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출퇴근들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농촌은 대개 농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보통 집에 돌아와 점심 먹고 다시 나가시죠. 물론 멀리 일하려 갈 때는 벤또를 싸가지고 가고요.
하지만 도시는 어떻습니까. 일반적으로 집이 멀다보니 벤또 사가지고 출퇴근 하는 분들이 많지요. 이 벤또를 싸느라고 참 고생들이 많으시죠. 참, 벤또를 여기 한국에선 도시락이라고 하는데, 저는 북에서 썼던 벤또란 말 그냥 쓰겠습니다.
저도 중학교 때 학교가 멀어서 벤또를 싸가지고 다녔습니다. 저의 집도 그러했지만 북조선의 부모님들은 자신들은 못 먹어도 자식의 벤또만큼은 이밥을 싸주려고 없는 살림에 정말 애를 많이 쓰시지요. 좋은 반찬거리가 있어도 벤또용으로 따로 내놓고요. 그 옛날을 생각만 해봐도 마음이 찌릿하게 젖어듭니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보니 여기 사람들은 거의 벤또를 안 싸가지고 다니더군요. 대신 시내에 식당이 너무 많아 놀랐습니다. 제가 일하는 신문사는 서울의 중심부에 있습니다. 슬슬 걸어서 정부청사까지는 한 5분, 청와대까지는 10분이면 갑니다.
저희 신문사 사람들은 멀리서 매일 2시간 씩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평균을 내면 출퇴근하는데 1시간 정도씩은 걸리는 것 같습니다. 서울이 평양보다 대중교통은 훨씬 더 잘돼있지만 출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결과적으론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북에선 국가에서 직장을 배치해주고 여기선 직장을 자기가 알아서 잡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북에선 직장이 멀면 출퇴근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집 가까이에 일터를 배치해주지만 서울에선 자기 능력껏 입사시험을 쳐서 직장을 잡습니다. 집이 회사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지만 서울 시내는 집값이 너무 비싸서 돈이 없으면 할 수없이 멀리 외곽에 집을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례로 평양이라면 보통강구역에 직장이 있는 사람이 집이 없어서 집값이 싼 멀리 중화군에서부터 출퇴근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북이라면 이 경우 점심 벤또를 싸가지고 다니겠지만 여기선 사람들이 회사 주변 식당들에 가서 점심을 먹습니다. 그러니 서울 시내에 식당이 엄청 많습니다. 저의 회사 주변에도 식당이 아마 수백 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종류도 밥국만 전문으로 파는 식당, 피자 스파게티 같은 서양식 식당, 자장면이나 짬뽕 같은 중국 음식을 파는 식당, 생선만 파는 식당 등으로 너무 다양합니다. 그 많은 식당 중에서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동료들과 함께 가서 먹습니다. 저녁까지도 식당에서 먹고 들어가는 때가 많습니다.
서울의 직장인들이 점심, 저녁을 식당에서 다 해결하면 식당들이 돈을 엄청 벌 것처럼 생각되시죠. 그런데 실제로는 식당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국의 인구당 식당 숫자는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인구 천 명 당 식당은 12개, 일본보단 2배 많고 미국보단 7배나 많습니다. 남쪽 인구를 5000만 명으로 치면 식당은 60만 개 가까이 되는 셈이죠.
평양에 식당 몇 개나 됩니까. 아무리 꼽아 봐도 고작 몇 백 개 정도겠죠. 하지만 평양 인구가 350만 명이니 남쪽과 같은 비율이라면 평양에만 식당이 4만 개가 넘게 있어야 할 겁니다. 상상해보십시오. 그렇게 식당이 많으면 아마 평양 거리에 식당이 따닥따닥 있고도 모자라 골목골목 있어야 하겠죠. 서울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많은 식당들이 서로 경쟁하다보면 문을 열었다가 1,2년도 버티지 못하고 망하는 식당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럼에도 식당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식당이 회사나 공장 차리기보단 쉽기 때문입니다. 북에서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니 장마당에 음식 장사들부터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서울에서는 점심 한 끼를 사먹으려면 보통 다섯 딸라 정도 씁니다. 국밥 종류를 먹으면 이 정도 듭니다. 물론 식당마다 음식 종류가 다르니 가격을 딱 정해서 말할 순 없지만 일반적으로 싸게 먹으면 한 세 딸라 정도 들고 열 딸라 이상짜리 음식을 먹으면 좀 비싸게 사먹은 겁니다 끼니 당 다섯 딸라로만 쳐도 1달 점심 값만 150딸라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론 더 많이 듭니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입고 쓰고 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서울이 세계 도시 중에서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비쌉니다. 북에서 150딸라면 4인 가족이 강냉이밥이라도 떨구지 않고 1년 치 식량을 해결할 수 있는 돈이지요.
요새는 남쪽에서도 점점 점심에 벤또를 사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답니다. 밥값을 절약하자고 그러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온갖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식당 음식보단 집에서 정갈하게 싼 벤또가 몸에 더 좋다는 인식이 퍼져있어서 그렇습니다. 저도 남의 눈치만 보이지 않는다면 벤또를 사가지고 다니고 싶습니다. 회사 주변에 식당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고, 또 그래야 잘 사는 나라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싸주는 벤또가 좋지요.
하지만 그 벤또에 사랑과 정성이 담겨야지 가난의 한숨과 눈물이 담겼다면 싸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편치만은 않을 겁니다. 벤또를 싸느라 북한의 어머니들과 아내들이 한숨을 내쉬지 않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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