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두 주 동안 제가 엄청 바빴네요. 왜 바빴는지 사연을 여러분들께 들려주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어 오늘 그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이달 8일에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던 탈북자 12명이 체포됐는데 이들이 체포된 직후 제가 아는 탈북 지원가 한분이 제게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원래 탈북자가 체포되면 우선 돈으로 조용히 빼내는 것이 이 바닥에선 불문율입니다. 공안과 접촉하고 있냐고 물으니 "예, 하는데 1인당 10만 위안 부릅니다. 그래서 12명 다 모아서 50만 위안에 뽑으려 지금 협상 중입니다"라고 하네요. 제가 명단을 보내주세요 하니 다음날 12명 명단이 제게 메일로 왔습니다.
제가 고민했습니다. 이번엔 한꺼번에 너무 많이 체포돼서 빼기 힘들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언론에서 문제를 삼지 않으면 그냥 북송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음날 동아일보에 칼럼을 썼습니다. 탈북자들이 끌려가는 증산교화소의 참혹한 모습에 대한 칼럼을 썼죠. 이건 미리 기사를 터뜨릴 예비 준비를 한 것이죠. 하지만 언론에 공개되면 안 되니 그때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혹시 이 사실이 새나가 보도되면 안 되니까 계속 언론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아닐세라 이틀 후인 10일 어느 인터넷 언론에서 이 사실을 알고 기사를 올렸더라고요. 제가 전화했습니다. "지금 물밑 협상 중이고 이러이러한 사정이니 조금만 더 참아주시면 안 될까요" 하니 그들도 고맙게도 기사를 내려주었습니다.
주말에 중국에서 체포된 탈북자들이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해왔습니다. 좀 구해달라고 말입니다. 제가 외교부 중국 담당 과장에게 전화했더니 최선을 다하겠답니다. 그런데 토요일에 사건을 맡은 심양 담당영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열심히 소재를 캐려 다니는데 어디 잡혀 있는지도 모르네요. 그래서 제가 어디 있다 이렇게 알려주었습니다.
월요일이 되니 중국에서 전화가 온 겁니다. '이거 이제 돈 가지고 안 되겠습니다' 이럽니다. 여론을 불러일으킬 때가 다가온 겁니다. 월요일 오후 5시가 넘어가니 슬슬 여기저기서 탈북자 체포소식이 올라옵니다. 물론 탈북자들이 체포되는 일이 1년에도 하도 많으니 그때는 다른 언론에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더군요.
제가 생각했습니다. 이거 평상시처럼 그냥 잡혔다 이런 내용만 쓰면 또 보도 나가고 그만이겠고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편집국장을 만나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 후진타오 중국 주석에게 탈북자를 구해달라는 호소문 형식으로 편지를 써보려 하는데 1면 좀 내주세요. 지금까지 15년 넘게 탈북자 문제는 중국이 어떻게 해도 한국 정부가 꼼짝 못하고 있는데 이번에 한번 좀 문제 크게 불러일으켜 보겠습니다. 편지 형식이 돼야 사람들에게 호소가 통하지 않을까요. 한국에 신문 방송 통틀어 탈북기자가 저 하나뿐인데, 제가 걸고들지 않으면 누가 자기 일처럼 나서겠습니까" 이러니 국장이 고맙게도 1면 내주었습니다.
사실 동아일보 1면 그렇게 받기 쉬운 거 아닙니다. 거기다 일개 기자가 무엄하게 12억 중국의 주석에게 편지를 써서 1면에 싣는 그런 전례도 없습니다. 하지만 썼습니다. 12명 제발 풀어달라고, 저들이 나가면 죽는다고, 중국이 언제까지 북한에 협조하겠는가 하고... 이렇게 썼는데, 다음날 보니 한국 언론들이 잠잠합니다. 막 이게 여론을 불러일으켜야 되는데 다른 언론들이 침묵하면 힘이 빠지거든요. 그런데 사실 신문 입장에선 경쟁심리가 있기 때문에 다른 신문이 이끌고 나가는 이슈를 따라 받아쓰기 싫어합니다. 어쩝니까. 3일 연속으로 탈북자 문제 기사를 매일 쓰면서 이슈를 끌고 나가기 위해 애썼습니다.
아는 사람들에게 대사관 앞에 가서 시위하라고 전화를 하고, 인터뷰 나가기 망설이는 피해자 가족을 설득하고, 이렇게 씨름질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느 탈북학교 교감선생님에게 이런 일엔 "탈북학생들이 나서야 합니다"고 했더니 "방학인데..."하고 망설이던 분이 21일에 글쎄 탈북 학생들은 물론이고 연예인들도 몇 십 명 데리고 나왔더군요. 연예인들이 나서니 모든 신문 1면에 나가는 거죠.
이번 주부터 주요 신문들이 탈북자 문제를 1면으로 다루면서 여론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고 세계 언론도 이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여론에 힘입어 한국 정부가 처음으로 유엔에 탈북자 문제를 공식 제기했습니다. 어제는 국회에서 탈북자 송환방지 촉구 결의안이 채택됐고, 또 그저께는 중국을 헤매는 탈북자들에게 한국인임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발급한다는 외교부 조치도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탈북자들에 대해서 힘이 없다고 가만 방치해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여론들이 모아지니 이런 조치들이 나오는 겁니다. 중국은 이런 문제에 "국제법적으로 인도주의적으로 해결한다"고 거듭 대답만 하고 있습니다.
사실 국제법적으로 보면 난민조약, 고문방지조약 이런 것들이 있는데, 중국도 가입돼 있습니다. 고문받고 박해받는 곳으로 추방하면 안 된다는 조약인데, 북에 끌려가면 교화소 가는 것 알면서도 중국은 탈북자들을 보내는거죠. 왜 그러냐. 이거 탈북자 안 잡아 보내면 어떻게 됩니까. 아마 국경을 지키는 경비대부터 먼저 탈북할 겁니다. 그럼 북조선이 몇 달 내로 아마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중국은 북조선 지켜주려고 온갖 세계적인 욕과 비난 다 감수하고 기를 쓰고 탈북자를 잡아 보내는 거죠.
사실 탈북자 문제 공개적으로 국제문제화 시켰다고 탈북자 안 잡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별로 달라지지 않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의 북송길에 오르는 우리 형제들을 언제까지 침묵하고 가만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그건 양심이 허락지 않죠. 중국이 자존심도 있고 해서 이번에 체포한 수십 명의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내기 쉽진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다 북송시키면 한국 사람들에게 침을 뱉는 셈이니 결정이 쉽지 않겠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좋은 소식 있기를 여러분들도 기원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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