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장성택 관련 살벌한 숙청 바람이 시작됐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고, 죽거나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겠죠. 숙청작업이 내년 4월까지 진행된다니 숙청 대상이 수백이 될지, 수천이 될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이 사건과 연관 없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겠죠.
제가 북에 살아봐서 알지만, 이럴 땐 숙청된 사람들을 보고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숙청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권력을 독점하고 부를 모아 떵떵거리며 살던 간부들이 태반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벌어 겨우 먹고 사는데, 저것들은 나라의 재부를 독점하고 국가 재산을 빼내 수백만 달러를 모았다느니, 아파트 몇 채를 갖고 있었다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니 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기간에도 돈 좀 있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숙청사건들이 오죽 많았습니까. 그때마다 이런 사람들은 별로 동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굵게 살다 짧게 갔다며 차라리 이렇게 근근이 길게 사는 우리 신세가 낫다며 위안거리로도 삼죠. 이런 심리는 북한에서만 생겨나는 심리가 아니라, 수천 년 전에도 있었던 인간 본연의 심리가 아닐까 합니다.
뭐 한국은 안 그렇습니까. 가령 어떤 소방관이 불 속에서 사람을 구하고 목숨을 바쳤는데 알고 보니 토끼 같은 어린 두 자녀가 집에서 아버지 오길 기다리더라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온 나라가 눈물 글썽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잘 만난 이유밖에 없는 재벌집 자식이 비싼 고급차에 여자 끼고 가다 사고 나 죽었다 이러면 동정하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인간이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기적 욕망과 질투를 가슴에 안고 삽니다. 북한이 망한 것은 바로 이런 인간의 이기심, 욕망, 질투와 같은 감정을 모두 말살하고, 남을 위해 사는 공산주의형 인간을 만들겠다고 애초에 되지도 않는 욕심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이젠 공산주의가 허황된 것을 아니까 당 강령에서도 빼버렸다죠.
옛날에 북한 간부들이 외국에서 한국사람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해외 나올 정도면 한국이 얼마나 잘 사는지 잘 알죠. 그래도 이들이 하는 소리가 "우린 남쪽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조선 사람은 배고프면 살아도 배 아프면 못 살죠" 이렇게 말했답니다. 가난한 것은 참을 수 있는데, 너희 남쪽은 빈부격차가 심하니 배알이 꼴려 어찌 사냐 이런 뜻입니다. 저는 그 말에 어느 정도의 진심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도 북한은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 사이 부익부 빈익빈이 심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말은 사회주의인데, 권력을 가진 간부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인민은 배고파 굶주리고, 그러다 꽃제비도 되고 굶어 죽기까지 합니다. 북과 남을 다 같이 경험한 제가 공정하게 말씀드리면 지금 북한의 빈부격차는 한국보다 더 심합니다. 여기선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습니다. 반면 한반도 최고의 부자는 북한에 있는 김정은입니다. 만민평등의 사회주의에서 사는 줄 알았던 사람들이 불쑥 꿈을 깨고 보니 권력을 움켜쥐고 부자 된 사람들이 눈에 보이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괘씸하겠죠. 이번에 숙청된 사람들 대개 그렇게 살던 간부들일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속 시원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소위 간신들이 몇 백, 몇 천씩 계속 죽어 나가서 여러분 생활이 좋아졌습니까. 해마다 북한 경제는 점점 수렁에 깊이 빨려 들어가 이젠 회생할 가망이 없고, 덩달아 북한 인민들의 삶도 점점 어려워집니다. 이쯤 되면 문제가 이것이 아니구나 이런 것을 모든 사람들이 눈치 채셨을 겁니다. 떵떵거리던 사람 숙청하고, 또 다른 인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또 열심히 해먹다 목이 날아나고, 이런 일이 무한 반복되는 겁니다.
지금 북에서 목이 날아나지 않는 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은과 그의 형 김정철, 여동생 김여정 정도밖에 없습니다. 물론 형제도 장담 못합니다. 김일성, 김정일 핏줄도 냉혹한 권력의 세계에선 안심할 수 없습니다. 김성애 일가가 곁가지로 몰려 영원히 세상밖에 나오지 못하고,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도 외국을 떠돌며 언제 암살될지 모릅니다. 장성택도 죽었잖습니까.
신하들에게 권력을 나눠주고, 인민의 불만이 커지면 이들을 죽여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은 왕조와 독재 국가의 수천 년 내려온 통치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걸 알까봐 역사도 안 가르쳐 주고 오직 혁명역사만 주입하는 겁니다. 북에서 진정하게 떵떵거리는 사람은 왕이 된 김정은이죠. 오죽 호화로우면 해마다 수천 만 딸라의 연봉을 받으며 세상 부럼 없이 볼 것 다 보고 살던 미국 농구선수 로드먼도 김정은 별장에 가보고선 입이 딱 벌어져서 호화와 방탕의 대명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프랑스 18세기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세계에 갔다 온 것 같다고 했겠습니까.
잘 먹고 잘 살려는 것은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선 이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김정은에게 머리 조아리고 권력을 하사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한마디에 목이 날아가고...이게 제대로 된 사회입니까. 자본주의가 아무리 결함이 많아도 적어도 제 노력으로 돈을 벌어놓고도 목이 날아 날까봐 떠는 세상은 아닙니다.
북한은 그 체제를 바꾸어야 합니다. 김정은의 말 한마디에 뎅강 목이 잘리는 사회가 아니라, 내가 대통령을 뽑고, 마음에 안 들면 선거로 대통령을 잘라버리는 사회, 이런 사회로 만들어야 여러분들도 목숨 걱정 없이 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잘 죽었다 시샘 속에 박수만 치는 사이에 여러분들은 점점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