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해 첫 인사를 드립니다. 2014년은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정말 기대됩니다. 북에선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그냥 숫자로만 해가 바뀌었음을 알리지만, 여기 남쪽은 12간지를 앞세워 올해는 갑오년이다 이런 보도를 많이 합니다. 물론 북에서도 올해가 말띠해다 이런 것은 사람들 사이에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어떤 말띠해냐 이런 것은 국가에서 엄격하게 통제하니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방송을 듣는 분들이라도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제가 올해 어떤 말띠해인지 먼저 말씀드릴까 합니다.
올해는 갑오년, 청말띠해라고 합니다. 청마, 백마, 흑마, 적마, 황마 이렇게 다섯 가지 말이 바뀐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말띠해는 12년에 한번 오지만 청말띠해는 60년에 한번 오는 해라는 뜻입니다. 보통 말띠해에는 남쪽에서 출산률도 떨어진다고 하네요. 말띠 여자가 팔자가 세다 이런 소리는 저도 북에서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저도 한국에 와서 말띠해를 처음 맞아봐서 처음 안 사실인데, 역사적으로 말띠 여자 팔자 세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우리 역사상에는 그런 기록이 없고, 일제가 강점했을 때 만든 근거 없는 속설이라고 하니 마음 놓고 애를 낳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푸른 말의 해는 에너지가 분출하는 해로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에 벌어진 갑오농민전쟁을 들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한국에 와서 역사를 다시 공부하느라 혼이 났습니다. 북한은 고작 중학교 2학년 13살 때 딱 1년만 배워주는 역사 시간에 농민봉기 중심으로 가르치다보니 왕조에 대해선 전혀 모릅니다. 세조가 누군지, 정조가 누군지 북한에서 아는 사람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왕조의 역사를 쭉 꿰고 있습니다. 역사 드라마도 엄청 많고요. 북에선 왕조는 봉건지배계급의 역사라면서 거의 가르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왕조처럼 세습돼 권력을 이어받으면서 왜 역사 속 왕조를 그리 싫어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북에선 남쪽에서 우리민족의 가장 위대한 위인을 꼽으면 항상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가르쳐주면서도 꼭 뒤에다 "이순신 장군의 역사적 제한성. 첫째 탁월한 수령을 만나지 못한 탓에 그가 목숨 바쳐 지킨 것은 결국 봉건 왕조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런 식으로 가르칩니다. 제가 13살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 그런 것을 배우며 화가 났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아니 그럼 16세기 이순신 장군이 김일성을 수령으로 모시고 싸워야 했단 말인가. 이건 너무 말이 안 되지 않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농민봉기는 지배계급에 저항한 인민의 역사라면서 정말 비중 있게 가르칩니다. 정작 인민봉기가 일어날까봐 가장 벌벌 떨면서 참 모순적인 교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든 그런 교육 탓에 북한 사람들은 갑오농민전쟁을 많이 배웁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갑오농민전쟁은 조선왕조의 망국이 시작되는 해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걸 계기로 허약해진 이 씨 조선은 500년의 역사를 마감하게 됐죠. 김 씨 조선도 올해 청말띠 해에 70년의 역사가 마감됐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북한에서도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것이 정말 간절한 바람이지만, 현실에선 그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그래도 뭔가 큰 변화는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북에선 잘 가르치지 않지만 120년 전의 갑오년에는 갑오농민전쟁 말고도 아주 중대한 사건 두 개가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갑신개혁이고, 하나는 청일전쟁입니다. 갑신개혁은 노비제를 철폐하고, 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던 반상제를 없앤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봉건 왕조에서 양반 상놈을 없애면 이건 봉건 사회가 아닌거죠. 북한에서도 올해 출신성분 따지면서 백두혈통이니 낙동강 혈통이니 하는 성분제를 철폐하면 어떨까요. 갑오농민전쟁에 60년 더 앞선 1834년에는 영국에서 노예해방이 선언됐습니다. 1894년의 청일전쟁은 동북아시아의 구도를 바꾼 사건입니다. 이 역시도 올해 열강들이 달라붙어서 북한을 바꾸었으면 하는 희망을 걸게 만듭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론 여러분들은 지금 새해의 첫 순간을 김정은 신년사 학습에 매달리고 있죠. 작년에도 한달이나 학습시켰다고 하는데, 아무 쓸 데 없는 짓을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간부들이 김정은에게 아첨하느라고 열심히 학습시키나 본데, 신년사대로 된 해가 언제였습니까. 한번도 없잖습니까. 올해도 뭘뭘 하겠다고 하지만 그게 희망일 뿐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누구보다 잘 아실 겁니다. 간부들도 신년사고 뭐고 올해는 내 목이 달아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을 겁니다. 한국에선 최룡해가 장성택의 뒤를 이어 목이 날아날 사람으로 많이 꼽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북에서 제일 위태로운 사람은 박봉주 총리라고 봅니다. 장성택이 경제에 막대한 해독을 끼쳐서 숙청한다고 했는데, 정작 경제가 살아나지 않아보십시오. 그럼 다음번 희생양은 박봉주가 아닐까요. 박봉주가 나쁜 놈이어서 경제가 살아나지 않았지 김정은 원수님 잘못은 없다 이럴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올해 제일 말같이 뛰어야 할 사람은 북에서 박봉주 총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목숨이 위태로우면 남쪽까지 말처럼 뛰어와도 좋습니다.
역사적으로 청말띠 해에는 변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1774년 갑오년에 미국 독립혁명의 도화선인 제1차 대륙회의가 열렸고 1234년 갑오년에는 금나라를 멸망시킨 몽골 제국 기마대가 고려를 침입했습니다. 올해는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변혁이 필요한 북한에서 역사에 기록될만한 사변이 터졌으면 하는 소원을 한번 가져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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