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노동자들의 밀주 매매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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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제 올해도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남쪽은 12월이면 송년 모임, 즉 망년회가 많아서 술을 마실 일이 정말 많습니다. 저는 특히 직업이 사람 만나는 기자라, 오늘은 이 모임에서 마시고 내일은 저 모임에서 마시고 하다보니 벌써 보름째 매일 저녁 술입니다. 한번 마시면 12시 넘어서까지 마시는 일이 십상이라 체력 관리가 쉽지 않네요. 북한 남자들은 매일 이렇게 마신다고 하면 부러워할지 모르겠지만, 없을 때나 술이 귀하지 넘쳐 나면 또 안마시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마시는 술의 종류도 참 다양합니다. 한국산 소주, 서방의 위스키, 러시아 보드카, 일본 정종 등 전 세계 술을 다 마실 수 있습니다. 거기에 술뿐만 아니라 맥주도 세계 각종 맥주가 다 있고 막걸리를 마셔도 되고 선택은 다양한데 분명한 것은 섞어 마시면 다음날 머리가 엄청 아픕니다. 한 병에 100달러 넘어가는 술이나 북한에서 집에서 몰래 만드는 밀주, 그러니까 농태기나 머리 아픈 건 똑같고 그냥 술은 술입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비싸고 다양한 술을 마실 때마다 북한에서 농태기도 없어 못 마시던 시절이 종종 떠오릅니다.

북한은 공장 술이 거의 없으니까 어느 마을에 가던지 아마 열 집에 한 집 꼴로 집에서 몰래 술을 만들어 팝니다. 저의 집에서도 술을 가끔 만들었는데, 팔기 위해서라기보단 사업용으로 술이 많이 필요한데 일일이 사서 쓰기보단 아예 집에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술 만드는 법을 잘 압니다. 술 만드는 게 각자도생, 자력갱생 방식이다 보니 아마 북한 사람 열이라면 서너 명은 술을 잘 담그는 솜씨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술 만드는 솜씨를 중동에 나가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한껏 활용하고 있습니다. 중동은 술 마시는 자체가 불법이고, 적발되면 엄격하게 처벌까지 하는 곳이다 보니 술을 몰래 마시려면 엄청 비쌉니다. 중동엔 북한을 포함해서 동남아 국가나 인도 스리랑카 등 비이슬람 국가이면서 못사는 나라들에서 건설 노동자가 150만 명이나 와 있습니다. 이런 노동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와 있지만 술은 몰래 마시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보니 불법 술 암시장이 생겨났는데, 바로 이 암시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은 발군의 술 만드는 실력을 자랑해 중동 술 암거래 시장을 장악해버린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일하는 동아일보 후배 기자가 카타르 현지 취재를 가서 술 만드는 실태를 보고 오기도 했습니다. 카타르에는 북한 건설노동자가 2600명 정도 가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카타르 낮기온은 50도를 오르내립니다. 가만히 밖에 서있어도 숨쉬기 괴로운 곳에서 하루 14시간씩 일합니다. 그렇게 일하면 건설주는 한 달에 900달러를 줍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에서 다 빼앗고 노동자 손에 정작 가는 돈은 150달러~200달러 정도 밖에 안 됩니다. 동남아 국가에서 온 노동자들은 자기가 일한 것은 다 자기가 가지는데 북한 노동자들은 80% 정도 빼앗깁니다. 그 50도 더위에서 일하고 돈은 다 빼앗기고, 정말 이런 게 노예지 누가 노예겠습니까.

이런 와중에 요새는 충성의 자금 더 많이 바치라는 당국의 독촉이 하도 심해서 150달러도 제대로 받기 어렵답니다. 그러니까 북한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불법 밀주 제조에 매달립니다. 카타르에는 남강건설 등 5개 건설사에 35개 사업소가 있는데, 35개 사업소마다 카타르 외곽 한적한 곳에 2층짜리 단독주택 여러 채를 통째로 빌려 24시간 내내 밀주제조 공장으로 만가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집에서 24시간 만가동하면 매일 밀주 1톤 정도 만들 수 있는데 이걸 1.5리터짜리 수지병 12개를 한 박스로 해서 팝니다. 북에서 만드는 밀주를 현지 말로 싸대기라고 부르는데, 농태기와 비슷한 이름인거 봐서 북한 노동자들이 지은 것 같습니다. 1.5리터짜리 12병에 현지에서 도수 높은 것은 400리얄, 낮은 것은 200리얄에 팝니다. 달러로 치면 1.5리터에 도수 높은 것은 10달러, 낮은 것은 5달러인 셈입니다. 북한에서 1.5리터에 0.5달러 정도 하는 것에 비하면 한 10배 비싼 셈인데, 카타르 물가에 비하면 이건 정말 눅은 것입니다.

술을 팔다가 경찰에 적발되면 감옥에 가거나 추방되기도 하는데, 추방이 계속됨에도 술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은 수입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2014년 한 해에만 북한 근로자들은 밀주 판매로 12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합법적인 건설노동자 임금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800만 달러로, 일한 거보다 술판 돈이 1.5배나 많습니다. 그러니 땡볕에서 14시간씩 일하겠습니까, 아님 술을 만들어 팔겠습니까. 거기에 당에서 돈을 악착같이 계속 높여서 걷어가니 그래도 달러 좀 가지고 집에 가려니 죽으나 사나 술 만드는 데 목을 매는 겁니다. 건설 간 게 아니라 밀주 담그러 카타르 간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카타르에서 그렇게 눈물겹게 살아도 북에서 사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이 버니 정말 배고파서 식당에서 버린 음식을 쓰레기통에서 주어먹으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7월에 망명한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도 며칠 전 국회의원들과 만나 이야기하기를 "북한은 사실상 노예사회나 마찬가지고, 간부나 주민이나 예외가 아니다"고 했습니다.

외무성 부국장급 되는 고위 간부가, 외국 생활 20년이나 해서 세계를 두루 잘 아는 간부가 북한은 노예라고 이야기할 정도면, 그건 확실히 사실이 맞습니다. 다만 북에 계신 여러분이 바깥세상을 몰라 자신이 노예인 것을 인식 못할 뿐입니다.

2016년도 또 노예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지나가고 있는데, 언제면 여러분들도 사람답게 사는 날이 오게 될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