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새 또 휴가철인 7월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북에서야 휴가 받아 일주일씩 놀려 다니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기는 보통 7~8월이면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내고 쉽니다. 그리고 겨울에 또 보통 일주일 쉬고요. 저만 해도 이런 일주일짜리 휴가를 규정상으론 1년에 네 번이나 쓸 수 있지만, 일이 바빠서 다 쓰진 못합니다.
이런 이야기 들으면 북한 인민들이야 “와” 하고 놀랄 일이지만, 사실 남쪽은 유럽의 선진국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밉니다. 프랑스나 영국 이런 곳에선 보통 여름에 한 달 동안 휴가를 내서 해변가 별장에서 지냅니다. 정말 상상이 잘 안되겠죠. 그렇게 쉬면 언제 일하냐 싶겠지만, 그렇게 쉬면서 일해도 세계에서 부자 나라에 속합니다.
반면 북한은 일년 내내 뼈 빠지게 고생하고, 계속 무슨 100일 전투니 200일 전투니 벌려 놓고 있지만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가 됐습니다. 결국 일을 해도 어떤 일을 하는 가 그게 중요한 것이죠. 제가 북에서 지냈던 기간 중 7~8월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1990년대 초반 평양에서 행사 준비를 했던 일입니다.
9월 9일 맞아 김일성광장 글자 새기는 임무를 맡고 동원됐는데 무려 두 달 넘게 쨍쨍 찌는 햇볕 아래 부글부글 끓는 대리석 바닥 위에서 하루 종일 보냈습니다. 피부가 몇 번씩이나 벗겨져 흑인처럼 변했고, 몸은 혹사당해 뼈만 남고 그렇게 살았죠. 한 시간 반짜리 행사를 위해 몇 십 만 명이 그런 부질없는 생고생을 두 달이나 하니 북한이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지구가 온난화되면서 지금은 여름이 훨씬 더 더워졌습니다. 지금도 김일성광장 대리석 바닥 위에서 행사 준비한다고 녹초가 되고 있을 아이들을 떠올리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이번 휴가를 어디 갈까 생각 중입니다. 물론 가고 싶은 곳은 있습니다. 휴가 하면 바다가 아니겠습니까. 서울에서 가깝기는 서해인데, 서해는 밀물, 썰물 때문에 물이 깨끗하지 못합니다. 남해는 좀 멀긴 하지만 그래도 고속기차를 타면 3~4시간이면 가긴 합니다. 제일 좋기는 동해인데, 서쪽에 있는 서울에서 동해가 좀 멀죠. 평양에서 원산 가는 것을 떠올리면 됩니다. 강원도는 돌강원도라고 하지 않습니까. 산이 너무 많아 도로를 내기 어려운 지형이죠. 그렇지만 서울에서 강릉까지 고속도로가 있어 그걸 많이 이용했죠.
헌데 올해 7월 1일부터 서울에서 동해까지 연결되는 고속도로가 또 하나 생겼습니다. 서울에서 춘천을 거쳐 양양에 도착하는 고속도로인데, 이걸 타면 막히지 않으면 한 시간 반이면 동해 바다에 도착합니다. 물론 휴가철엔 차가 밀려 시간은 그보다 더 걸리긴 합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 동안 동해에 닿게 하기 위해선 도로를 최대한 곧게 내야겠죠. 서울에서 춘천까지는 그럭저럭 하늘 보고 달리는데, 춘천부터는 굴과 다리로 고속도로를 만들었습니다. 춘천에서 양양까지 가는 도로의 75%가 굴과 다리입니다. 이중에는 한국에서 제일 긴 11㎞짜리 굴도 있습니다. 굴 하면 여러분은 평양 원산 고속도로 사이에 있는 무지개 동굴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긴 11키로 되는 긴 굴이긴 하지만 특수 효과로 바다 속을 달리는 느낌, 위에 구름이 떠가는 느낌, 별보고 달리는 느낌 등을 재생해서 지루하거나 답답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이 도로 구간은 평양 원산 고속도로와 비슷한 성격인데, 북에 있을 때 저는 그 도로를 달려보곤 무서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마식령 굽이굽이 3시간 동안 넘어가는데, 길이 차가 겨우 두 대 어길 정도로 좁습니다. 길옆에는 아찔한 낭떠러지이지만, 가드레일이라는 차량 추락을 막는 방지막은 없습니다. 그냥 아무 도움 안 되는 나무 말뚝만 10미터에 하나씩인가 박혀 있죠.
길 아래 빤히 내려다보이는 계곡엔 예전에 굴렀던 차들이 흉물처럼 남아있습니다. 기중기가 계곡에 접근할 수 없으니 부속만 뜯어가고 방치해 놓은 것인데 녹이 쓸어 핏빛이죠. 화물차 하나에 30~40명 씩 타고 다니니 하나 굴러 떨어질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겠습니까. 제 친구도 마식령 넘다가 굴렀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갈비뼈가 나가 있더라 하더군요. 구를 때 튕겨 나간 덕분에 목숨은 건졌습니다.
여러분은 고속도로 하면 북한의 고속도로밖에 보지 못했겠지만, 북한 고속도로 같은 울퉁불퉁한 한심한 길은 여기엔 어느 시골가도 없습니다.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들도 원산 고속도로 한번 타보곤 달구지 타고 달리는 기분이라고 혀를 빼듭니다. 여기 고속도로는 매끈한데다, 차들도 좋아서 그냥 스르르 달리는 느낌입니다.
이번에 생긴 서울 양양 고속도로를 타면 고성에 있는 김일성 별장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남조선에 뭔 김일성별장 있냐’하고 놀라실 수 있지만 강원도는 물론 중부 경기도 포천에도 산정호수란 곳에 김일성별장터가 있습니다. 강원도 고성은 6.25전쟁 전에 북한 땅이었습니다. 이곳의 화진포라는 멋진 호수가에 김일성이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가족 별장으로 사용하던 돌로 멋있게 지어진 별장이 있습니다.
이 별장에 김일성은 사실상 주둔군으로 들어와 자신을 조종하던 소련군 정치위원 레베제프 소장과 자주 놀려와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김정숙도 이곳에 놀려오다가 삼일포에서 오리 쏴 잡았던 것이죠. 6살 된 김정일이 홀딱 벗고 찍은 사진도 있는데 그게 바로 이 별장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별장에 올라가면 경치는 끝내줍니다. 또 인근엔 이승만 별장도 있고, 이기붕 부통령 별장도 있습니다.
호수가 얼마나 아름다우면 김일성, 이승만, 이기붕이 저저마다 이곳에 와서 즐겼을까요. 그러나 지금은 모두 죽고 집터만 남았습니다. 인생무상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이젠 제가 종종 여름마다 찾아가 그 경치를 즐겨볼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