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살 수 없는 신뢰를 버리는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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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내일 모레면 태양절인데 이날만큼은 체육대회랑 하면서 온 겨울 전쟁 놀음에 시달렸던 기분을 전환하길 바랍니다. 그런데 정작 열심히 체육대회 때 뛰어다닐 20대 중반 미만 젊은 세대들은 김일성 시대의 기억은 없겠네요.

지난해부턴 11일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추대일, 13일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1부위원장 된 기념일, 이렇게 주는 것도 없는 명절들이 또 줄줄 생겨났습니다.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이란 우리 속담이 있는데, 북한에선 그 속담이 현실이네요. 남쪽은 요새 날씨가 추워서 따뜻한 봄의 화창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날씨도 이런데 북한은 남쪽을 더욱 짜증나게 만듭니다.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서 매일 뭔가 하나씩 일을 터뜨립니다. 오늘은 개성공단에서 철수하겠다 이러고 며칠 뒤엔 진짜 몽땅 철수시키고…. 이번 주는 동해에서 미사일 쏘니 안 쏘니 하면서 흘러갔네요.

북한 이슈를 가지고 하루 종일 TV에서 떠드니까 요샌 탈북자들이 매우 귀한 몸이 돼서 방송사들이 모시기에 바쁩니다. 뭐 전문성이 있든 없든 TV에 불러다가 “북한이 요새 왜 이럽니까.” “북한이 언제쯤 미사일 쏠 것 같습니까”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방송시간을 채웁니다. TV 틀면 여기도 북한 이야기, 저기도 북한 이야기 하루 종일 그 이야기뿐입니다.

저보고도 계속 TV 출연해달라는데 저는 북에서 미사일 언제 쏘는지가 왜 그리 중요한 일인지, 왜 쏠 때까지 매일 열심히 추정해야 되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니, 여기서 떠들면 안 쏩니까. 쏠 때가 되면 쏘겠죠. 그때 가서 쐈다 이렇게 보도하면 끝이고요. 어디까지 날아갈지 열심히 점칠 필요가 왜 있습니까. 쏜 다음에 보면 될 일가지고 말입니다.

서울에 쏘는 것도 아니고 바다에 쏜다는것인데, 언제 쏠까, 뭘 쏠까 이러면서 열심히 떠들고, 쏘면 또 왜 이걸 쐈을까, 의도는 무엇일까 이러면서 또 며칠 보내고…. 저도 언론에서 일하는 입장이긴 한데 요즘 한국 언론들은 얼른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이렇게 자꾸 떠들어주니까 북에서야 얼마나 신이 나겠습니까. 매일 아침 평양에서 한국 신문 보면서 “이 자들이 열심히 떠들어주는구나” 이러면서 쇼를 하는 보람을 만끽하겠죠. 아무리 재미나는 공연도 봐주는 관객이 없으면 신이 안 납니다. 반대로 별로 재미도 없는 놀이라도 관중이 와와 떠들어주면 신바람이 나는 법입니다. “어떻게 하면 막을까” 이런 머리 백날 굴려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냥 쏘겠으면 쏘고 말겠으면 말고 무시해버리는 게 차라리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까짓 미사일 없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한국만 해도 저기 제주도에서 쏴서 평양 중앙당 원하는 창문에 딱 명중시킬 수 있는 미사일이 있습니다. 북한이 명중률도 형편없는 허접한 미사일 몇 발을 쏜다고 난리 피울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떠들어주니까 오히려 더 쏘고 싶겠죠. 그냥 무시해버리면, 그 미사일 한발 만드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데, 그 비싸게 만든 미사일을 봐주지도 않는데 바다에 첨벙첨벙 쏴서 낭비하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여기만 이렇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제 보기엔 북한도 요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어려서 경험이 일천한 김정은을 미국과 맞서 승리한 강철의 담력과 배짱을 지닌 장군으로 포장하고 싶겠죠. 또 한반도 정세를 벼랑끝까지 몰고 가서 “자 봐라, 이렇게 불안정하니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치해야 한다” 이렇게 요구도 하고 싶겠죠. 평화협정이 돼야 불안한 김정은 체제가 안전에 대한 우려 없이 순항할 수 있겠으니 말입니다.

마침 또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느라고 북한은 계산도 안 될 정도로 많은 것들을 잃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개성공단 폐쇄하겠다고 노동자들 다 뽑은 겁니다. 개성공단에서 1년에 8900만 달러 정도 벌었습니다. 그런데 그 돈 잃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뭐 개성에서 노동자 1명이 한 달에 140달러씩 받는데, 그 사람들 중국에 외화벌이 내보내도 240달러는 받습니다.

정작 가장 큰 손해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다는 점입니다. 돈으로는 신뢰를 살 순 없지만, 대신 신뢰가 있으면 엄청난 돈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죠. 약속을 딱딱 지키면서 한 10년은 보내야 겨우 신뢰라는 것이 조금 생길까 말까하는데, 협약에 기초해 들어온 기업을 제 기분 내키는 대로 내쫒으니까 앞으로 어느 외국 기업이 북한을 믿고 투자하겠습니까.

북에서 경제를 회생시키는 유일한 길은 외국 투자를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다 망한 공장 기업소들을 절대 북한의 힘으로 다시 복구시킬 수 없다는 점을 잘 알 것입니다. 이번에 개성공단 소동으로 북한은 수십 억 달러짜리 신뢰를 잃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이 그걸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신뢰가 무서운 줄도 알겠는데, 지금 김정은을 따라다니면서 바람 불어넣는 북한 차수니 대장이니 하는 늙은이들은 나이가 70,80이라도 세상을 보는 눈은 여기 대학생들보다 못합니다. 외부를 꽁꽁 막아놓은 북한에서 살면 우물 안 개구리밖에 못되는데, 군인들은 더구나 군대라는 우물 안의 또 우물 안에서 17살 때부터 평생 살았으니까 무식하고 아는 게 없고, 그냥 자존심 하나만 살아 있는 거죠. 그런 무식함과 김정은의 젊은 혈기가 결합해버리니까 북한이 지금 산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뭐 산으로 가면 저는 오히려 박수를 보내야겠죠. 어차피 무너질 집은 빨리 무너져서 새로 짓는 것이 최상의 길이니 말입니다. 김정은과 군부가 열심히 북한을 산으로 끌고 올라가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