 만에 수많은 분들이 모두 5,000딸라가 넘는 돈을 보내주셔서 그들을 구출했습니다. 그 후 지난 1년간 제 호소를 보고 수 백 분이 모두 5만 딸라 가까운 돈을 보내와서 탈북자와 고아 64명을 구출했고 지금도 구출해 오고 있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불쌍한 사람 구해달라고 보내주신 겁니다.
12월에 들어서면 서울 거리마다 빨간 옷을 입고 종을 딸랑딸랑 흔드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구세군이라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금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추운 겨울 배고프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에게 쌀과 연탄을 보내주기 위해 냄비를 들고 나와 돈을 모금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천 원짜리, 만 원짜리 능력껏 냄비 속에 넣습니다. 이렇게 작년에만 3억 딸라 넘게 모금됐습니다. 이 사회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이런 사랑의 흐름이 있어 아무리 신용불량자라고 해도 굶어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사랑이 북녘에까지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북녘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해 쌀과 물자를 모금해 보내면 간부들부터 자기 배를 채우기 급급하니 참 나쁜 정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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