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놀이에 혼자 신바람 난 김정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630대연합부대의 비행훈련과 항공육전병강하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3일 보도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630대연합부대의 비행훈련과 항공육전병강하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3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0:00 / 0:00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잘 아니까 안부를 묻지는 못하겠습니다. 하루 종일 전쟁놀음에 들볶이느라 너무 피곤하실 텐데도 지금 이 시간에 라지오를 켠 분들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여러분은 죽을 맛이겠죠. 반대로 지금 북에서 제일 사기가 나서 신바람 나게 사는 사람은 김정은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10대엔 공개하기 부끄러운 자식으로 스위스에서 죽은 듯 살아야 했습니다. 북에서 가다 보니 현지 말을 잘 못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거기 현지 아이들한테 큰소리나 치면서 살았겠습니까. 그렇다고 북한 왕자라고 밝히지도 못하고 말이죠. 2000년대 초반 북에 돌아와서도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고 그냥 예술단 구경이나 다니면서 몰래 숨어 살다 보니 권력의 맛을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고 원수니 당 총비서니 하루아침에 온갖 감투 다 가지고, 자기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벌벌 떨고 하란 대로 다 하다 보니 얼마나 신바람이 나겠습니까.

처음엔 왕 노릇이 좀 서툴러 보였는데, 요즘 보니까 익숙해 보입니다. 요 며칠 새에 무도니 장재도니 서해 섬에 와서 머리 허연 장령들 앞에서 남쪽 백령도와 연평도를 가리키며 뭐라 뭐라 열심히 설명하는 사진을 보니 이 젊은이가 전쟁놀음에 푹 심취돼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전히 신바람이 났더군요. 아마 자신이 위대한 장군이라 착각해 즐기는 분위기였습니다. 한개 분대도 지휘해 본 경험이 없는데, 갑자기 120만 대군을 지휘하게 되면 저라도 막 흥분돼 기분이 날아갈 듯 하겠습니다. 어차피 이쪽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니 혼자서 막 전쟁 상황 만들어 내고 신이 나서 부대들에 이것저것 명령하면서 군사놀이를 하는 겁니다. 결국, 김정은의 군사놀이에 죽어나는 것은 인민들뿐입니다. 처음엔 그래도 해외에서 10년 넘게 물을 먹고 왔으니 좀 개혁도 해서 북한을 살만하게 변화시킬 줄 기대도 해봤는데 역시 콩 심은데 콩 난단 말이 맞습니다.

김정은에게 군사놀이를 시키고 뒤에서 흐뭇하게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정찰총국장 김영철과 같은 군부 강경파들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노동당 기능을 회복시킨다고 군부 외화벌이 기관들 다 회수하고 대드는 리영호 옷도 벗기고 이러면서 군부가 기가 좀 죽었는데, 그러니까 군부가 교활하게 이번엔 전쟁 위기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장거리로켓도 쏘고, 핵실험도 하니 국제사회에서 제재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고, 이걸 기회로 군 강경파가 전쟁위기를 한껏 고조시켜 자기들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는 겁니다.

인민들이야 져도 좋으니 전쟁이나 확 터져라 이러지만 군부가 바보입니까. 전쟁하면 지는 것을 아니까 전쟁은 하지 않으면서도 인민들만 들들 볶는 겁니다. 경험도 철도 없는 김정은은 그런 전쟁놀음을 즐기고 있고요. 백령도 마주 보이는 초소에 가서 “적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시오”하고 호기를 한껏 부리고 돌아오면 바로 그날 저녁에 텔레비에서 이 말을 중계하면서 강철의 영장의 담력이라고 추켜세워 주니 얼마나 살맛이 나겠습니까. 쯧쯧쯧... 답답해서 혀만 차게 됩니다.

북에서 그렇게 열심히 사람들 들볶으면서 전쟁 위기를 끌어올려도 여기 남쪽은 콧방귀도 안 뀝니다. 어차피 전쟁을 일으키면 김정은 정권이 끝나기 때문에 절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죠. 남과 북이 군사력에 있어서 상대가 되지 않는데 김정은이나 군부 강경파나 전쟁을 일으키면 자기 무덤을 자기 스스로 판다는 것 정도는 아무리 바보라도 잘 알거든요.

저도 사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기 서울 사람들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삶을 삽니다.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저기 개성 판문군에서 방사포를 쏘면 여기 서울까지 포탄이 날아오거든요. 그러니까 서울은 북한 포 사정거리 안에서 사는 셈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여기선 너무 태연하게 살고 있으니까 또 그것도 문제긴 합니다. 북에서 전쟁놀음할 때마다 피난지로 옮겨가는 행군을 하고, 방공호에 들어가는 연습을 했던 저로서는 놀라울 때가 많습니다.

여기 와서 놀랍던 것 중 하나는 만약에 북에서 포탄이 날아오면 내가 어디 가서 숨어야 하는지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도시에 방공호도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냥 알아서 빌딩 지하에 내려가면 되는 것 같습니다. 대피훈련이라고 1년에 한 번 하긴 하는데, 그냥 싸이렌이 울리고 차들이 도로에 10분 서 있다가 다시 가는 것이 고작입니다. 이러다 진짜 포탄이 날아오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하는 걱정이 살짝 들기도 하지만, 뭐 어차피 그 상황이면 북한이 망하고 통일되는 날이니 저는 총 들고 전쟁터에 나가 싸우면 될 듯합니다.

오히려 북한이야말로 전혀 쓸데없는 훈련들을 하면서 생고생이죠. 등화관제 훈련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 어차피 맨날 정전 속에서 살면서 등화관제 훈련을 왜 하는지 여러분들도 잘 모르시겠지요. 텔레비전에선 쩍하면 군인들이 격술 훈련하면서 발차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보면 웃깁니다. 지금이 임진왜란 시기입니까. 차라리 창칼 쓰고 활 쏘는 연습은 어떨까요. 요즘 전쟁에선 미군하고 격술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미군하고 붙으면 무인기가 소리 없이 날아다니면서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듯이 죽습니다. 그래서 미군이 무섭다는 겁니다. 하긴 요즘 전쟁하는 장면들 지도부 몇 명만 돌려보고 아래엔 절대 보여주지 않으니 전쟁 어떻게 하는지 여러분이 알 리가 만무하죠. 몰라야 용감해지지 알면 군인들이 겁에 질려 전쟁할 맘이 나겠습니까.

아무튼, 지금은 어린 김정은이 빨리 군사놀이에 싫증이 나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이젠 빨리 농사 준비나 해야 굶지 않죠.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