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한국 영화관을 북쪽과 비교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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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에 가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 영화관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바쁘다보니 한국에 와서 영화관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북한을 소재로 하고 인기가 높은 영화는 될 수록 가보는 편입니다. 여기는 영화를 보려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 편리하게 자기가 볼 영화와 시간을 정해 표를 예매합니다. 이런 점에선 북쪽과 천지차이입니다. 여기 와서 영화 보면 북에 있을 때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제가 북에 있을 때 가장 많이 가본 영화관이 모란봉영화관이었는데, 지방도 아닌 평양임에도 불구하고 매표소 앞에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살기로 밀고 당겼습니다. 거기에 군복을 입었다고 무서운 줄 모르는 군인들은 한 수 더 떠서 그 밀고 당기는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머리를 군화로 막 밟으면서 매표소로 돌진하죠. 매표소라고 해봐야 콘크리트 벽에 손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있는 게 고작입니다. 그 구멍에 돈을 움켜잡은 손을 쑥 들이밀고 "표 몇 장"하고 소리치면 구멍 너머에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 돈을 받고 표를 쥐어줍니다. 전국 어느 영화관 가봐야 모두 이런 식입니다.

영화관에서도 밀고 당기고, 버스나 기차 탈 때도 밀고 당기고, 뭘 살 때도 밀고 당기고 하다 보니 북에선 아예 줄서는 법을 잊어버릴 지경이었죠. 고작 몇 십 명이 모여도 죽어라 밀고 당깁니다. 줄 서면 훨씬 빠른데도 영화표는 당연히 밀고 당기며 사는 줄 알았던 때였습니다. 그렇게 살던 제가 지금은 인터넷으로 요즘 하는 영화들을 쑥 검색해 찾아보고 내용도 대충 읽어보고 예매한 뒤 방영시간 십 여분 전에만 가면 됩니다. 어차피 늦게 가도 제 자리는 비어있으니 말입니다.

올해는 북조선 경제사정이 더 어려워졌는지 새 영화 제작됐다는 뉴스가 거의 없네요. 제가 남쪽 영화는 못 봐도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방영하는 북쪽 영화는 서울에서 거의 챙겨봅니다. 그래봤자 1년에 10편도 제작하지 않으니 손에 꼽을 정도죠.

그에 비하면 한국은 1년에 영화를 참 많이 찍습니다. 작년에 152편인가 찍었고, 재작년엔 138편을 찍었으니 한해에 100편 이상은 기본으로 제작하는 셈입니다. 여기에 영화관에서 외국영화도 매년 100편 넘게 들여와 상영하니 어느 영화관에 가 봐도 매일 서로 다른 영화 수십 편씩은 상영합니다. 그중에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면 됩니다.

물론 방영되는 수 백편의 영화중에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는 수십 편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작비 대비 수익을 잘 뽑으면 영화제작사는 성공한 것입니다. 보통 여기서 영화 한편에 드는 돈이 수백 만 딸라 정도고 1000만 딸라 이상 쓰면 정말 돈 많이 들여 찍은 영화로 쳐줍니다. 영화 한편 보는데 10딸라 정도 받는데, 사람들이 많이 와서 봐서 돈 많이 벌면 성공한 영화인 것입니다. 이런 영화를 상업영화라고 하는데 세계적인 상업영화 시장은 미국 할리우드가 쥐락펴락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는 미국의 문화를 상징하는 말로 여러분들도 들어봤을 것입니다. 할리우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작은 거리 이름입니다. 저도 몇 년 전에 가봤는데 정말 거리가 걸어서 5분이면 다 지나갈 정도로 크지 않습니다. 이 작은 거리가 세계적으로 왜 유명해졌냐 하니 로스앤젤레스에는 영화 만드는 회사들이 많은데, 예전엔 새 영화 나오면 할리우드 거리에 있는 크지 않은 극장에서 시사회를 했답니다. 그래서 할리우드가 미국 영화의 공식처럼 돼버린 것입니다.

요즘 미국 영화는 한편 찍는데 1억 딸라 넘게 쓰는 영화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돈을 들여서 찍어도 전 세계적으로 몇 억 딸라를 벌어들이니 남는 장사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타이타닉'이란 영화 보셨나요. 제가 북에 있을 때인 1990년대 후반에 벌써 북에서 몰래 비디오테이프가 돌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영화인데 이 영화가 2억800만 딸라의 제작비를 써서 18억 딸라나 벌어들였습니다. 재작년에 아바타라는 영화도 2억 딸라 넘게 투자해서 타이타닉의 수익 기록인 18억 딸라를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고 합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 영화는 수출이 잘 안돼서 한국 내에서 결판을 봐야 합니다. 한국에선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 정도로 본 영화는 정말 초대박을 터뜨린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영화는 역사상 몇 편 안됩니다. 보통 500만 명 이상, 그러니깐 열 명중 한명이 보는 정도만 되면 대박을 친 영화로 보는데, 그런 영화도 일년에 한두 개밖에 안됩니다.

그에 비하면 북쪽은 한국식으로 따지면 하는 영화마다 대박이죠. 인구 다섯 명 중에 한명이 보는 정도면 정말 인기가 없는 영화고 적어도 두 명중 한명은 봐야 기본은 먹고 들어가죠. 볼 게 하도 없으니 본 것 또 틀어주면 또 보고 또 보고 하다 새 영화 나오면 그저 반가울 뿐입니다. 저도 북에서 '명령 027호'라는 영화는 살면서 13번인가 보고, '홍길동'도 7~8번 본 것 같습니다. 그 영화 내용들, 대사까지 지금도 기억합니다. 정전이라는 법을 모르는 한국 사회에 오니 북에서 새 영화 보러 가서 걸핏하면 정전이 돼도 전기 올 때까지 몇 시간동안 어둠 속에 끈기 있게 앉아있던 생각들이 납니다.

남쪽에서 북쪽 영화를 보면 저렇게 재미도 없고 천편일률적인 영화들을 옛날엔 왜 그리 열심히 보았는지 한심스럽게 생각됩니다. 뭐 긴말 할 필요 없이 여러분들도 요새 외국영화 많이 보니 다 알겠죠. 하지만 언젠가는 북에도 여러분들이 영화관에 가서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는 그런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날까지 억척스럽게 버텨주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