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고속철 타고 북한으로 '상상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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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 덧 새해 첫 주가 지나갔습니다. 여기 서울은 그 첫 주를 눈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분주합니다. 새해 첫 출근날인 4일에 25㎝ 정도 눈이 왔는데 이것이 100년 만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제가 고향에 있을 때는 눈 속에 집이 아예 파묻혔던 때도 있었고, 허리까지 눈이 내렸던 일도 여러 번 기억나는데 여기 서울은 지난 100년 간 한 뽐 좀 넘게 쌓인 일조차 없었다니 놀랍습니다. 덕분에 서울은 지금까지 그 눈을 치우느라 분주합니다. 하지만 서울에 살면서 8년 동안 제대로 된 눈 구경을 한 적이 없는 저는 눈이 오니 마음이 참 즐겁습니다.

여기선 눈이 오면 도로에 염화칼슘이나 소금을 뿌립니다. 그러면 눈이나 얼음이 녹아서 다시 얼지 않습니다. 서울에만 눈이 내린 지 하루만에 염화칼슘 4천 톤 가까이, 소금은 8백 톤 가까이 도로에 뿌렸다고 합니다. 돈으로 따지면 눈 치는데 100만 달러 넘게 썼습니다. 그 많은 돈을 길에 쏟아 부었으니 북에서 볼 때는 참 아깝다고 혀를 찰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속도가 중요한 사회이기 때문에 이렇게 비싼 비용을 투자하고서라도 차들이 제때 다니는 것이 경제에 더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속도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고속철도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사실 이번 주에 여러 분들에게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한국 기업이 4일 두바이에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완공했다는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저번 달 말에 중국에서 세계 최고 속도의 고속철이 개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것을 먼저 말씀드릴까 하다가 제가 워낙 북한에서 느려터진 기차 속도에 한이 맺힌 바가 있어서 고속철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건물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올해 설 직전 중국에서 개통한 고속철도는 최고 시속이 394㎞에 이릅니다. 화북성 무한시에서 광동성 광주시까지 거리가 1000㎞가 좀 넘는데 이 거리를 3시간 안돼서 갑니다. 중국에서는 동북지역도 고속철을 깔고 있는데, 내년에는 하얼빈에서 대련까지 900㎞ 거리를 2시간 반 동안 갈 수 있는 기차가 생기고 그 다음해에는 단동에서 베이징까지 3시간 안돼서 도달하는 기차도 생깁니다.

고속철은 중국만 있는 게 아닙니다. 한국 고속철 기술력은 중국을 능가해서 세계 네 손가락 안에 들어갑니다. 여기 한국에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올해 말 현재 2시간 10분이면 갈 수 있고, 지금 목포까지 고속철을 놓고 있는데 이것이 몇 년 안에 완공되면 서울에서 목포는 1시간47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와서 자랑스러운 일 중에 하나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철도가 개통했을 때 그 첫 열차를 탔던 일입니다. 그야말로 창밖에 경치가 휙휙 지나갑니다.

북에서 있을 때 기차가 빨리 가면 바깥의 전주대가 사선으로 기울어져 보인다고 들었는데 직접 타보니 그렇지는 않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서울 고속철도는 시속이 약 300㎞ 정도 됩니다. 중국보다는 속도가 좀 떨어지지만 땅덩어리가 큰 중국에서는 도시 사이도 넓으니 속도를 막 내도 되는데 여기 한국은 땅이 작고 또 도시 사이가 그리 멀지 않아서 마음대로 속도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속철도를 타면 예전에 제가 북에서 기차를 타고 다니던 기억이 납니다. 평양에서 나진까지 기차가 빨리 가도 하루 넘게 걸리고, 늦게 가면 일주일 씩 가던 생각이 말입니다. 한국 고속철 같은 속도라면 평양에서 라진까지 한 2~3시간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상만 해도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평양과 라진 사이에는 기차굴이 참 많습니다. 거의 200개 정도 됩니다. 그런데 고속철을 놓으려면 기찻길이 최대한 곧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차굴이나 교량을 많이 건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이번에 건설한 고속철도 기차굴이 무려 226개, 다리는 684개나 됩니다. 그걸 다 뚫고 기찻길을 만들었으니 북조선도 사실 경제력만 받침 되면 얼마든지 산 밑에 굴을 뚫고 고속철을 놓을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 같은 수준에서는 그럴 엄두도 못 내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발전하려면 고속철을 놓아서 시간을 빨리 단축시키는 것이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니 제 생전에는 북에도 고속철이 생기는 것은 필연일 듯싶습니다.

생각만 해봐도 뿌듯합니다. 라진에서 떠나 너댓 시간 뒤면 부산에 도착하는 상상. 제가 사는 서울에서 3~4시간이면 라진에 가는 상상. 경의선이 복구돼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고속철이 연결되면 마음만 먹으면 서 신도 다섯 시간이면 기차타고 갈 수 있겠네요. 그런데 아쉬운 것은 속도가 빨라지면 잃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북에서는 기차에 타면 마주 앉은 사람과 순식간에 친구가 되고 속을 터놓기도 하고 주패도 놀면에 계지 않습니까. 북한의 기차 여행은 풍경이 있고 따스함이 있고 정취가 있었습니다. 물론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열차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고속철을 타고 아무리 오래 가봐야 2시간이니 그냥 차에 앉아 책을 좀 읽거나 눈을 좀 감고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빨리 가야 할 때도 많지만 어떤 때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기차를 타고 가던 옛날이 그립기도 합니다. 지금 제 마음 같아서는 고향에 갈 수 있다면 기차를 타고 한 달이 걸린대도 즐겁기만 할 것 같습니다. 역시 속도보다는 마음 편한 여행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