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으로 점철된 북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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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정일 사망 2주년을 맞아 장성택 숙청이란 큰 뉴스가 한국 사회를 달구었습니다. 장성택 체포 장면을 공개하는 것을 보고 저는 많이 놀랐습니다. 그래도 고모부인데 말이죠. 아마 장성택도 정은이가 설마 나를 죽일까 이러다가 당한 거 아닐까요. 이제 평양엔 또 살벌한 피바람이 몰아치겠죠. 이번엔 몇 천 명일까요, 몇 만 명일까요. 새삼 놀랍지는 않습니다. 김정은이 대규모 숙청을 하지 않았다면 놀랍겠지만 이번 일은 장성택이 제물로 바쳐졌다는 것 말고는 이미 예정된 수순입니다.

돌아보면 북한의 역사는 늘 공개처형과 숙청을 동반한 피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점은 이 피의 역사 뒤에 또 하나의 감춰진 진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손에 피를 묻힌 자 역시 얼마 못 가 자기도 똑같은 운명에 처해진다는 것입니다. 토사구팽 되는 거죠. 토사구팽은 약 2500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나온 고사인데, 사냥 가서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가 필요 없으니 개도 삶아먹는다 이런 말입니다. 제 말이 맞는지 한번 북한판 토사구팽의 역사를 파헤쳐 볼까요.

지난달 하순 처형된 리용하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의 공개처형은 1997년의 서관히 당시 노동당 농업담당비서의 처형과 여러모로 유사하지 않습니까. 시기도 그렇고 방법도 그렇고 말입니다. 1997년은 김정일 집권 3년 차였습니다. 이번은 김정은 집권 2년차이니 김정은의 성격이 좀 더 급하다 이렇게 볼 수는 있겠습니다. 서관히는 당시 김정일이 대량 아사 사태에 따른 주민들의 원성을 잠재울 희생양이 필요할 때 바쳐진 제물입니다. 농업담당비서가 간첩이고 암약하니 여러분들이 굶어죽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김일성 시대의 노간부들을 숙청하게 되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서관히 숙청과 함께 만들어진 것이 바로 심화조입니다. 용성구역에서 전쟁 때부터 숨어있던 간첩을 잡았다면서 이를 계기로 정부 요직에 숨어 암약하는 미제의 간첩을 적발한다며 숱한 사람을 죽였죠. 전국 각지 안전부에 총인원 8,000여 명이 망라된 '심화조'가 만들어졌습니다. 간첩을 하나 잡았다고 보고하면 영웅 칭호도 받고 그러니까, 심화조는 당시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다 정말 잔인하게 고문했습니다. 여러분이 신천 박물관에서 미국놈들이 행했던 천인공노할 만행이라고 배웠던 그런 방법이 다 동원됐습니다. 전기고문, 손발톱 뽑는 고문, 심지어 여성 과학자의 젖꼭지까지 도려냈다고 합니다. 이 과학자가 영화 '열네번째 겨울'의 원형인물 백설희라는 말도 있던데 진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고문의 대상은 예외가 없었습니다. 높은 간부일수록 큰 간첩을 잡는 거니까요. 중앙당 본부당 책임비서 문성술은 심화조를 총지휘했던 장성택의 눈에 나서 잡혔는데, 고문을 견디지 못해 벽에 머리를 받고 자살했습니다. 서윤석 평남도당 책임비서는 정신병자가 됐습니다. 소년 유격대원으로 이름을 날렸던 양강도 책임비서도 당시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심화조 사건으로 2만 5,000여 명이 죽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심화조를 지휘한 총책임자는 당시 조직지도부 1부부장이던 장성택이었고, 실무책임자는 사회안전부 정치국장 채문덕이었습니다. 그런데 심화조의 운명이 나중에 어떻게 됐습니까. 채문덕은 불과 3년 뒤인 2000년 되레 "당과 정권을 뒤집을 쿠데타 목적으로 심화조를 조직한 반당반혁명분자"로 몰려 체포돼 일족이 멸족되고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으며 그의 측근 4명은 공개총살을 당했습니다. 또 수십 명의 부하들이 10년 이상의 중형을 받았고 많은 심화조 참가자들은 군복을 벗었으며, 사회안전부는 이름마저 개명당해 보안부로 강등됐죠. 채문덕을 지휘하며 숱한 피를 묻힌 장성택도 조카의 시대에 결국 숙청이 되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김정은 시대의 또 다른 사례는 2011년 류경 국가보위부 부부장 겸 반탐처장 처형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류 부부장의 처형과 동시에 전국적으로 그의 부하 수십 명이 총살됐고 가족은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습니다. 하지만 류 처장을 밀어내고 만세를 부르며 그 자리를 차지했던 그의 반대파들은 이번엔 불과 3개월 만에 다시 체포돼 총살당했습니다. 2011년 봄 보위부 인물들이 수시로 사라졌던 일들을 여러분도 잘 아시죠.

이런 일은 김일성 시대, 유일독재체제를 세우는 과정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표적인 것이 1955년 남로당 숙청에 앞장섰던 소련파의 몰락을 들 수 있습니다. 김일성의 눈에 들기 위해 박헌영 등 남로당 주요 인물들을 미제의 간첩으로 조작해 처형하는데 앞장섰던 박영빈 노동당 조직부장, 박창옥 선전부장과 같은 소련파는 불과 1년 뒤인 1956년 8월 종파분자로 몰려 자신들도 숙청됐습니다. 소련파의 리더였던 부수상 허가이는 자살했고, 소련파의 98%가 처형, 숙청, 투옥, 국외추방을 당했습니다. 남로당 숙청에 동조했던 연안파도 소련파와 같은 운명에 처해졌습니다. 소련파, 연안파 숙청 때 앞장서며 김일성 유일사상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떠들었던 인물들이 바로 11년 뒤 반당반혁명분자로 몰려 숙청된 갑산파 박금철, 김도만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김정은 시대도 숙청은 어김없이 되풀이돼 장성택파 숙청을 시작으로 이제 노동당의 쓸모없는 노인들을 정리하기 시작하겠죠. 이번 장성택 숙청에서 누가 김정은의 손발이 됐는지는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수족은 곧 토사구팽의 처지에 빠질 것이라는 것이 북한 역사의 교훈입니다. 사냥개로 활용돼 남 잡아먹고 좋아하지 마십시오. 이제 당신이 잡아먹은 자의 운명을 따라갈 차례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