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과유불급-남는 것과 모자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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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예전에 북에서 대학을 다닐 때 세계 명언집에서 "남는 것은 모자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이런 말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느낌에 '참 좋은 말 같다'고 생각해서 기억을 했었는데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와서 보니 정말 좋은 말이 맞더군요.

그 좋은 말이 그때 명언집에서 왜 인도네시아 명언으로 소개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보니 '과유불급'이라는 한자 사자성구도 있어서 남쪽에선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과유불급은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으로 기원전 5세기에 살았던 중국의 고대 사상가 공자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북에서는 솔직히 늘 모자란 경험만 있다보니 "모자란 것보다야 남는 게 좋지"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특히 대학 기숙사생들이라는 것이 주는 밥 량이 너무 적어서 늘 배고픔을 안고 사는 터라 항상 배가 터지더라도 원 없이 밥을 먹는 것이 소원이죠. 어디 기숙사생만 그렇습니까. 군대도 그렇고 돌격대도 그렇고 탄광, 농촌 어디라 할 것 없이 북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많죠.

어디 먹는 것만 모자랍니까. 쓰고 사는 모든 것들 중에 남아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살다가 중국 연변에 오니 여기는 한족과 조선족이 너무 대비되는 바람에 남는 것과 모자란 것이란 말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흔히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곳처럼 생각하지만 여기도 이제는 200만 인구 중에 한족이 60%가 넘고 조선족이 40%도 안 됩니다.

하지만 연길에는 조선족이 한 60% 정도 됩니다. 연길에 오니 조선족은 참 소비를 과분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열심히 번 돈으로 좋은 차도 사고 집도 멋있게 장식하고 좋은 음식으로 먹고 마시고 놀고 그럽니다. 연길 시내에 좋은 양복을 쭉 빼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조선족입니다.

그런데 한족은 보통 옷차림이 허름합니다. 집도 깨끗하지 않고 연길에서 힘들거나 지저분한 일들은 대개 한족들이 합니다. 하지만 정작 집에 돈을 많이 쓸 일이 닥치면 조선족들의 집에는 빚밖에 없어서 남에게 꾸려 다니지만 한족의 집에는 허름한 장롱 속에서 뭉칫돈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길에선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벌어 온 돈이 결국엔 다 한족 장롱에 들어간다는 말을 합니다.

피뜩 보건대는 조선족은 매미이고 한족은 개미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고 근검절약해서 돈을 모으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요, 정작 나라를 생각하면 한족들의 삶이 국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조선족처럼 열심히 벌어서 돈을 팍팍 써야 국내 소비도 살고 경제도 발전됩니다. 한족처럼 장롱에 돈을 꼬깃꼬깃 쌓아놓으면 돈이 돌지 않아 경제가 발전하기 힘듭니다.

벌어들인 돈에서 몇 %를 저금하느냐를 나타내는 수치가 저축률인데 한족들의 저축률은 세계에서 제일 높습니다. 돈을 있는 대로 다 써버려서 정작 목돈이 필요할 때는 꾸려 다니는 조선족도 지나치지만 돈을 지나치게 아껴서 장롱에 쌓아두는 한족도 지나칩니다. 그런 전혀 다른 성향의 조선족과 한족이 함께 어울려 사는 연길은 참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한국에 와보니 여기는 모자라는 것보단 남는 것이 훨씬 많은 곳입니다. 물론 돈은 빼고요. 자기에게 돈이 남아서 돌아간다는 사람은 전 세계를 다 둘러봐도 많지는 않겠죠. 돈을 제외하곤 남쪽에는 먹을 것 입을 것 정말 넘쳐납니다. 북에서 늘 배가 고프게 살았던 제가 남에선 늘 배가 불러 살고 있습니다. 각종 기름진 음식과 고기류, 술과 같은 고칼로리 식품이 넘쳐나니 배가 나올까봐 적게 먹느라고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북에선 간부만 배가 나오는데, 배가 나오면 좋지 왜 그래 하는 분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발전된 자본주의에선 비만은 가난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미국에 가 봐도 못사는 사람들 속에서 비만 비율이 훨씬 높고 잘 사는 사람들일 수록 날씬할 확률이 큽니다. 그러니깐 가난한 사람들이 기름이나 고기를 훨씬 많이 먹고 잘 살면 남새를 많이 먹는다는 말입니다.

비만이 되면 각종 고혈압, 당뇨병에 걸려서 오래 못살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살 좀 빼지 못해서 애씁니다. 살 좀 찌려고 애를 쓰는 북쪽하고 너무 대비가 되는 일입니다. 남과 북이 무슨 회담을 하면요, 회담에 나온 북쪽 간부들은 온 북배가 나오고 피둥피둥한데 남쪽 사람들은 마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진을 온면서 남쪽 사람이 북쪽 사람 같고, 북쪽 사람이 남쪽 사람 같다는 말을 하며 웃기도 합니다.

비만을 막으려면 운동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음식을 적게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종 맛있는 먹을 것들이 지천에 널려있는데 그걸 보면서 꼴깍 군침을 삼키면서 외면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없어서 배를 곯는 북쪽이나 너무 많아서 적게 먹느라 괴로운 남쪽이나 둘 다 문제입니다. 과유불급이란 말 이런 때 써야 하겠죠. 적당하게 산다는 것이 쉽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굶어서 영양실조가 오겠느냐 아니면 비만이 오겠느냐를 택하라고 하면, 먹을 게 넘쳐서 비만이 찌는 쪽을 선택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옛말에도 "사람은 배고픔과는 타협 못한다"는 말은 있어도 "배부름과는 타협 못한다"는 말은 없는 거겠죠. 북에서도 비만환자가 늘어나 사람들이 살까기 한다고 난리치는 날도 언젠가는 오겠죠. 지금은 잘 상상이 되진 않겠지만 그런 세상 그려보며 희망을 잃지 맙시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