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해 10월에 발행된 북한 격월간 교육잡지 ‘인민교육’을 보니 놀라운 내용이 보이더군요. 소학교 컴퓨터 과목을 네트워크 활용에 초점을 맞춘 정보기술 과목으로 확대 개편하고 교수 내용과 형식도 새롭게 일신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소학교에 컴퓨터 과목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새롭게 바뀌는 컴퓨터 과목 부분은 교재에 정보기술 기초지식을 포함하고, 교수 구조를 새로 구성하며 놀이 수업 비중 확대를 하겠다 이런 뜻이죠.
제가 놀란 점은 사실 남쪽이 세계에서 정보기술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제가 알기엔 여기 초등학교엔 컴퓨터 정규 과목이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배워준다니, 표면적으로 보면 세계적인 정보기술 선진국보다 낫지 않습니까.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죠. 세계에서 인터넷이 들어가지 않는 유일한 국가가 바로 북한입니다.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몇 개 회선이 들어가긴 하는데 김일성대나 김책공대, 과기대 등 일부 교육기관과 연구소 등에서 아주 한정된 사람에게 한해서 승인 받은 자료만 검색하게 합니다. 검색한 기록이 남기 때문에 다른 자료를 검색할 수도 없지요.
북에서 인터넷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김정은이나 대남사업부서의 허락된 몇 명사람 정도에 불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인터넷 세상에서 제일 고립된 국가가 정보기술 교육은 최고로 한다는 이 모순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런데 사실 저도 이런 모순을 직접 겪은 사람입니다. 저도 옛날 학교 때 컴퓨터 프로그램 수업을 받았습니다. 당시 컴퓨터란 것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도 몰랐는데 졸업하기 전에 학교에서 IBM 컴퓨터 2대인가 들여왔더군요. 저는 다행히 구경이라도 했지만 아마 동시대를 살았던 학생들 중에 컴퓨터 구경한 학생은 아주 일부분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두 대는 학교의 보물이니 다치지도 못하게 했죠. 하지만 컴퓨터 연습은 한다고 하니 할 수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마분지에 자판을 그려 가져오라고 하더니 그걸 놓고 연습을 했습니다. 뭐 지금은 북한 학생들도 컴퓨터 어떻게 생겼는지는 다 알겠죠. 그때 학교에서 베이직 포트란 파스칼, 맥 이렇게 4개의 컴퓨터 언어를 가르치고, 그걸 기초로 프로그램 짜라고 하더군요. 사실 짜봐야 이게 맞는지 틀린지 알 수가 없었죠.
대학에 가니 거긴 그래도 컴퓨터가 많아서 프로그램을 짜서 넣어보긴 하던데, 좀 부끄럽지만 제가 짠 프로그램은 자꾸 오류가 나더군요. 그래서 화가 났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이야기를 왜하냐 하면 한국에 와서 보니 그 당시 한국도 북한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오히려 그때를 돌아보면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에게 프로그램 짜는 법을 배워준 북한 컴퓨터 교육이 남한 교육보다 나았다는 점이죠. 제가 북에서 중학교 때 파스칼, 맥 이런 걸로 프로그램 짜는 것을 배웠다면 여기 사람들은 깜짝 놀랄 겁니다.
그런데 그러면 뭐합니까. 쓸 데가 없는데. 현실에서 쓸 수가 없는 컴퓨터 교육은 전혀 무용지물이고 배우고 나면 곧바로 잊어먹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저는 컴퓨터를 갖고 놀 수 있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 컴퓨터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프린터가 있어 출력이 되나, 자료를 검색할 수 있나. 결국 유일하게 하는 일은 아주 초보적인 게임, 비행기로 좌우로 왔다갔다 하면서 몰려드는 외계 행성 비슷한 것을 쏘아 떨구는 게임 같은 것만 했죠.
그런데 1990년대 한국의 컴퓨터 환경은 거의 혁명에 가까운 변혁을 이루었습니다. 신문사에서 타자 쳐서 기사를 송고하는 것도 아마 그때쯤 도입됐을 겁니다. 지금은 북한과 비교가 불가능하죠. 세계적으로 정보기술 강국 하면 한국을 알아주니까요. 이런 한국에서 이제는 젊은 세대에게 포트란, 베이직이 뭐냐 하면 알 사람이 있을까 싶긴 합니다. 그렇긴 해도 초등학교에서 컴퓨터 배워주지 않는데 한국은 어떻게 정보기술 강국이 됐을까요. 이런 것을 캐보면 역시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쪽은 애기 때부터 스마트폰을 접하는 문화입니다. 요즘 애들은 말보다 스마트폰 사용법을 먼저 배운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너댓살만 되면 집에서 아이들이 아빠가 돌아오길 기다립니다. 아빠가 그리워서가 아니고 게임을 할 수 있는 아빠의 스마트폰이 오길 기다리는 것이죠.
초등학교 7~8살만 되면 또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갖게 됩니다. 북한 소학교 5학년쯤 나이면 컴퓨터 귀신이 됩니다. 원하는 게임을 척척 내려 받아서 마이크 달린 레시버를 끼고 서울과 부산에 사는 아이들이 인터넷상에서 대화를 하며 게임을 함께 합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앞으로 한국을 또 어떻게 변화시킬지 궁금합니다.
물론 공부를 하지 않고 인터넷 중독에 빠지는 아이들이 많고, 얼굴 안보며 대화하다보니 서로 욕질을 해대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만 어떻게 뾰족한 해결책은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초등학교 때부터 기초를 확실히 닦아주니 나중에 커서 전문가가 되면 기본기는 탄탄해지겠죠. 하지만 문제는 써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북한은 전 세계에서 해킹이라는, 남의 컴퓨터 들어가 자료 훔쳐오는 국제적 도둑짓을 많이 하는 범죄국가로 자꾸 지목됩니다. 기술을 잘 배워도 써먹을 데가 없고, 그러니 도둑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엔 김정은을 암살하는 소재의 영화를 제작한 미국의 소니 영화제작사를 턴 배후로 지목됐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이건 테러행위다”고 못 박는 바람에 북한이 제재를 받게 생겼습니다. 좋은 기술 배웠으면 좋은 일에 써먹어야지요.
저는 북한이 컴퓨터를 일찍 배워주는 것도 좋지만, 그 배운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나라로 하루빨리 변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