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선거를 통해 본 남과 북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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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도 이미 아시겠지만 이번 19일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저도 당일 나가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왔습니다. 한국의 인구는 5000만 명 정도인데 이중 19세 이상이면 투표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해외에 나가 있는 동포들도 투표를 할 수 있게 허용했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수는 4050만7842명이랍니다. 그러니까 저의 표는 4050만 표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입니다.

저 스스로는 저의 투표권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숨 걸고 사선을 헤쳐 온 대가로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거니까요. 물론 누구나 똑같은 한 표로 계산되지만, 일단 저 스스로는 제 표가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북에 있을 때는 선거날이 휴식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어차피 대의원이 누군지 몰라도 무조건 찬성 투표해야 하니까 투표의 의미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누가 대의원이 됐든, 대의원 자체가 전혀 권한이 없어서 그냥 대의원 회의에 가서 당이 지시한대로 대의원증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밖에 하는 일이 없습니다. 물론 대의원들은 대개 간부들이 겸하기 때문에 대신 다른 권한은 있겠지만 말입니다.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와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두 가지가 있지만, 여기는 선거 종류가 많습니다.

일단 이번에 치른 대통령 선거가 가장 관심이 높은 선거입니다. 그 다음으로 국회의원 선거가 관심이 큽니다. 자기 사는 행정구역의 책임자도 선거를 통해 뽑습니다. 북한으로 말하면 시당, 군당 책임비서까지 다 내 손으로 뽑는다는 말입니다.

그뿐이 아니라, 각 행정구역의 의원과 교육감도 선거를 통해 뽑습니다. 각 시, 군 대의원과 각 군까지 교육부장을 내 손으로 뽑는 겁니다.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는 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특별히 선거를 통해 뽑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행정구역 책임자, 의원, 교육감 이런 선거를 그때마다 계속 하면 피곤하겠죠. 그러니 선거 하나할 때 다른 선거도 겸해서 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한에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라고 해도 권한이 거의 없으니,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하겠냐 아니면 어느 군 노동당 과장이나 심지어 군 행정위원회나 보위부 과장하겠냐고 묻는다면 아마 사람들이 다 보위부 과장하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여기는 국민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이면 장관급, 즉 북한의 내각상만한 급으로 쳐줍니다. 그만큼 인민의 뜻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번에 출근길에 소중한 제 한 표를 행사하고 왔습니다. 선거날은 휴식일이지만, 제가 일하는 신문사는 다음날 아침 선거 결과를 실은 신문을 발행해서 집집 문 앞까지 가져다 놓아야 하기 때문에 일합니다.

투표 때마다 느끼지만 여기는 투표장이 북한처럼 간부들이 쭉 나와 서있고, 앞에서 춤추고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북한처럼 옷차림이 불량하다고, 또는 초상화를 달고 오지 않았다고 다시 집에 돌려보내는 일은 없습니다. 그냥 신분증만 대조하고 투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여름 같은 때는 집 앞에 산책하다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가서 찍고 와도 됩니다. 창피해서 그런 일은 없겠지만, 모름지기 빤쯔 하나 입고 가서 투표해도 본인만 맞으면 옷차림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을 겁니다.

이번 대선의 투표율은 75.8% 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던 저번 대선 때는 63%였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던 그 먼저는 70.83% 였는데, 이번에는 투표율이 꽤 높았습니다. 아마 박근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거의 없는 박빙의 승부였기 때문에 선거에 참가하려는 의지들이 높았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긴 해도 4명 중에 3명이 투표에 참가했는데, 여러분은 왜 대통령을 뽑는데도 남한 사람들이 모두 투표를 하지 않는지 궁금하시죠.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이 됐을 때는 열에 여섯만 투표를 했죠.

그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둘 다 싫다 이런 사람들이나 누가 되던 내 생활에는 별 영향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여긴 투표를 하든 안하든 아무런 처벌도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일수록 투표율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자기 맘대로 나라를 뒤흔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민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라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 한다면 그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은 늘 선거에서 패배를 하게 되니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선진국일수록 대통령을 국회에서 견제하고, 사법부에서 견제하고, 언론에서 견제하니 대통령이 제 마음대로 정책을 펼쳐나가기 쉽지 않습니다. 만약에 대통령이 법의 범위를 어긋나는 행위를 한다면 한국은 대통령도 바로 탄핵해서 감옥에 잡아갈 수 있습니다.

후진국들은 독재자인 대통령이 제 마음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이런 정책 저런 정책 남발해도, 군과 경찰을 동원해서 반대파를 잡아가고 죽이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만이 커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북한이 딱 그런 거죠. 아니, 다른 후진국들하고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제일 심하죠.

만약 북한에서 선거를 해서 대통령을 뽑고, 법을 어기면 김정은도 감옥에 보낸다 이렇게 되면 인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의 장점입니다.

저는 대통령 뽑을 때 대북정책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합니다. 박근혜 후보가 됐으니 여러분들도 궁금할, 앞으로 그가 펼칠 대북정책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지만 오늘 시간이 다 돼서 다음에 한번 구체적으로 분석해볼까 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