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게 비낀 연산군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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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이란 연극 세트장을 보면 우울해집니다. 며칠 전에도 김정은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자로 높이 추대하는 제111호 백두산 선거구 대회가 열렸다고 하더군요. 다 같은 대의원끼리 높게 추대하고, 낮게 추대하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까짓 어차피 한 명 이름 걸어놓으면 백성은 가서 찬성표를 억지로 던지고 와야 하고, 투표를 하지 않으면 정치범이 되는 나라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선거라는 것을 왜 할까요.

그건 자신이 정당성을 얻은 것처럼 연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솔직히 김정은이 대의원이라는 것도 웃기죠. 지가 왕인데, 왕이 무슨 의원까지 하는 흉내를 내야 합니까. 백두산 선거구란 말을 처음 듣는데 백두혈통이란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백두산 선거구를 급히 만들어냈나 봅니다. 아니 북한이란 왕조 사회에서 선거가 왜 필요합니까. 선거의 핵심은 찬성과 반대인데, 반대도 못하는 선거는 선거도 아니고, 그건 하나의 연극이라 봐야 하겠죠.

돌이켜보면 북한이란 사회 자체가 그냥 연극의 세트장이었습니다. 말과 현실이 완전히 상극인 굿판을 벌여놓고 소수만 재미를 보는 사회인 것이죠. 애초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간다고 하고 현실은 봉건왕조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폭군 왕조가 된 것만 보십시오.

제가 한국에 와서야 제대로 된 역사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현재 북한은 조선의 10대 왕 연산군 시절과 너무 흡사하더군요. 조선 왕조에도 성군이 있고, 폭군이 있는데, 연산군은 대표적 폭군으로 기록돼 결국 신하들에 의해 쫓겨난 왕이죠. 여러분들도 연산군이란 이름 정도는 들었을 겁니다.

연산군도 초기 몇 년은 정치를 잘했다고 하는데 어느 날 자기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왕비 자리에서 쫓겨나 사약을 먹고 죽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 복수를 한다고 눈이 뒤집힌 것이죠. 어머니 모함한 자들을 다 죽인다고 하면서 아버지 성종의 후궁들부터 때려죽이기 시작하고 재상들도 차례로 죽였습니다. 어머니 윤씨는 선대 왕 성종의 본처는 아니고 후처였는데, 후처니까 아무래도 본처만 못하고 수모도 받았겠지요. 폐비 윤 씨는 질투도 많고, 악독했다고 합니다. 왕비에서 쫓겨나 사약까지 먹을 정도면 알만하겠죠.

세자 때 어머니를 잃은 연산군의 분노는 결국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는 것으로 이어졌고, 나중엔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고 신하들의 처를 뺏어 살고, 연회를 계속 열었습니다. 돈이 모자라니 신하들의 돈까지 뺏어 냈는데, 결국 그러니까 신하들이 모여서 작당해서 연산군을 끌어내 유배 보냈고, 결국 연산군은 유배지에서 죽습니다. 김정은도 세자 시절에 결국 셋째 후궁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니를 잃었죠.

이번에 장성택 숙청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성택이나 김경희가 예술단 무용수에 불과했던, 더구나 재포 출신이기까지 한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를 무시한 것은 아닐까. 더구나 김정남이란 장자가 있으니 셋째인 김정은이 설마 차기 왕이 될까 싶어서 홀대를 했을 수도 있겠죠. 어렸을 때 고영희가 아들들에게 너희가 크면 어미의 이 수모를 꼭 갚으라고 거듭 세뇌시켰을지도 모르죠. 어려서 엄마를 불행하게 잃은 자식들은 공통적으로 한이 맺혀 있습니다. 김정일도 어려서 엄마를 잃고, 성격이 냉혹해졌고, 이후에 김성애 일족을 아예 매장시켜 버리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그래서 장성택이 저렇게 비참하게 죽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여기서도 그렇고, 북한 사람들도 어떻게 자기 고모부를 저렇게 잔인하게 처형하고 고모도 매장할 수 있을까 싶겠지만, 친척이 고마운 친척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크면 꼭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던 친척이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는 것이죠. 더구나 장성택은 김정일이 후계자로 김정은을 생각하자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도 모두 쌓여 분노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연산군이 재상들을 마구 죽이고 폭정을 휘두르니 아래 신하들이 나는 언제 목이 날아날까 두려워 찍소리 못하고 숨을 죽였습니다. 지금 북한 간부들이 그 꼴입니다. 장성택을 처형하는 것을 보고 고모부도 저렇게 잔인하게 죽였는데 나는 오죽할까 싶어서 아예 숨소리도 못 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왕이 말 한마디면 누구도 토를 못 달고 ‘지당한 말씀입니다’를 연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왕을 견제할 사람이 누구도 없어지니 왕이 지가 하고 싶은 대로 마구 합니다. 연산군도 신하들이 벌벌 떠니 지나가다 아무개 재상 아내가 이쁘다 이러면 그 아내 데려와라 이러고 자기가 데리고 자고 이랬습니다. 완전히 패륜막장인거죠. 그리고 재산도 왕에게 바치게 하고 말이죠.

지금 김정은이 누구 아내를 뺏었다는 소리는 아직 못 들었습니다만, 아래 간부들을 쪼아 충성자금이란 명목으로 돈을 갖다 바치게 하는 것은 예전부터 계속 그랬습니다. 연산군은 맨날 연회, 사냥 이런 것만 열고 민생은 상관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설날에 보니 각 도 소재지들에서 축포를 쐈다고 하는데, 김정은도 백성이 왜 배고픈지 이런 것을 따져서 정치를 해야지, 맨 날 하는 일이 귀한 외화를 스키장, 물놀이장 건설에 탕진하고, 축포나 쏘면서 인민생활과 동떨어진 짓을 하고 있어 정말 우려스럽습니다.

여러분들은 바깥세상도 잘 모르고, 역사도 모르고 이렇게 청맹과니가 돼서 사니 잘 모르시겠지만, 밖에서 제가 보기엔 북한이 조선왕조에서도 가장 암울했던 연산군 시대와 거의 비슷합니다. 그래도 내가 태어난 땅인데 참 개탄스럽습니다. 김정은이 어차피 자기 무소불위의 왕이 된 이상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역사 공부도 좀 해서, 연산군이나 광해군의 폭군의 말로도 보고, 역사에서 성군으로 기록하는 세종대왕이나 정조대왕도 좀 연구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