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두 주간 제가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오늘은 내처 역사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기 남쪽에는 수많은 방송사들이 있고, 각 방송사마다 드라마를 경쟁적으로 만들어 방영하기 때문에 저녁에 볼 수 있는 드라마가 10개는 넘습니다. 예전에 제가 북에 있을 때 재미있는 프로가 나오면 사람들이 티비 앞에 몰려가 거리가 조용했지요. 소년장수가 방영될 때, 중국 드라마 “여인은 달이 아니다”가 방영될 때도 아마 북한 사람의 90%는 티비 앞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 남쪽도 불과 10년 전까진 그랬습니다. 9시 40분쯤에 인기 드라마가 방영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티비 앞에 몰려가 거리가 조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제는 스마트폰이라는 손전화로 티비를 볼 수 있는데다, 제일 중요하게는 티비와 인터넷이 결합되다 보니 내가 못 본 드라마도 나중에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꼭 시간 맞추어 드라마를 볼 이유가 없는 것이죠.
각 방송사에서 경쟁적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이유는 시청률 때문입니다. 철저히 자본주의적 이유 때문인데 재미있게 만들어 시청률 10%를 올린 드라마와 5%를 올린 드라마에 붙는 광고가 가격이 다릅니다. 방송사 입장에선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들어야 비싼 광고를 유치해 돈을 벌기 때문에 시청률이 떨어지면 큰 손해를 보는 것이죠.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남쪽에서 가장 많이 만드는 드라마 중 하나가 역사물 드라마입니다. 이게 북한과 많이 다른 점인데 저도 처음 와서 정말 놀랐습니다. 역사 드라마가 인기인 이유는 시청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웬만하면 보는 사람들이 많으니 시청률이 보장되니까 망할 확률이 적은 것이죠.
한 10년 전에 남쪽의 KBS가 북한과 합작해 사육신이란 24부작 드라마를 만들었는데, 고승룡이 주인공이었고, 그 외에도 인민배우 공훈배우 할 것 없이 북한 유명 배우들이 총출동했습니다. 그 드라마 찍으면서 촬영장비와 옷은 남쪽에서 들여갔고 역사물 촬영기법도 남쪽의 연출자들이 배워주었습니다.
그때 들어간 장비와 옛날 복장들을 활용해서 이후에 북한에서 임진왜란 관련 드라마인 계월향을 만든 것으로 아는데 확실히 사육신을 한번 찍고 나니 북한의 촬영기법이 상당히 높아져서 계월향은 북한 역사 드라마치고 상당히 발전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그 드라마를 남쪽에서 방영하면 시청률이 안 나옵니다. 워낙 역사 드라마가 많다 보니 여기 사람들의 눈이 진짜로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사육신도 남쪽의 가장 큰 방송사인 KBS에서 방영했음에도 시청률이 2%도 안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애국가 시청률보다 못하냐”는 말이 나왔습니다. KBS는 국가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새벽에 방송이 끝나면 북한처럼 애국가가 울리며 마감됩니다. 매일 똑같은 장면이 나오니 사람들이 안 보게 되는데, 그래서 제일 낮은 시청률을 비교할 때 애국가 시청률과 비교합니다. 그럼에도 그 애국가도 KBS에서 나오는 것이니 최소 3%의 시청률은 나왔는데, 사육신이 그 기록을 깼다고 합니다.
왜 사육신이 남쪽에서 철저히 외면당했을까요. 그 드라마를 북에서 방영하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 북에서 방영했다면 엄청 인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쪽에서 실패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북에서 왔고, 그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다 알고, 오랜만에 그들의 얼굴을 남쪽 티비에서 보게 되니 반가웠는데도 3부부터 보지 않았습니다. 북한에 관심이 높은 제가 안 봤으면 답이 나왔죠.
제가 안 본 가장 큰 이유는 드라마가 너무 질질 끌며 늘어지는 겁니다. 가뜩이나 모를 배우가 나와 북한 말을 써서 이질적인데, 전개 속도마저 질질 끌면 남쪽에선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처럼 방송사 하나만 있다면 몰라도 그 시간에 다른 재미있는 드라마가 10개 가까이가 경쟁하는데, 이왕이면 다른 것 보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도 남쪽 드라마 본 분들이 많을 겁니다. 보면 재미있죠. 속도감도 있고요. 역사 드라마도 질질 끌면 안 됩니다. 속도와 박진감이 있어야 합니다.
남쪽엔 역사 드라마가 워낙 많아서 별 사람들이 다 주인공이 됩니다. 왕들은 물론이고 얼마 전에 정도전이라고 북한 역사책에 이름 한번 정도 나오는 인물 놓고도 수십 부 드라마가 만들어졌습니다. 정도전은 고려 왕조를 뒤엎고 이성계를 내세운 주동인물인데, 그 드라마가 북에 들어가서 보위부에서 긴장했다고 하더군요. 북한 사람들이 그 드라마를 보면 우리도 김정은의 김씨 왕조를 뒤집어엎는 혁명을 해보자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남쪽의 역사 드라마를 보면 저는 같은 민족인 북한 사람들도 역사 드라마를 정말 좋아할 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남쪽에서 외면당한 사육신도 북에서 상영했다면 아마 시청률이 90%는 나왔을 겁니다. 그런데도 북에선 방영하지 않았습니다. 북에서 역사물 소재는 아주 제한적인데, 임꺽정이나 계월향처럼 농민봉기 지도자나 왜적과 싸운 백성 밖에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왕은 당연히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사육신과 같은 신하의 이야기도 역사 드라마 소재로 삼지 못합니다.
이건 뭘 의미할까요. 북한 지배층이 자기가 왕조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인민들이 그런 사실을 인식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 드라마에서 왕이 나오면 인민들은 무조건 김정은과 비교하겠죠. 그러니 북한 드라마에서 나오는 왕은 아주 무능한 바보거나 악독하게 묘사해야 하는데, 이건 또 역사적 사실과 다르니 아마 북한 작가들이 양심까지 팔면서 거짓을 쓰고 싶지 않아 할 겁니다. 21세기 왕조 사회에서 살면서 재미있는 역사 드라마도 볼 수 없는 북한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