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난 때문에 여객기를 띄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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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또 한 해가 흘러 2015년,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가 왔습니다. 이는 곧 다시 말하면 분단된지 어느덧 70년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70년이면 정말 오랜 시간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 철저히 떨어져 살면서도 서로가 그리워하고, 함께 모여 살기를 바라는 것을 보면 오천 년 내려온 우리 민족의 핏줄은 정말 끈끈하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그렇지만 북한을 보면 그 땅은 일제에게서 해방된 것이 과연 축복이었을까 이런 생각마저 듭니다. 한국은 이제는 일본과 거의 1인당 국민소득이 맞먹을 정도로 발전됐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전혀 들진 않습니다만, 북한은 일제 때보다 훨씬 더 낙후돼 있으니 말입니다.

제가 북에 있을 때도 차라리 일본 치하에 계속 있었다면 지금쯤 일본만큼 살았을 것인데 앞으로 전진해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면서 실제로는 계속 퇴보만 하다보니 왕조 체제가 됐다는 푸념이 의식있는 지식인들 속에서 있었습니다. 북한만 보면 차라리 1960년대나 70년대쯤 해방됐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요즘 북한의 전력난 소식을 들으니 정말 더 개탄스럽습니다. 기차가 청진 평양 사이를 무려 한달이나 걸린단 소리에 새삼 끔찍해집니다. 고난의 행군 때보다 이건 더 상황이 심각하거든요. 제가 있을 때 최악의 기록은 나진 평양 사이 열차가 2001년 1월에 23일 걸렸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도중식사가 다 떨어져 사람들이 열차에서 굶어죽고 기차에서 해산하는 여성도 나오게 되니까 북한이 직승기를 띄우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기차가 못 뛰니 김정은이 대학생들을 위해 비행기를 띄우라고 지시했다면서요. 그나마 그렇게라도 생각해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제가 대학생 때는 내 평생 비행기 한번 타볼까 말까 이런 상상을 해봤는데, 덕분에 평양 대학생들 비행기 다 타볼 수 있게 됐으니 정말 좋은 추억 하나 생기겠네요. 그런데 돌아올 때도 비행기를 띄운 답니까. 올 때는 또 어떻게 돌아올지 걱정이 크겠습니다.

북한은 이번 일을 두고 김정은의 사랑과 배려를 선전하겠지만, 사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웃긴 일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가 전기가 없어 방학에 학생들을 비행기로 실어 나릅니까. 전기가 없는 나라라도 디젤 기차로 가면 더 간단하겠죠. 전기가 없어 대신 비행기를 띄운다는 것은 정말 황당하고 북한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해외 토픽거리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올해는 비가 안와서 발전소가 가동하기 힘든 것도 압니다. 올해 10월까지 북한 지역의 강수량은 지난 30년 평균치의 63.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뭄이 비단 북한만의 사정은 아니거든요. 여기도 가뭄이 들어 소양강, 북한강 이쪽의 강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력난 같은 것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여기는 원자력과 중유발전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수력 발전소가 돌아 안가도 전기가 크게 부족하지 않습니다. 또 곳곳에 댐이 잘 건설돼 있어 가뭄이 와도 견딜 수 있게 물을 잘 가둬두고 있습니다. 치산치수, 즉 홍수와 산사태, 가뭄을 이겨내도록 물을 다스리는 일은 이 지구상에 국가 형태가 생겨나서부터 왕들이 중요하게 여겨왔던 문제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경제난 때문에 치산치수가 거의 이뤄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비록 가뭄이 심각하긴 하지만 물을 평소 잘 가둬두었다면 그나마 좀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웃 중국이 이번 주에 역사적인 공사 하나 끝냈습니다. 보통 세계 대다수 도시는 큰 강을 하나 끼고 형성돼 있는데 인구 2,000만 명이 사는 중국 수도 베이징엔 강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물 부족이 심각해 항상 고생해 왔는데, 이번에 저기 남쪽 장강에서부터 수로를 파서 베이징에 강을 아예 새로 만들었습니다. 장강에서 베이징까지 수로 길이가 무려 1,432㎞, 3500리나 됩니다. 3500리면 압록강과 두만강을 합친 것보다 더 긴 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장강에서 물이 떠나면 베이징까지 오기에 무려 보름이나 걸린 답니다. 물이 풍부한 남쪽의 물을 북쪽으로 끌어오는 것은 중국의 오랜 꿈이었는데, 드디어 그 꿈이 이뤄졌습니다. 이 공사는 역사적으로 볼 때 만리장성에 비교되는 그런 대단한 일입니다.

보십시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기운 옷을 입고 북에 뭘 좀 얻어가려 오던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니까, 저런 엄청난 공사도 해버리는 국력이 강한 국가로 변했습니다. 그 사이 북한은 뭐했습니까. 강을 건설하기는커녕, 있는 강조차 준설이 안돼 물이 부족하게 됐습니다. 그나마 했다는 일도 금강산 발전소 수로 공사처럼 쓸데없는 곳에 백리 굴을 뚫느라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북한이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압록강, 두만강만 잘 활용해도 충분히 기차를 다니게 할 전기 정도는 나올 것이 아닙니까. 또 핵무기 만든다고 집착하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신포에 경수로가 다 건설돼 전기 문제가 크게 해결됐을 것이 아닙니까. 핵무기 만들 돈과 기술력을 원자력 발전에 쏟던가 했어도 상황이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정은이 올해는 또 주민들 잘 살게 하겠다고 신년사에서 이야기했는데, 강성대국, 부강대국이란 말에 속아 20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귀에 들어갈리 만무합니다. 새해에는 그냥 국가가 뭘 하겠다고 하지 말고 인민의 삶에 참견만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통제를 하지 않으면 기차가 뛰지 못해도 서비버스, 서비차가 잘 다녀서 비행기 띄우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게 진정으로 인민을 생각하는 길임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모든 가정들에 행복이 찾아오길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