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음력설을 잘 보내시고 계십니까. 작년에 세계를 달군 가장 큰 북한 관련 화두는 유엔에서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고위층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는 내용의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된 것이었습니다. 북한이 하도 반발을 해서 여러분들도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 커지고 있음을 어렴풋이라도 느꼈을 것입니다.
올 설날 저는 여러분들에게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지만, 북한 사람들만 모르는 오스카 쉰들러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올해는 광복 70년 주년이기도 하지만 나치 독일 패망 70년 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오스카 쉰들러는 그 나치 독일의 사업가였습니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득세하자 그는 나치 당원이 됩니다. 당시의 쉰들러는 술과 여자를 좋아했고, 돈이라면 오금을 못 쓰는 탐욕스러운 사업가였습니다.
쉰들러는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뽈스카를 점령하자 이게 좋은 사업기회라 판단하고 그곳에 갑니다. 쉰들러는 게스타포 지휘관들에게 뇌물을 주고 독일군이 압수한 유태인 소유의 공장을 손에 넣은 뒤 수용소 수감자들을 강제로 일을 시켜 큰 돈을 벌기로 작정합니다. 여기까지는 영락없이 탐욕이 낳은 한 자본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경영하는 공장은 유태인 강제수용소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용소에 집단 수용된 유태인들의 처참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됩니다. 독일은 유태인을 멸살하기 위해 밥도 주지 않고 굶겨 죽였고, 심심하면 사람들을 쏴 죽였습니다. 유태인들이 개돼지보다 못한 신세에 몰려 도살되는 것을 보면서 쉰들러의 마음 속 깊이 잠들어 있던 본연의 선량한 인간애가 꿈틀거리며 깨어났습니다.
“저들도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저렇게 죽어서는 되겠냐. 나라도 저들을 도와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쉰들러는 자기 공장에 데려온 유태인 노동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주었고 보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쉰들러의 활동은 점점 더 대담해졌고 마침내 돈보다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됐습니다.
나치는 2차 대전에서 패망할 위기에 처하자 유럽 각지에 수감돼 있던 유태인들을 여러분들도 잘 아는 악명 높은 오스벵찜 수용소에 끌고 가 대학살을 벌입니다. 가스로 죽여선 소각로에 태워 흔적을 없애버렸는데 오스벵찜 수용소에서만 유태인이 무려 200만 명이나 학살됐습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쉰들러는 자기가 모은 전 재산을 털어 뇌물로 써서 노동자로 쓰겠다며 유태인들을 빼냅니다. 노인은 나이를 낮추고, 아이는 성인인 것처럼 서류를 위조하고, 변호사, 의사, 예술가들은 금속노동자나 기술자라 속이면서 빼냅니다.
실무자의 실수로 300여명의 유태인 여성이 오스벵찜 수용소에 끌려가 죽게 됐을 때는 곧바로 달려가 저 사람들은 내 노동자라 주장하면서 가스실까지 들어갔던 그들을 꺼내옵니다. 오스벵찜 수용소에 끌려간 유태인이 다시 살아나온 것은 이때뿐이라고 합니다. 그의 공장에선 군복과 식기와 같은 군수품을 생산했지만 히틀러 패망하기 전에 7개월 동안 합격품을 하나도 생산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유태인을 구하고 전쟁에 도움을 주지 않으려 활동하다 보니 1945년 히틀러 패망 직전 쉰들러는 거지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의 구출 활동으로 무려 1100명의 유태인이 수용소 가스실에 끌려가 목숨을 잃지 않게 됐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열성적 나치 당원으로 고발돼 사형까지 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그가 살려준 유태인들의 보증으로 살아났습니다. 1962년에 이스라엘 정부는 쉰들러를 예루살렘으로 초청해 의인으로 높이 환대했습니다. 쉰들러는 1974년 숨을 거두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아는 의인으로 칭송받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토대로 1993년 ‘쉰들러 리스트’라는 유명한 영화가 제작됐는데, 영화 속 쉰들러는 소련군이 들어와 유태인들을 구하기 전에 통곡합니다. “내가 차를 왜 안 팔았을까. 차를 팔면 열명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 넥타이핀을 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이걸 팔면 두 명을 구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쉰들러는 유태인 한 명이라도 더 구하지 못한 것을 두고 괴로워합니다.
이런 그에게 유태인들은 금니를 뽑아 만든 반지를 선물합니다. 반지엔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사람은 온 세상을 구한 것이다”라는 글이 적여 있습니다. 쉰들러는 한 사람을 구한 것이 아니라 1100명을 구했고, 지금은 그 1100명의 후손이 6000명이나 됩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모두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사람들입니다.
제가 쉰들러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북에서도 쉰들러같은 사람이 나오길 바라서입니다. 나는 노동당원이고, 김씨 일가에 충성을 다해 죄도 많은데 이제 와서 무슨 선행이냐 이런 생각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쉰들러도 초기엔 흔해 빠진 탐욕스러운 나치 당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악이 인간의 목숨을 앗아갈 때 그 악에 대항해 사람의 생명을 구한 것은 귀족도 지식인도 종교인도 아닌 부패한 기회주의자 오스카 쉰들러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전 세계의 존경을 받는 의인이 됐습니다.
지금 북한에는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와 별반 다르지 않는 악명 높은 정치범관리소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말실수와 같은 사소한 이유로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어갑니다.
수용소 소장도 좋고, 보위부 간부도 좋습니다. 단 한명의 생명을 구하기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여러분의 선행으로 생명을 건진 사람들은 꼭 보답을 할 것입니다. 설날 아침 한번쯤 미래를 생각해보십시오. 북한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날 나는 악질 범죄자로 인민의 심판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인민이 보증하는 의인이 될 것인가. 그런 생각을 꼭 한번 해보시길 당부 드리며, 새해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