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국력과 민족의 존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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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국력과 민족의 존엄에 대한 문제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북에서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는 교육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북한이 큰 힘을 들여 만든 다 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을 관통하는 사상도 '민족의 운명 속에 나 개인의 운명도 있다'는 것 아닙니까.

북에서 세상 밖을 나와 보니 역시 그 말이 그른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나라가 힘이 있어야 개인의 존엄도 높아진다는 것을 잘 알게 됐습니다.

오늘날에는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옛날처럼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 노예의 삶을 사는 민족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민족의 존엄은 국력에 따라 좌지우지됩니다. 민족의 구성원인 개개인의 존엄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1970년대 한국의 부산 인근 고리라는 곳에 원자력발전소를 세울 때의 일입니다. 당시 한국에는 기술이 전혀 없다보니 미국 기술자들이 와서 발전소를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미국인들이 음식물을 전부 홍콩에서 가져다 먹고, 심지어 마시는 물까지도 홍콩에서 날라 왔습니다. 고리 지역의 물은 한국에서도 제일 깨끗한 것인데, 아예 한국인을 야만인 취급한 것입니다. 미국 기술자들은 한국 기술자들도 멸시했습니다. 미국인들과 일할 정도가 되면 한국에서는 최고대학인 서울대를 나온 수재들인데도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1976년에 참다못한 한국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미국인 숙소로 쳐들어갔습니다. 그게 불과 30년 전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제는 한국인들이 미국인이라고 우러러 보지도 않고 멸시 받지도 않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한국의 근면성과 교육열풍을 따라 배우자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북에서 한국에서 30년 전에 벌어졌던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올봄에 로씨아 기술자들이 라진항에 와서 건설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잠도 라진에서 안 잤습니다. 매일 직승기 5대에 나누어 타고 하싼에서 출퇴근합니다. 그러다가 자기들이 숙소를 직접 짓고서야 거기서 생활하기 시작했답니다.

거기 사정을 제가 전해 들었는데 먹는 것은 물론 물까지 몽땅 로씨아에서 날라 온답니다. 북조선 사람들과는 말도 안한답니다. 혹시 누가 말을 걸려고 하면 땅에 침을 탁~뱉고 돌아서기도 한답니다. 모욕도 이런 모욕이 어디 있습니까. 한국에선 몽둥이라도 들고 달려 들어갈 수 있지만, 북에서야 그러면 정치범이 될 수 있으니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정말 가슴에 피가 끓어오릅니다. 역시 나라가 힘이 있어야겠죠. 로씨아 사람들 라진에선 북조선 사람들 우습게 여기지만, 반대로 여기 한국에는 로씨아 처녀들이 돈을 벌겠다고 찾아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고 했는데, 지금 북한을 뛰쳐나온 수만 명의 탈북자들이 중국에 숨어 지내면서 상갓집 개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북에서 너무도 가난하게 살다보니 결국 굶어죽기보단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입니다. 어제까지 우리 이웃들이었습니다. 나라가 못살면 나라가 있어도 상갓집 개보다 못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라가 잘 살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골치 꺼리입니다. 이런 흐름은 총칼로 억지로 막기 힘듭니다.

북에서 '우리민족 제일주의'를 아무리 외쳐봐야 뭘 합니까.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200개 국가 중에서 130등 정도에 불과한, 말하자면 세계 중간에도 못 미치는 중국 사람들이 북조선에 관광 가서 으스댑니다.

김일성 대니 외국어 대니 북에서 최고 대학 나온 수재들이 그 중국 관광객들의 안내원을 하겠다고 경쟁이 치열합니다. 중국 관광객 안내원이 되면 직업 참 좋은 것 얻었다고 모두 부러워하지 않습니까. 일반 사람들은 중국 관광객들에게 말도 감히 못 걸어보지 않습니까. 밖에 나와 보니 국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북에서는 이미 사상 강국, 정치 강국, 군사 강국이 됐고 이제 경제 강국만 되면 강성대국이 된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국을 평가하는 세계의 잣대는 오직 하나, 경제력입니다. 경제력이 크면 군사력도 자연히 커지고, 세계 정치무대에서의 발언권도 커집니다.

그러나 북조선이 가난하다고 너무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때가 오면 무섭게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도 불과 30년 전에는 미국에게 멸시받던 나라였습니다. 미래는 더욱 밝습니다. 골드만삭스라고 미래 예측 분야에선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유명한 미국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가 2050년에는 통일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8만1000달러로, 한국인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잘사는 국민이 된다고 내다봤습니다. 일본보다 더 잘산다고 합니다. 실제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8만 달러, 상상만 해봐도 뿌듯하지 않습니까.

지금 어렵지만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겐 희망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