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청구하는 탈북자 사망 보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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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달에 저기 경상남도 쪽에 있는 울산 법원에서 사망한 탈북자를 둘러싼 흥미로운 재판 판결 하나가 나왔습니다. 제가 사연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함경북도에서 온 탈북자 A 씨는 한국에 와서 뭘 할까 고민하 다가 바다에서 잠수부로 일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북한에서 잠수나 복장처럼 바다일 했던 사람들이 많으니 북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돈을 벌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이 아무리 장비가 북한보다 훨씬 좋다고 해도 바다일은 여전히 위험한 작업입니다. 2011년부터 잠수부로 일하던 A 씨는 2년 뒤인 2013년 3월에 잠수 중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나이 36살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소송이 시작됩니다. 북한에 남겨두고 온 A 씨의 부모와 아내가 남조선의 선장을 상대로 “선장이 잘못해서 사람을 죽게 했으니 2억9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울산 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냅니다. 2억9000만 원은 현재 환율로 26만 달러가 넘습니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예, 상식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여기에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A 씨의 형도 탈북해서 여기 한국에 온 것입니다. 형이 북한에 사는 동생의 가족에게 사망 사실을 알려주고, 북에서 떼 온 서류 등을 재판장에 내서 대신 소송을 했습니다. 그리고 재판 결과 동생을 대신해 소송을 냈던 형이 이겼습니다. 재판부는 “선장은 사고 가능성을 미연에 막아야 할 책임이 있었고, 사고가 났을 때 즉시 물 밖으로 A 씨를 끌어내야 했지만 그걸 못했기 때문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다만 A 씨도 직접 안전 조치를 확인하지 않은 잘못이 있기 때문에 사고에 대한 책임을 선장에게 60% 묻고, A 씨의 잘못이 40% 있다고 결론 냈습니다. 그래서 어찌어찌 해서 결과적으로 사망한 A 씨에게 지급될 손해배상금은 1억1000만 원, 즉 10만 달러 정도가 됐습니다.

자, 이제 또 문제가 있습니다. 이 돈을 형은 못 가집니다. 한국의 형법 체계상 사망보험금은 부모나 아내, 자식에게 먼저 돌아가지 형제가 가지는 법은 없거든요. 그러니 북에 사는 부모와 아내에게 보내야 합니다. 그럼 북에 사는 A 씨의 부모와 아내가 이 돈을 받으려면 어떻게 할까요. 중국을 통해 브로커가 전달하는 방법이 있겠죠.

하지만 이걸 법원이 허락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그렇게 보내면 유족에게 전달됐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막말로 형이 돈을 보내줬다고 해서 가짜 송금 내역서를 내밀어도 북에 가서 확인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형보고 가지라고 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재판부가 이것조차 판결합니다. 유족이 한국에 오거나 또는 통일이 돼서 북한에 직접 전달할 때까지 형이 보관하고 있으라고요. 형이 그 돈을 꺼내 쓰지는 못하게 해마다 손해배상금을 잘 관리하는지 법원에 보고해야 합니다. 형 마음대로 이 돈을 꺼내 쓰면 횡령범죄로 처벌받게 됩니다. 재미있는 판결이죠.

지금 이 배상금을 받으려면 북한에서 A 씨의 부모나 아내가 탈북해 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 돈이 북에선 엄청 큰 돈이지만 남쪽에서 그렇게 대단한 돈은 아닙니다. 여기 와서 몇 년 일하면 이만한 돈을 벌 수 있는데, 솔직히 서울에서 10만 달러면 작은 집하나 빌려 살기도 버겁습니다. 그러니 그 돈 받겠다고 목숨 걸고 한국까지 오기도 애매한 일이죠.

저도 남쪽에 와서 혼자 살다보니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죽으면 제 재산은 누가 가질까. 가령 사고가 나서 죽으면 사망 보험금도 나오는데, 이것도 몇 십만 달러는 될 겁니다. 그런데 가질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걸 생각하면 정말 억울한 일이죠. 죽은 다음에 누가 받던 뭐가 상관이냐 이런 생각으로 위안을 삼고는 있지만 억울한 것은 억울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올해 남쪽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어린 학생들을 포함해 300여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학생들 유가족은 제가 알기엔 100만 달러 넘게 보상금을 받게 될 걸로 압니다. 언젠가 방송을 했지만 이렇게 북에 사나 남에 사나 목숨 값도 하늘땅 차이입니다. 저도 사고로 죽으면 큰 보험금이 나오겠는데, 그럴 경우를 대비해 유서라도 하나 써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합니다. 그렇지만 유서를 집행할 사람도 있어야겠고, 또 공증이랑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귀찮고 게을러 아직까지 쓰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 사이엔 이외에도 흥미로운 재판이 여러번 진행됐습니다. 2011년에 평양에서 살던 손녀가 남편과 함께 탈북해 한국에 와서 월남한 할아버지 재산을 상속받게 해달라 소송을 했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1000만 달러 넘게 돈을 벌어놓고 돌아가셨다는 것을 평양에서 어떻게 알고 그 돈을 받겠다고 탈북한 것입니다. 일단 재판에서 유전자 검사랑 해서 친손녀가 맞다는 것까지 인정해준 소식은 들었는데 그 이후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친손녀 맞다고 했으니 상속도 얼마가 되던 될 겁니다. 2009년에도 평양에 사는 주민이 서울에 사는 누나를 통해 계모 자식이 상속받은 1000만 달러 넘는 재산을 나눠달라고 소송을 내서 이겼습니다. 이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서울의 누나는 몰래 평양에 사람을 보내 평양에 사는 형제의 머리카락, 손톱 등도 가지고 와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제 생각엔 북한 사람이 유산을 가질 수 있다는 판결도 나왔으니 앞으로 이와 비슷한 소송이 계속 이어질 겁니다. 남과 북에 서로 헤어져 사는 실향민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론 남쪽 사람이 북에 사는 사람의 재산을 달라고 소송하는 일은 없겠죠. 유산 상속과 6.25전쟁 전 갖고 있던 토지의 소유권 인정 등은 앞으로 통일 과정에 우리가 참 많이 접하고 극복해야 할 분쟁의 씨앗일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